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서 추위에 떠는 납자들 안쓰러워
따뜻한 방서 화두 들게하니 ‘꾸벅꾸벅’
금강산은 겨울이면 이름마저 개골산(皆骨山)으로 바뀐다. 살점은 모두 없어지고 뼈만 남아있다는 의미다. 어디 그 산뿐이랴. 모든 산에서 그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계절이다. 꾸미지 않는 수수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본다. 이를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 했다.
한 납자가 “나무잎이 시들어서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으니 “앙상한 모습을 드러낸다” 라고 대답한데서 기인한다. 찬바람에 잎이 지고 나면 나무들은 남겨야 할 것만 남겨둔다. 산도 나무도 군더더기 없이 함께 어우러진 단아한 기품은 선종집안의 가풍과 더없이 어울린다. 그래서 선사들의 이름에는 ‘설(雪)’자도 많이 보인다.
산과 나무위로 펑펑 눈이 쏟아지면 모두가 설산이 된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산이라고 해도 손에 잡힐 듯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정신은 더욱 명징해지고 두 눈 역시 청안(淸眼)이 된다.
무주( 州) 명초덕겸(明招德謙)선사가 매우 추운 날 상당(上堂)하였다. 선사는 왼쪽 눈을 실명하여 ‘독안(獨眼)’이라고도 불렸다. 대중을 교화하는 수단과 예리한 선기는 당시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법당에 모인 대중들에게 오랜만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날씨가 차가우니 여기는 그대들이 몸과 마음을 둘 곳이 아니로다. 모두 따뜻한 방으로 가서 참구토록 하라.”
그러고는 모두 법당을 나가도록 했다. 대중들은 ‘좋아라’ 하면서 좌선에 드는가 했더니 얼마 후 모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사는 주장자를 휘두르면서 몽땅 추운 법당으로 다시 내쫓아버리며 중얼거렸다. “따뜻한 곳에 오자마자 졸기 시작하는구나.”
선사의 자비로움으로 추위를 피하도록 배려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앉아서 모두 존 것이다. 대중건강이 염려돼 옮겨 주었더니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수마보다는 동(冬)장군이 공부에 훨씬 낫다. 모조리 두들겨 패서 다시 냉방으로 쫓아버렸다.
하지만 냉기는 감기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지나친 기침소리는 주변까지 공부방해를 한다. 그래서 선사들은 미리 대중들에게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하지만 그 결과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한 납자들은 한철 내내 감기로 몸살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늘 목에는 흰 명주 목도리가 둘러져 잔기침을 콜록거린다. 하지만 기침도 기침 나름이다. 고산(鼓山)문하의 어느 납자 기침은 그 의미에 있어서 보통 기침과는 차이가 있었다.
고산 선사가 시중(示衆)하여 말했다.
“고산 문하에서는 기침(咳嗽)을 하지 못하느니라.”
이에 어떤 납승이 나와서 기침을 한번 하니 선사가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감기(傷寒)가 들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감기라면 어쩔 수 없지.”
대중처소에서는 인정과 원칙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너무 원칙만 앞세우면 살기가 빡빡해진다. 그렇다고 인정에 지나치게 끄달리면 도심(道心)마저 성글어진다. 두 선사의 자비심과 원칙론의 조화는 겨울 대중살이의 중도적 측면을 소박하게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흰 눈이 내리는 날, 방문을 활짝 열고 좌복위에 앉아 바라보는 선경은 화두마저 저만치 놓아버리게 한다. 그래도 공부하는 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 안주(安州) 대안산(大安山) 숭교 능(崇敎 能)선사 회상에서 오고간 문답이다.
“어떤 것이 한 겨울의 경계입니까?”
“천산(千山)은 증수색(增秀色)하고 만수(萬樹)엔 개은화(開銀花)로다.”
모든 산이 우뚝함을 더하고, 온갖 나무에는 눈꽃이 피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