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지키는 깔끔한 성격
양말 깁고 또 기워 신어
출가인의 삶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챙겨나가는 것이 가장 멋지다. 매일 저녁공양전 소임을 마치고 자잘한 빨래거리들을 세탁하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지금은 속가는 물론이고 산사에서도 거의 사라진 모습이지만, 스님들이 구멍 난 양말을 꿰매 신는 일은 소욕지족을 실천하는 소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도들이나 일반인의 눈에 가장 안쓰러운 일이기도 한 것이 속옷이니 양말 등을 직접 빨래하고 정리하는 스님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강당시절은 출가 의지와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절이라 눈에 띄는 별난 행동들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상우 스님은 몇 가지 면에서 도반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던 스님이다. 성격과 하는 행동이 깔끔해서 ‘깔끔 존자’라고 불리기도 했고, 원칙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야 한다며 꼿꼿한 고집을 버리지 않아 ‘꼿꼿 존자’라 불리기도 했다.
그렇게 ‘깔끔’과 ‘꼿꼿’을 본분으로 삼는 스님에게도 별난 모습이 있었다. 누구라도 한번씩은 양말을 꿰매어 신지만 상우 스님은 정도가 심했다. 다른 스님이 버린 양말까지 주워서 모아두곤 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떨어진 양말들과 씨름하기에, 너무 궁상스럽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언젠가 상우 스님이 자신의 관물장을 열어 옷을 두 벌 꺼내더니 좀 보아달라고 했다. 며칠 전 옷을 갈아입고 빨래거리를 넣어두었는데 잘 구별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자신이 넣어둔 빨래거리도 구별못하는가, 시력이 그렇게 나쁘냐?”며 옷을 살펴보았는데, 빨아서 잘 개켜놓은 옷들이었다. 다 새 옷인데 무슨 빨래거리냐며 관물장을 다시 살펴보라고 하니, 그 옷이 다라며 분명히 빨래거리가 있으니 잘 살펴보라고 다시 부탁하는 거였다. 분명히 며칠전 옷을 갈아입고 나중에 빨 요량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원래 빨래거리도 잘 개켜놓는 버릇이 있는데 잘 구별을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옷깃이며 소매를 비롯해 때가 잘 타는 곳을 눈여겨 보았지만 도저히 구별해낼 수 없었다.
빨래거리까지 그렇게 각을 맞춰 개켜놓는 성격도 그렇고 2주일은 입었다는 옷이 빨아놓은 옷과 구별조차 할 수 없게 깨끗한 것도 정말 희한했다. 그 뒤 도반들은 상우 스님의 깔끔이 경지가 높아져 이구지(離垢地)-더러움을 여읜 경지-에 오른 것인가 보다며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점심공양을 마치고 우리반 스님들은 안행으로 큰방을 향하고 있었다. 상우 스님은 그때 반장소임을 맡아 맨 앞에서 걷고 있었고, 줄의 뒷부분에 있던 스님 몇은 날이 너무 좋아 산행이라도 가면 좋겠다고 속삭이며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행렬이 법당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뒷사람이 앞사람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안행이라 다들 의아해 하며 법당에 들어갔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무슨 울력거리라도 있나 하고 다들 궁금해했다. 그때 상우 스님이 앞에 나서더니 안행중에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 법당에 왔으니 다같이 108배참회를 하겠다고 했다. 평소 원칙에 충실한 상우 스님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렇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은 강당생활 가운데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 황당했다. 몇몇이 이의를 제기했고, 이야기를 한 스님들은 자신들이 책임지고 참회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다함께 참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점심공양을 마치고 법당 앞을 지날 때 한 스님의 나직한 투덜거림이 터져나왔다. “오늘은 108배 안하나!” 그순간 행렬은 다시 법당으로 향했다.
이틀이나 연속 108배를 한 스님들은 아랫반 보기 창피하다며 융통성 없는 상우 스님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우 스님은 자기를 놓고 전체 도반이 융통성이 없다고 해도 도리어 다들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끄덕도 않았다. 오히려 모범을 보인 것이니 더 당당해야 한다는 말로 도반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해인사 장경각 1000일 기도를 마치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들었는데, 만나면 늘 여여하다. 선원을 전문으로 다니지는 않아도 결제철에는 선방에 가거나 기도를 하며 게으름 없이 자신을 닦아간다. 이제는 세월이 지나 그 꽉막힌 융통성도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융통성일 뿐 자신에 대해서는 한결같은 고지식함을 지니고 있다. 때로 컴퓨터나 카메라 등 기계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자신의 수행생활과 어긋나지 않는다며 이 또한 당당하다. 가끔 도반들의 풀어진 모습을 보며 나직이 끌끌거리며 혀를 차는데 늘 견고한 그 초발심의 열정은 도반들 가슴을 뜨끔하게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