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다는 것은 언제나 앞을 내다보는 일과 맞물려 있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지향점을 지기고 앞을 내다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은 돌아보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제 올해도 저물어가는 이때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는 것은 다가올 한 해를 맞는 우리의 지향점을 점검하여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올바른 지향이 없다면 돌아보는 일 또한 할 수 없다. 돌아본다는 것이 어찌 단순한 회상이겠는가? 우리가 갈 길이 이러한데, 그 긴 노정 가운데 여기는 좀 헤맸구나, 여기는 지나치게 우회했구나, 여기는 거꾸로 방향을 잡았구나, 하는 반성이 바로 돌아봄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불교계는 아직도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기에 오히려 지나치게 주변의 소리에 휘둘리고, 또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아픈 반성이 있다.
돌아봄이 충실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하는 그러한 확실한 방향설정의 부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돌아봄이 있어야 할듯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와 방향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긴 지향 점과 한 해라는 기간에 성취할 구체적 목표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돌아봄 또한 추상적, 관념적 영역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다.
한 차원 더 구체적인 곳으로 내려간다면, 앞에 이야기한 지향점과 목표를 기준으로 한 반성 이전에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충실한 수집과 정리가 가장 기본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추하고 아픈 사건이라 하여 감추지 않고,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여 과장하지 않는 엄정한 기록과 정리, 그것이 있어야만 올바른 돌아봄이 가능하다.
우리 불교계는 아직도 어정쩡한 관용의 정신과 파벌중심의 이합집산이 계속되어 이러한 기초적인 작업을 등한히 하고 있다. 당장의 판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엄한 기록보존은 필수적이다. 후세의 판정이 있을 것이기에 망동을 삼가게 하는 직접적인 효과도 있으며, 긴 기간 축적된 정확한 자료야 말로 긴 지향점을 올바로 세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을 해야 할 이 시점에 돌아봄의 바탕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아이러니지만, 그것 또한 올해를 돌아보는 하나의 눈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