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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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 스님의 스님이야기-성해 스님
힘 쓰는 일 있을때 늘 앞장
‘울력대장’ 별명 잘 어울려

도반과 지인들 중에 제주도 출신들이 몇 있다. 제주도라는 지역 자체가 육지에서 멀리 뚝 떨어진 특수성을 가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내가 아는 제주도 사람들은 제각기 특별한 개성들을 가지고 있다. 어딘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성해 스님이 있다.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해인강원에서다.
해인강원은 100여명의 대중이 수행생활을 하는 까닭에 대중화합이 중요했다. 대중화합은 스님들이 각자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임과 명칭도 다양했는데, 당시 해인강원은 다른 곳에는 없는 특이한 소임이 있었다. 산문출입이 제한된 스님들의 필수품을 구입해주는 ‘마을시자’, 법당의 목탁을 치는 ‘목탁대장’, 1, 2학년에 해당하는 치문, 사집반 스님들이 생활하는 ‘현당’의 대 소사를 책임지는 ‘현당대장’ 등 산사의 스님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희한한 소임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정식 소임에는 없지만 스님들 특성에 따라 붙여지는 별칭도 있었는데, 성해 스님에게는 늘 ‘울력대장’이라는 별명이 붙곤 했다.
산사에서 특히 대중처소에서 울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대중공동의 일을 뜻한다. 개인의 사정과 일에 우선하여 대중이 다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이 울력이다. 오죽했으면 ‘울력목탁이 울리면 누웠던 송장도 벌떡 일어나서 나온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다른 때에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뿐 드러나지 않던 성해 스님이 울력시간에는 누구보다 두드러지고 빛이 나곤 했다.
매일 아침 마당을 쓸 때에는 다른 스님들보다 훨씬 긴 빗자루- 보통 빗자루에 자루를 덧대어 길게 만든-를 들고 앞에서 쓱쓱 쓸어나가면 그 넓은 마당이 순식간에 훤해지는데 그 넘치는 기운에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울력이 대중스님들이 절대로 빠지거나 피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땀이 나도록 애를 쓰고 힘을 써서 하지는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그래서 스님들 사이에 전하는 말중에 ‘땀나게 울력하면 빌어먹는다’고 하여 적당한 선에서 일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해 스님은 달랐다. ‘빌어먹는 것은 출가인의 본분사인데, 그 말은 땀나게 일해야 중노릇 잘 하게 된다는 말’이라며 앞장서 일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김장울력이나 화단조성 등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늘 앞장서는 것은 물론, 몇 사람 몫 일을 하고 뒷정리까지 도맡았다.
90년대 초반 해인강원에도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학인들 사이에서 컴퓨터 열풍이 불어왔다. 컴퓨터 수업이 정규 교과목에 채택이 되었고, 워드프로세서와 통신 등 다들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성해 스님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스님들이 수행과 공부에 집중해야지 새로운 문명의 흐름을 따라가면 스님들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속가공부에 더이상 마음을 두고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재가불자의 도움을 받아서 해도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강원을 마치고 바로 장경각 천일기도를 자원해서 기도정진에 들더니 3년기도를 회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원의 중강소임을 맡았다. 평소 글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다더니 기도를 하며 내면의 변화를 가진 모양이었다. 한 시간 강의를 위해 몇 배 시간을 공부 한다며 털털하게 웃는 성해 스님의 방에는 최신형 컴퓨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렇게 극구 컴퓨터 사용을 거부하더니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필요해서 사용하게 되었다며 이왕 하게 되었으니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했다. 스님들은 누구나 고집스런 면이 있고 그 고집을 수행의 자양분으로 살아가는데, 때로 그 고집을 버리는 것 또한 수행자 진면목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성해 스님의 변화는 현재의 자신의 판단과 생각에 충실하고 때로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과단성마저 보여주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가을, 몇 명의 도반이 서산의 우리 절에 다녀갔다. 여전히 수수하고 털털한 성해 스님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리저리 도량을 둘러보고는 일거리가 적지 않아 보이는데 조금 도와줄까 하며 넌지시 울력대장 품새를 드러냈다.
서울에서 소임을 접고 다시 산사로 내려와서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일거리에 하나씩 손을 대고 있다. 마당구석의 나무토막들도 치우고, 창고를 정리하고 관물대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눈에 걸리는 일거리가 줄지않고 있는 걸 보면서 자주 ‘울력대장’ 성해 스님을 떠올린다. ■서산 부석사 주지
200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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