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5.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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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무엇’/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一物’은 실물 아닌 깨달음의 경지
철저히 깨닫기 전에는 ‘알음알이’

<선가귀감>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머리부터 심상치가 않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단락에서 불교를 어렵게 여겨 겁을 먹고 공부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내용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한 중요한 내용이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기억이라도 해두어야 한다. ‘그 무엇’이라고 번역한 일물(一物)은 선가에서 참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
여기에 ‘그 무엇’이 있는데
본디 밝고 밝아 신령스러워서
일찍이 생겨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었으니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느니라.

원문에 나오는 ‘일물(一物)’은 직역하면 보통 ‘한 물건’이라고 번역하기에 어떤 실물을 연상하기 쉽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무엇’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표현은 <금강경오가해> 서문에 나오는 ‘일물’과는 그 뜻이 같지만 육조 혜능 스님 게송에서 ‘한 물건’이라고 번역되는 ‘일물’과는 그 의미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육조 스님의 게송을 살펴보자.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깨달음은 잡히는 존재 아니고
밝은 마음 이름뿐 실물 아니네
본래가 한 물건도 있지 않거늘
일어날 번뇌가 어디 있을까.

<선가귀감>에서 말하는 ‘그 무엇’은 ‘본디 밝고 밝아서 신령스러운 것’이다. 이는 육조 스님의 게송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뜻인 ‘보리(菩提)’와 ‘밝은 마음’의 뜻인 ‘명경(明鏡)’에 해당된다. ‘그 무엇’은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것인데,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하여 육조 스님이 억지로 이것을 깨달음이나 밝은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그 무엇’에 해당하는 깨달음은 잡히는 어떤 존재가 아니고, ‘그 무엇’에 해당되는 밝은 마음은 이름뿐이지 어떤 실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구절에서 어떤 실물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일물(一物)로서 ‘한 물건도 없다’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선가귀감>의 ‘일물’은 부처님의 영역인 ‘그 무엇’을 말하고 육조 스님의 ‘일물’은 중생의 영역에 있는 ‘어떤 실물’을 말하니, 낱말은 같지만 그 뜻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부처님의 영역에서 중생인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중생의 번뇌가 어떻게 있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육조 스님은 “일어날 번뇌가 어디 있을까?”라고 하며 게송을 매듭짓는 것이다. ‘그 무엇’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서산 스님은 허공에 둥근 원(圓)을 그리고 말씀하셨다.
古佛未生前 凝然一圓相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이 세상에 옛 부처님 태어나기 전
빈 허공에 서린 기운 한 가지 모습
석가모니 부처님도 알지 못하니
가섭인들 이 도리를 어찌 전하랴.

이 뜻은 ‘그 무엇’이 일찍이 생겨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었기에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육조 스님이 대중들에게 “나에게 ‘그 무엇’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니 그대들이 알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본원(本源)이요 신회의 불성(佛性)입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답했던 신회는 육조 스님의 법을 이어받지 못했는데, 이는 중생의 알음알이로 대답하였기 때문이다.
숭산에서 온 회양에게 육조 스님이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라고 물었다. 회양이 쩔쩔매다 8년이 지나고서야 “설사 ‘그 무엇’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이는 근본을 철저히 깨닫고 한 답이었기에 회양 스님은 육조 스님의 법을 이어 받았다.
이 경계는 부처님의 세상이므로 참으로 부처님만 알 수 있고, 순수한 깨달음이므로 오직 깨달은 조사 스님만이 알 수 있다. 중생의 알음알이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자리를 어떤 경계로서 안다고 말씀하시면 그 순간 중생의 알음알이에 떨어지게 된다. 서산 스님은 이 경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三敎聖人 從此句出 誰是擧者 惜取眉毛
부처님이나 노자 공자도 ‘그 무엇’에서 나왔으니
누가 감히 이 자리를 거론할 수 있겠느냐
함부로 입을 놀리다간 눈썹이 빠지리라.
20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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