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이라는 정체성 걸맞게 사상과
교육체계 확립, 교판·율장 정비해야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양고기를 쇼 윈도우에 걸어놓고서 실질적으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말이다. 한우라고 써붙여 놓고 수입쇠고기를 파는 것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다. 명분과 내용물이 일치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석두희천(石頭希遷:700~790)선사는 진금포(眞金鋪)를 표방했고 마조(馬祖道一:709~788)선사는 잡화포(雜貨鋪)라고 남들이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순금만을 파는 가게인 순일무잡하고 고고한 선풍을 지랑하는 진금포인 호남 땅보다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방편을 갖추고 있다는 잡화포인 강서지방에 더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저변가풍은 동일하다. 즉 같은 금방인데 가공해놓은 순금제품의 다양성에 차이가 있다는 말이지 잡화포라고 해서 금제품도 없이 은(銀)제품이나 동(銅)제품을 취급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전등록〉11권에서 앙산혜적(803~887)선사는 진금포와 잡화포를 나름대로 다시 정리하였다.
“어떤 사람이 갖가지 물건과 금과 보배로 하나의 가게를 꾸며 장사를 한다는 것은 오는 이들의 경중에 따르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석두는 진금포요, 나(앙산)는 잡화포라 한다. 어떤 사람이 와서 쥐똥을 찾더라도 나는 주고, 어떤 사람이 순금을 찾더라도 나는 준다.”
쥐똥을 줄 때 주더라도 순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쥐똥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순금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금방으로서의 정체성을 절대로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일본의 오래된 가게(老鋪)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그 ‘노포(老鋪)’라는 말을 대하면서 진금포 잡화포를 떠올렸다. 그 ‘오래된 가게’의 공통점은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대신 자기변화를 게을리않는 마조의 잡화포를 떠올렸다. 왜냐하면 그 가게들의 변화는 ‘00가게’라고 불릴 수 있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범위속의 변화였다. ‘우리 회사만이 갖고있는 우리다움’이라는 근본기조를 소중히 지켜가려고 애써온 것이 장수비결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시대에 영합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시대가 나를 필요로 하도록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다.
해동땅의 오래된 가게들은 ‘선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 주인은 가게를 찾은 종도들이 선종이라는 금을 찾는 사람보다도 잡화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도 그걸 방치했다. 게다가 금보다는 잡화가 잘 팔리니 잡화품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다 보니 금은 구석지로 밀려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세월이 지나면서 아예 진열조차 하지 않는 곳도 있다. 어쩌다가 금을 찾는 사람이 와도 잡화를 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다만 그 가게들의 공통점이라고 해봐야 조계종 본점에 주인승적과 사찰이 등록되어 있다는 ‘형식적’사실 뿐이다.
이건 오래된 가게의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결코 오래 갈 수도 없거니와 설사 오래 간다 한들 무슨 존재가치가 있겠는가. 지금 같은 ‘잡종’으로서 선종을 표방한다면 이는 ‘양두구육’이다. 양두구육을 진금포 잡화포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이는 수천 명 대중이 수백 곳 선원에서 하루에 수십 시간 앉아 있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선종의 정체성에 걸맞는 사상과 교육체계의 확립과 아울러 명자(名字)와 일치하는 교판(敎判)과 율장의 정비가 뒤따르고 아울러 종도들의 가치관을 함께 바꾸어야만 가능한 지난한 작업이다. 만약 ‘통불교’가 실질적인 종지(宗旨)라 생각한다면 모두 ‘계급장 떼고’ 허심탄회하게 제대로 한판 있는대로 솔직하게 논의해서 차라리 가게이름을 바꾸는 편이 양심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