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자리서 보면 우리도 부처
분별망상 때문에 알지 못할 뿐

부처님의 세상이고 깨달음이라고 볼 수 있는 ‘그 무엇’은 본디 밝고 밝아서 신령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찍이 생겨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어서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고 한다.

서산 스님은 게송으로써 부처님이나 노자, 공자도 ‘그 무엇’에서 나왔다고 했다. 이런 성인들이 나온 자리를 함부로 중생들이 거론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잘못 거론하다가는 눈썹이 빠질 것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선문(禪門)에서는 진리를 잘못 거론하다가는 눈썹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가귀감> 2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佛祖出世 無風起浪
부처님과 조사스님 이 세상에 나오신 건
바람 없는 큰 바다에 거친 풍랑 일으킨 것.

여기서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하고 조사스님은 선종에서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은 가섭 존자를 가리킨다. 우리는 보통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생사의 고통 속에 있는 중생들을 자비로운 큰마음으로 건져주시는 분이 부처님이고,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수행자의 눈을 단숨에 밝혀 주시는 분이 조사스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선가귀감> 2장에서는 부처님과 조사스님이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잔잔한 바다에 쓸데없이 거친 풍파를 일으키는 일이라고 꾸짖는다. 본디 이 세상은 평화롭고 조용하다는 것이다. 이 말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처님의 영역과 중생의 영역
우리가 불교를 공부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경전이나 어록에서 부처님 세상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드러내며 ‘그 무엇’을 이야기할 때,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근본자리에서 거론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중생들의 처지에 맞추어서 하는 이야기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근본자리란 1장에서 거론된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그 무엇’에 해당된다. 중생의 영역이란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시비 분별 속에서 늘 가려내는 일들을 말하니 육조 혜능 스님의 ‘일물(一物)’이 여기에 해당된다.

부처님 세상에서 말하는 ‘그 무엇’은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영역이요 어떤 개념을 가지고도 가르칠 수 없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영역이다. 그런 ‘그 무엇’의 자리에서 보면,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근본자리에서 보면 이 세상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조화롭고 평화롭고 완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중생이다’라는 표현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근본을 알고 보면 우리도 본디 모두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다만 시비 분별하는 중생의 업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화엄경>에서는 이런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菩提樹下 初成正覺 歎曰 奇哉奇哉
一切衆生 皆有如來智慧德相 以分別妄想
而不能證得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처음 성취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참으로 놀랍고 놀랍도다. 모든 중생들이 다 여래의 지혜와 공덕을 갖추고 있는데도 분별망상 때문에 그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서산 스님은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와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뜻을 드러내기 위해 “그 무엇의 자리에서 본다면 사람마다 본디 얼굴이 오롯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연지 찍고 분을 발라 줄 것을 기다릴 일이 뭐 있겠느냐?”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중생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서 본디 부처님의 얼굴인데, 여기에다 다시 부처님의 얼굴을 만들겠다고 연지 찍고 분을 바를 필요가 왜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견해로 보면 부처님과 조사스님께서 이 세상에 나와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것도 잔잔한 바다에 거친 풍랑을 일으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허공장경>에서 “글도 마구니의 업이요, 이름과 모양도 마구니의 업이요, 부처님의 말씀조차도 마구니의 업이니라” 한 것이 바로 이 뜻에서 한 말들이다. 이는 바로 깨달음의 본분(本分)을 말하는 것이기에 여기에서는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 중생들의 알음알이를 가지고서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자리에 와서는 천지가 뒤집어지고 눈앞이 깜깜해지게 된다. 서산 스님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乾坤失色 日月無光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해와 달이 빛을 잃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