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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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 일체 부처님과 통하는 통로있다
부처될 자격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참다운 참선의 도리


10월 보름부터 스님들께서는 동안거를 시작하셔서 용맹정진에 들어가신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처럼 세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스님들처럼 조용한 장소를 택해서 좌선의 시간을 가지고 마음 안으로 정진해 나가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집중해서 하지는 못하더라도 참답게 참선을 해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까? 생활 속에서 마음을 모아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일러주십시오.


공부를 하는 분이라니 잘 아시겠지만 불교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 자체가 불(佛)이요, 일체 만물만생이 서로 통신하는 것이 바로 교(敎)입니다. 그럼으로써 불교는 어느 한 군데에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 아니 전 우주의 진리인 것입니다. 일분 일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작게 갖지 마십시오. 마음이라는 건 체가 없어서 무한량이기도 하고 광대무변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나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듯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모든 게 무효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상대성의 원리도 있고 인연에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발전도 하고 창조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창조력도 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근본이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에 가설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몸뚱이 속에 자기가 얼마나 많이 들어 있습니까? 최초에 생명의 발원지가 어디였던가. 미생물에서부터 진화돼서 쫓고 쫓기면서 인간까지 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이 몸뚱이 속에 수십억에 달하는 생명체들, 모습들, 의식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 속의 하나하나가 그렇게 진행해 왔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신계와 물질계가 같이 작용을 하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그 섭리를 익혀서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몸속에 들은 모든 의식들이 모두가 내 한 몸, 내 한 의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속에 들은 의식들은 바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줍니다. 아주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쁘게 따라주고 선하게 생각을 하면 선하게 따라주는 그러한 요소들입니다. 그래서 ‘한마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일체 만법은 다 한 사람의 한마음에서 빚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해 나가면서 내가 꿈을 꾸었다든가 어떠한 나쁜 일이 있다든가 또는 상대방에서 나쁘게 다가올 때 모든 것을 좋게 해석해서, 즉 말하자면 ‘모든 거는 주인공이 하는 것이니까, 주인공만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으니까’ 하고 모든 것을 거기다 놓고 지켜보고 나가는 것이 그것이 참 도리요, 참선입니다. 앉아서 좌선을 한다든가, 좌선을 다 했다든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참선이 아닙니다. 시간이 여유가 있고 그러면 앉아서 하고 또는 누워서도 생각할 수 있는 거고, 일하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거고, 서서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하되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주인공에게 모든 거를 맡겨 놓고 관찰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요소든 어떠한 용도든 어떠한 과정이든 무엇이든지 일체를 거기다 맡겨 놓고 관찰을 해서 체험을 하는 것이 바로 참선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린 겁니다. 여러분이 살아온 관습에 의해서 모든 생각을 미약하게 하지 마세요. 한 생각을 잘하면 안에서 모든 생명들이 같이 보충해 줍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못하는 대로 보충이 됩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인과 업으로써 현실에 나오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현상을 맞닥뜨렸을 때 나쁜 조건에 의해서 나오는 거를 다시 거기에다 입력을 한다면 앞서 입력된 게 없어질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면 그 자리에서 나오는 대로 다시 그 자리에 되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온갖 생활하는 것을 빼고 참선이 어디 있으며 종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생활 속에서 작은 거든지 큰 거든지 내가 하나하나 해 나가는 그 자체가 바로 참선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를 운행하는 운전수가 나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차가 운전수를 끌고 다니는 법은 없죠. 운전수가 차를 끌고 다니죠. 바로 그 운전수라는 나의 마음의 주인이 온갖 일을 다 이끌어 갑니다. 거기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이끌어 간다고 믿고 한다면,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도 법이지마는 안 가는 것도 법입니다. 갈만하다면 가는 것도 법, 안 갈 만하다면 안 가는 것도 법입니다. 병 증세나 또는 세균성이나 영계성, 유전성이 바로 거기서 나오는 거니깐요. 그러니까 거기에다 모든 것을 놓고 하나하나 맡겨 놓을 때마다 관찰하는 것이 진짜 참선입니다. 관찰하면서 낫는다든가 하면 거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뭐가 안된다든가 하면 ‘안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되게 할 수 있잖어.’ 하고 거기다 놓을 수 있는 그것이 직선적으로 들어가는 참선인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자유스럽게 정신계와 물질계가 같이 작용을 한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현명하게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니까 명상을 하든지 앉아서 좌선을 하든지 일을 하면서 생각을 하든지 누워서 생각을 하든지 변소에 가서 생각을 하든지 하여튼 모두가 생각하는 것은 바깥으로 끄달리지 말고 안으로 모든 것을 일임하고 들어가는 것이 말 그대로 참선임을 아시고 정신 바짝 차려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고통은 어디에서 생기나요?


고(苦)의 근원이 무엇인지요? 어디에서 고가 생겨나서 저희들을 괴롭히는 건가요? 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통 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항상 말씀드렸지만 지금 질문하신 부분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몸 안에 들어있는 그 업식들이 현실의 여러분이 사는 데에 고통과 애고와 병고를 자동적으로 오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세균성이나 또는 영계성 유전성, 이런 문제들이 다가오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야만이 카바를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만이 간단하게 처리해 가며 살아 갈 수 있는가 하는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라고 하는 겁니다. 전자에 내가 지어놓은 대로 현실에서 겪게 되니까 마음공부를 해서 밝게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마음공부의 좋은 점은 첫째는, 공부 길이 정법으로 들어가니까 좋습니다. 무슨 이 다리를 거치고 저 다리를 거치고 이거를 넘고 이런 게 아니라 직통 들어간다 이 소립니다.
두번째는, 어떠한 거든지 불바퀴에 넣으면 불에 타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마음이라는 용광로에다 넣으면 그냥 모든 게 녹아버려 내 전체 애고를 카바한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그렇게 되면 위로 묵은 빚도 갚을 수 있고 아래로는 햇빛도 줄 수 있고 그래서 가정을 다복하고 편안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이 소립니다.
부처님 법이란 여러분 가정을 빼놓고 우리 삶을 빼놓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부터 부처님도 알았고, 상대성 원리도 알았고, 사랑도 알았고, 천차만별로 벌어지는 생활이 어떻다는 것도 알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고도 있고 업보도 있고 유전성도 있고 영계성도 있고 세균성도 있고 모든 게 인과성 이 모두가 붙어 돌아갑니다. 이러니 이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냥 헛듣고 헛 넘기지 마세요. 나도 이거를 탐지하고 실험하느라고 십여 년이 걸렸습니다. 책을 읽고 조사들의 뒷발자취나 따라 다니면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내 생을 다 바쳐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인생이란 한 철 나고 누구나가 다 갈 것인데 한 철을 다 마치기 전에 내 아픔과 다른 사람의 아픔과 사생의 모든 아픔이 같다는 것도 검토를 많이 했구요. 그런데 그 고가 모두 죄가 있어서 오는 게 아닙니다. 몰라서 죄를 짓지 알면 죄를 짓지 않죠. 모르는 게 죄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가 자기를 긁어서 자기를 부스럼 내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다 그렇게 짓는 거지요.
그러니까 항상 말씀드렸지만 내가 살아서 그 도리를 모르면 내 업식에 눌려서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 도리를 모르면 물에 빠져 죽을까봐 못 건너가고, 타 죽을까봐 못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런 거를 대충 얘기해 드리면서 여러분 가정에 모두 성취가 있기를 항상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이익이 있으라는 그 간절한 마음은 여러분이 나 아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름이 한데 모였다 흩어지면 또 딴 구름하고 모이고 수억겁 광년을 거치면서 이렇게 진화하면서 모였다 흩어지고 모였다 흩어지니까 나중에는 네 부모 내 부모, 네 자식 내 자식이 따로 없이 모두가 내 부모요, 내 자식이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공부하실 때는 가정에서도 그렇고 남들하고도 그렇고, 나쁘게 생각을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내가 잘못했든 잘했든 내가 이 세상에 나온 탓이지 내가 없었더라면 누구와 부딪치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경우이든지간에 모두 내 탓으로 돌려라 이럽니다. 그리고 어떠한 문제라도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했으면 잘할 수도 있고 잘했으면 잘못할 수도 있는 것이지 항상 잘못하라는 법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고정된 게 하나도 없으니 잘 할 때까지 지켜 보다보면 언젠가는 대번 대번 돌아가게 됩니다. 자기 주인공에 맡기고 마음을 내준다면 내 마음과 같이 돌아가서 불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고 그저 남이 이러든 저러든 눈 똑바로 뜨고 귀 똑바로 세우고 냄새를 똑바로 맡고 생각을 똑바로 해서 모든 업식에 본이 되게 생각을 하십시오. 그래야만이 집착이 없고 어려운 병고도 오지 않을 것이고, 병고가 났다 하더라도 병고가 없어질 것이고 말입니다. 만약 남을 해(害)하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도리를 찾는다면 십만팔천리로 멀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도리를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실 때는 진짜로 그렇게 해서 실천궁행을 하라는 요지를 내리신 거지 너희들 죽어서 천당에 가니까 그렇게 믿으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살아서 천당 맛을 보고, 살아서 지옥 맛을 보고 살아서 삶의 보람을 알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만 사람답게 사는 건지도 알게 된다는 걸 가르치신 것입니다. 세세생생 끝간 데 없이 영원한 삶에 이르기까지의 길을 인도하신 거라는 걸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야합니다.

광력·전력·자력·통신력!


스님 법문 중에 내 안에 광력·전력·자력·통신력이 충만하니 그것을 꺼내서 쓰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은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과연 그러한 힘이 저에게도 확실히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고, 그것을 꺼내서 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인지요?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면서 조그만 거 하나에서부터 천 가지 만 가지 다가오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지수화풍으로 뭉쳐진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써 운전만 잘한다면’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운전! 우리가 지수화풍으로 돼 있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이나 자력 통신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인데, 이 몸이 빈 껍데기가 아니니까 그렇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오신통 안에서 벗어나서, 내 몸속에서 내 마음이 벗어나서 내 몸을 이끌고 다니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으니까 속에 들어 있는 의식들도 다 그냥 내가 지배하는 대로 따라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근본인 부(父)와 현실의 자(子)가 상봉을 하지 못하고는 이 깊은 뜻은 모릅니다. 이 심오한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전화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전화기를 내 집에 설치를 안 해놨으면 누가 내 집에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내가 전화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자성을 발견하는 데에, 견성하는 데에 역점이 있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가는 데에 역점이 있고, 병고 애고를 무너뜨리고 녹이는 데에 역점이 있고, 유전성을 녹이는 데 역점이 있고, 또는 영계성 인과성 세균성을 카바하는 데 역점이 있는 공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지수화풍으로 바탕이 돼 있어서 지수화풍을 먹고 살면서도 감사한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물이 없으면 전력이 없듯이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 인간에게 각자 주어져 있지 않다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거를 알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재료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고등동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오신통이라는 굴림을 굴리는 작업이 있습니다. 오신통이라는 그 자체는 바로 우리가 심안으로 보는 것을 말하고 무전 통신기처럼 말하는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소리가 안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천안통 천이통’ 이럽니다. 또 신족통,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 이 대자연의 법칙이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광력이나 자력, 통신력, 전력이 우리한테 얼마나 좋은가를 한번 또 들려 드릴까요? 통신력은 왜 있는 줄 아십니까? 바깥에서 누가 왁작왁작하고 싸우고 그러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결정적으로 누가 잘못했는 것도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눈과 귀와 코로 모든 것을 동시에 알 수 있듯이 안에서 고장난 거는 안에서 병력을 쓰고 동시에 모든 것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 것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오고 가는 것은 천리만리라도 한 찰나에 왔다가 한 찰나에 갑니다.
지극한 마음의 불을 켠다면 부처님께서 응신이 되셔서 응해주십니다. 부처님의 천백억화신이 응신이 돼서 나투실 때, 그게 통신력인 것이죠. 통신력이 충만하다면 자력도 충만합니다. 모두 여러분이 발견을 못했기 때문에 못 쓸 뿐이지 누구나가 다 갖추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될 수 있는 자격은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실험을 합니다. 실험을 직접 하는 겁니다. 뭐 누구한테 물어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실험을 그냥 하는 거예요. 자력과 통신력, 광력, 전력이 다 여러분한테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진짜로 믿고 실천을 하는 데에서 아주 멋진 게 나올 수 있습니다. ‘멋진 게’라는 것은 묘법이란 뜻입니다. 묘법이 다른 게 아니에요. 불가사의한 법이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거예요. 뭐 불가사의하다 이러고 아주 위로 볼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니깐요. 들어보지도 못하고 먹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모두들 모르는 것이지 한번 실험해 보고 체험해 본다면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땐 그런 생각을 합니다.‘내가 예전에 자장면 한 그릇을 먹어 봤기 때문에 그 맛이 생각이 나는 거구나. 그때 그 자장면 참 맛 좋았어!’ 이렇게요. 그런데 그걸 먹어보지도 않고 보지도 못했다면 생각이 뭐 납니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니깐 여러분은 항상 열심히 법문을 들으시고 그렇게 하십시오. 열심히 들으심으로써 속의 업식들이 전부 들어요. 여러분 한 사람의 마음이 듣는 순간 수십억의 의식들이 들어요. 듣는 대로 그대로 반영을 해요. 마음으로 듣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아주 공덕이 될 겁니다.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스님, 저는 직원이 십여 명 정도 되는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 안됐든지 할 때는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참 많이 생깁니다. 그리고 남이 저를 괴롭힐 때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이 생기고 그러는데 스님의 법문을 듣거나 할 때는 그렇게 안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생활 속에서는 그게 잘 안됩니다. 이러한 옹졸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고 지혜 있게 바꿀 수 있을지요?


그러니까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운전수한테 ‘차를 잘 끌고 다니게 하고 위로는 기름도 떨어지지 않도록 기름을 잘 넣어가지고 다녀라.’ 이렇게 하시란 얘깁니다. 운전수가 차를 끌고 다니지 차가 운전수 끌고 다니는 것 보셨습니까? 그러니깐 차를 부서뜨리지 않고 조심해서 잘 끌고 다니는 것도 운전수요, 또 기름을 떨어뜨리지 않고 잘 넣어가지고 다녀서 사고 안 나게 하는 것도 바로 운전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어떠한 사람이 아주 악한 마음을 가지고 나한테 다가서더라도 ‘아, 저 사람하고 나하고도 둘이 아닌데, 생명의 근본도 둘이 아니요, 마음을 내기 이전도 둘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을 밝게 해서 그저 한마음이 되게 당신만이 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맡겨 보세요. 그러면 상대에게 나가던 증오심이 스스르 내려놔지게 됩니다. 그 어떤 것도 거기다 다 맡기시고 그냥 편안하게 생활하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사량으로 생각을 하고 자기를 망하게 했다고 하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즉 말하자면 ‘나는 당신의 시자니까, 내가 사량으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을 오해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됐을 때 잘못됐다고만 할 게 아니라 잘할 수도 있는 문제가 생기니까, 하여튼 모든 것은 당신만이, 의합하게 같이 불이 들어와서 같이 밝은 데서 살게끔 당신만이 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맡겼을 때에 그 사람 가슴에도 불이 들어와서 내 마음과 아주 하나가 되니 나중엔 사과를 하게 됩니다. 더 친절해질 수도 있고요.
그러니깐 회사의 사장이니 회장이니 이런 분들이 먼저 마음공부를 해나가면 직원이 수백 명 수천 명 되는데도 끄떡없이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 명 안팎으로 있으면서 그거를 하나 리드 못해 나가겠습니까? 여러분이 통로를 잘못 찾아들어갔다면 그 통로는 영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금맥이 나올 수 있는 통로를 찾아야 진짜 금이 나올 수 있겠죠. 그렇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통로가 있다는 걸 믿으라는 말입니다! 부처님 거죽을 믿으라는 게 아니고, 그림을 믿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 골수를 알고 부처님 마음을, 둘이 아니라는 그 도리를 알고 그 마음을 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여러분 마음의 통로가 아니라면 역대 조사들이나 역대 부처님들의 마음을 모를 겁니다. 아니,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의 마음도 모를 텐데요! 이 말이 틀렸습니까? 그러니 어떤 괴로움이 있다 해서 어디 찾아다니면서 얘기할 게 아니라 ‘스님들이나 역대 조사들이나 일체제불이 다 내 한마음 주인공 속에 있구나, 그러니 여기에서만이 해결을 할 수 있다.' 하고 무조건 믿고 내려놓는 겁니다. 왜 이런 게 있죠. 무조건 용광로에 넣는 작업만 하니까 무조건 새 쇠로 생산이 돼서 나가더라, 이런 거 말입니다.
그 마음속에 통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사람이 잘못 해도 거기다가 맡겨 놓고 인의롭게 부드럽게 말해 주고, ‘당신만이 저 사람의 물리가 터지게 해줄 수 있어, 바로 우리 직원들을 말이야.' 하고서 맡겨 놓고 부드럽게 ‘잘 몰랐을 때, 잘 못했을 때의 내 모습이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미운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잘못될래야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거를 다 진짜로 믿는다면, 진짜로 믿는다면 고꾸라지든지 가든지 오든지 그런 걸 상관 안하고 거기다 턱 맡기게 되니 진짜로 아무 괴로움이 없어요. 돈이 많이 벌려도 걸림이 없구요. 돈이 안 벌려도‘너만이 할 수 있다’ 하고 거기다 놓기 때문에 괴로운 게 없어요. 그런데 믿지 못하는 까닭에 그렇게 괴롭게 사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열심히 무조건 믿고 거기 맡겨 놓고 지켜보시고 그러세요. 그러고 거기에 걸림이 없어야 됩니다. 몇 만냥을 벌더라도, 또 욕심을 내서 ‘저걸 벌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이 나도 당신 혼자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닙니다. 수십억의 의식들이 한데 모아서 그렇게 생각을 한 거지요. 그러니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모든 도리를 간단히 생각하세요. 돈을 수만, 수만억을 번다하더라도 걸림이 없어야 돼요. 왜냐하면 그것도 자기 혼자 갖는 게 아니잖아요. 혼자 번 것도 아니니 혼자 가질 것도 아니고, 혼자 쓸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거기 걸립니까. 내가 이렇게 많이 버니까, 내가 많이 번다고 하는 ‘내가’라는 생각이 나를 내세우기 때문에 그게 걸리는 거지, 내 한마음이라는 주인공에서 본다면 그렇게 나가 많은데, 일체가 다 나 아님이 없는데 구태여 왜 거기 걸립니까?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관하고 지켜보고 내려놓고 하면서 일체를 나와 같이 보는 안목을 키워나가면서 더 편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세요. 그거는 여러분의 마음을 증득해야 알게 됩니다.

“1천원으로 부처님 말씀 전하세요”
최상의 보시인 법보시 공덕을 지으세요

● 참여방법
-현대불교 매월 ‘법보시 후원금’ 1구좌 1,000원 이상
-현대불교신문 보내는 곳 : 군부대, 교도소, 경찰서, 병원법당, 복지시설 등
-후원 계좌 : 국민은행 006-01-0783-830 / 농협 053-01-236053
(예금주 현대불교신문사)
-자동이체로 하면 더욱 편리합니다.
※자동이체 신청은 전화 한통화로 해결됩니다.
● 문의:현대불교신문사 고객부 (02)2004-8211, 8212 팩스(02)737-0697
200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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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