“이렇게 달 밝은 밤에는 무얼하면 좋겠는가”
내가 머물고 있는 절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학캠퍼스가 있는 곳이다. 달 밝은 날이면 함께 사는 스님네들과 학생회관으로 가서 우동도 한그릇 하면서 보름밤을 완상하곤 한다.
마조 선사(709~788)도 무척이나 보름밤을 좋아하신 모양이다.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달밤에 밤마실 나간 것을 정리해놓은 ‘마조가 달빛을 감상하다’는 마조완월(馬祖玩月)이라는 공안이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삼경인 아홉시가 지나면 모든 큰방대중이 불을 끄고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3인방을 달밤에 평대중 몰래 불러내어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달을 바라보다가 말고 마조선사는 바로 한마디 던졌다.
“이렇게 달 밝은 밤에는 무엇을 하면 가장 좋겠는가?”
느긋하게 달을 보면서 흥에 젖어 있다가 갑자기 일격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서당지장(735~814) 백장회해(749~814) 남전보원(748~834)이 어디 보통 인물들인가. 가장 먼저 서당지장이 반격에 나섰다. 서당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동당의 주인인 마조에 버금가는 위치를 가진 지장이 가장 먼저 말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물론 나이도 제일 많다.
“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正好供養).”
그렇다면 지금 우리처럼 야참을 즐기면서 달을 보는게 제격이란 말이지. 우리가 바로 서당지장의 가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적통의 제자가 되는 거지. 아! 그렇구나.
그런데 고지식한 율사기질을 가진 백장회해는 표정을 정돈한 다음 관리된 목소리로 말했다.
“수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正好修行).”
어휴! 숨 막혀. 그러니까 백장청규나 만들고 있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꼬장꼬장한 그 품새 말이다. 이를 곁에서 듣고 있던 남전은 소매를 뿌리치며 ‘쌩’ 하고 바람소리를 내며 가 버린다. 혼자 따로 시킨 스파게티 잘못 먹고 설사 났나?
그런데 남전은 이번뿐만 아니라 늘 그랬다. 본래 좀 괴각기질이 있었다. 대답을 듣자하니 전부 ‘수준 이하인지라 같이 상종못할 놈들(스승인 마조는 빼고)’이라고 구시렁거리면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스승인 마조는 모두의 답변에 흡족해 했다. 고슴도치의 제 새끼 감싸 안기는 아니겠지.
이 선문답을 들으면서 제일 마음에 든 선사가 서당지장이다. 달밤에 무슨 얼어죽을 도타령이며, 마음에 안 든다고 또 가 버릴건 뭔가. 그저 맛있는 것 먹으면서 음풍농월을 읊는 것도 제격인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공양’이란 말에 뭔가 깊은 뜻이 있는건 아닐까? 고타마 선사께서 인행(因行)보살 시절에 나무 밑에서 깊은 선정에 들었다. 그 때 나무위에 있던 원숭이들은 뭔가 좀 ‘튀는’ 공양물을 올리고 싶었다.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물 속에 비친 보름달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 바로 저거야.”
그리하여 원숭이들은 손에 손 잡고 아슬아슬하게 연못으로 내려갔다. 마침내 맨 끝의 원숭이가 달을 잡기 위하여 물 속에다가 손을 넣었다. 그러나 물결이 흔들리니 달이 없어져 버렸다. 조금 후 잔잔해지니 또 달이 나타났다. 그래서 손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수십번 수백번 달을 건지려고 애쓰는 모습 그 자체를 뒷날 선가에서는 ‘노월(撈月)’이라고 불렀다.
감상적인 ‘완월(玩月)’에서 방일하지 말라는 ‘노월(撈月)’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하긴 ‘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이라 했지. 달이 못 밑을 뚫어도 못 위에는 흔적이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