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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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좋은 친구의 향기/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향상자 집었던 손에 은은히 남는 향기처럼 좋은 벗은 우리 영혼 살찌우는 고결한 존재

부처님께서 난타와 함께 향을 파는 가게에 갔습니다. 가게에는 여러 가지 향을 담은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난타에게 말하였습니다.
“난타야, 저 향 상자를 집어보아라.”
난타가 향 상자를 집어 들자 부처님은 곧 다시 내려놓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지금 네 손의 향기를 맡아보아라. 어떤 냄새가 나고 있지?”
난타는 부처님이 시키는 대로 향 상자를 내려놓은 뒤에 제 손의 향기를 맡아 보았습니다.
“아, 부처님.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달콤하고 은은하고 미묘한 향기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누구나 좋은 벗을 가까이하고 항상 함께 있는 것도 그와 같다. 함께 있으면 그의 좋은 점을 본받고 따를 것이니 마치 은은한 향이 제 몸에 스며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좋은 벗과 친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 이름이 널리 퍼질 것이니 향기가 바람을 따라 널리 퍼져나가는 것과 같다.”(법원주림 제51권)
며칠 전 새 수첩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해 쓰던 수첩의 주소록을 펼쳐보았습니다. 매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내 수첩 속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그 중에는 1년 동안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이름, 몇 년 간 기재되어 있다가 슬그머니 다음 해의 새 주소록에서 빠지는 이름, 수 십 년간 내 주소록의 지정 자리를 다른 이름에게 양보하지 않는 이름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니 과연 이들의 수첩에도 내 이름이 들어가 있을지, 그리고 새로운 주소록으로 내 이름이 몇 차례나 고스란히 옮겨갔을지도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들이 내 친구라는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해왔습니다만 내가 그의 친구라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 좋은 친구일까요, 그렇지 못한 친구일까요?
<법원주림>에는 좋은 친구가 되는 일곱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상대를 위하여 하기 어려운 일을 해줄 수 있어야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나의 명성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일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를 위해 주기 어려운 것을 줄 수 있어야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가 가장 필요로 할 때 내 손으로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면 나는 그의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말입니다.
셋째는 상대를 위해 참기 어려운 일도 참아낼 수 있어야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관계는 절대로 친구 사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넷째는 서로 비밀한 일을 알려주어야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친구 사이에는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간에 똑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비밀은 잔뜩 알고 있으면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면 대등한 친구사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섯째는 서로 허물을 감추어주어야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의 치명적인 허물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를 믿고 털어놓은 이야기 속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허물이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그게 네 허물이야’라는 뼈아픈 지적도 필요하겠지만 친구 사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허물은 알지도 못하였다는 듯이 덮어두고 감추어주는 정도 중요할 것입니다.
여섯째는 그와 친하다는 이유로 내가 고통 받아도 상대를 버리지 말아야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사람이란 본래 자기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쪽으로 마음이 흐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손익을 따지지 않는 마음, 손해를 보더라도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우정의 또 하나의 조건이라고 하니 내 마음을 반성해야할 것 같습니다.
일곱째는 상대가 가난하고 볼품이 없어도 업신여기지 않아야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누구와 친한가에 따라서 세상은 나의 가치를 결정짓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잣대는 외형적이고 물질적입니다. 초라한 겉모습 속에 반짝이는 그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안목은 바로 친구인 내게 있기 때문에 결코 세속의 잣대에 흔들려 친구를 저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 주소록에 담긴 사람들이 내게 일곱 항목을 얼마나 채워주었는지를 따져보다가 새삼 나는 그들에게 이 일곱 가지 중 몇 가지라도 해당할까 생각하니 불안해집니다.
올 한해는 그들의 향기로운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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