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지는 퍽도 술을 즐겼습니다.
“딱 한 잔만…”
이 말을 노상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사업하느라 호기 넘치게 술을 마셨고, 늘그막의 아버지는 삶이 버거워 술에 기대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언제나 집안이 시끄러웠습니다. 완벽주의자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아버지는 어쩌면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젊어서부터 평생 함께 고생하며 살아온 아내 말고는 그 모진 설움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는지 술에 취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참 힘들게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절대로 자식에게는 함부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어도 몇째 아이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정류장을 향했을 정도였습니다.
종종 밤늦어 정류장에 내렸을 때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입에서는 소주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이제 오냐?” 라며 반갑게 다가오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내 무거운 책가방을 받아서 어깨에 메고는 동요를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앞장서서 집으로 향하였지요.
머리가 커진 자식이 속을 썩일 때는 어머니에게 책임을 추궁하였지 자식에게 직접 심한 꾸중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삶이 점점 버거워지자 아버지의 술은 심해갔고 그 모습을 보다못해 자식들이 거세게 대들면 어머니는 자식들을 말리느라 더욱 노심초사하였습니다.
“그럼 못쓴다. 네 아버지다.”
지금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참 나약하고 지친 한 남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거대한 벽이나 든든한 기둥이기보다 아내와 자식에 대해 알뜰한 애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맘껏 물질로 충족시켜주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한 ‘남자’였습니다. 술이라는 지독하게 미운 방해꾼이 있었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는 언제나 어둔 골목길을 비틀비틀 걸어 올라오며 가족을 향한 사랑의 노래를 흥얼거린 가장이었습니다.
위엄있는 가장으로서가 아니라 저에게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품게 해준 분이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술에 취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른 가장을 숨지게한 사건이 신문에 실렸을 때 저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만 한 가정의 기둥인 아버지가 가장 가까운 가족의 손에 의해 숨을 거두는 일은 비극 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신문에서 접할 때마다 부랴부랴 경전들을 뒤져봅니다만 애석하게도 아버지에 관한 가르침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여성에게 주는 가르침은 드문드문 보입니다만 남성, 그것도 ‘아버지’에게 주는 가르침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경전을 읽어가다보니 경전 속에 담긴 부처님의 다양한 모습들이 바로 이 시대 아버지들이 본받을만한 모델이었습니다.
성불하신 뒤에 고향을 찾은 부처님은 여전히 사랑으로 애타하는 야소다라를 따로 만나 그녀의 마음을 달래줍니다. 사리불과 목련 존자가 동석하였지만 야소다라가 맘껏 그리움을 풀도록 자신을 맡겨준 그런 ‘지아비’였습니다. 가장 완전한 재산을 물려주려고 자식인 라훌라를 출가시킨 뒤 사람들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우뚝 서도록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자비롭게 가르침을 베푸신 ‘아버지’였습니다.
법화경을 읽어보면 부처님은 ‘중생의 아버지’로까지 격상됩니다. 법화경 속에서의 아버지는 불이 난 집안에서 노느라 정신 팔려 있는 자식들 때문에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입니다. 꾀를 내어 자식들을 모두 끌어낸 뒤에는 너무나 고마워서 약속한 것보다 더 큰 선물을 안겨주며 더할 수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서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뒤에는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부정(父情)을 죽는 순간까지 억누르고 숨겨가면서 자식을 번듯한 자기자리로 되돌려놓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나아가 그릇된 삶을 사는 자식들에게 목이 쉬도록 바른 길을 가르쳐 주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이 죽었다고까지 하면서 자식들을 일깨우는 그런 아버지가 바로 법화경에서 그리는 아버지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가 어지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아버지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권위도 위엄도 중요하지만 아내와 자식들에게 소박한 사랑과 인간미로 다가가는 것이 가장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지름길이 아닐까 합니다. 삶이 버거워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려도 ‘우리 아버지’라며 따뜻하게 안아주고 받아주는 내 편이 있어야 술 마실 기분이 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