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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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한명우(취재부 기자)
경을 많이 왼다 해도 뜻을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 한 뜻이라도 듣고 행하며 제도됨만 같지 못하다. <법구비유경>

요즘에는 신문과 방송을 보기가 겁이 날 지경이다. 며칠 전 버스 안에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집에 가던 여고생을 끌고 가 폭행한 뒤 교복과 책가방을 빼앗아 불태우고 폭행한 10대들이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한 달 전쯤에는 교실에서 힘이 센 학생과 약한 학생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반 아이들이 휴대폰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TV로 방영돼 충격을 주었다. 힘이 약한 학생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는데도, 다른 학생들은 유유히 즐길 뿐이다. 이쯤이면 교육이라는 말의 무색함을 떠나 인간 본성에 의문을 갖게 할 정도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자고 일어나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청소년 폭력 문제.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꽤 많이 무뎌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식의 무감각이 청소년 폭력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인간의 본성을 보는 데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하지만 불교는 인간의 심성을 그 어느 쪽에도 치우쳐 보지 않는다. 마치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로 보는 것이다.
이제는 종교적 감각의 교육을 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청소년들에게 부처가 될 성품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하고, 그것을 찾아내도록 이끄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의 책무이기도 하다. 우리 불교부터 문제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프로그램을 운영해보는 것은 어떨까.
200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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