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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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담 스님의 스님이야기-도견 스님/남양주 무량사 주지
멋스런 누더기 누비옷
디자인해서 지어 입어

얼마전 신문에서, 일본의 기후JCI회원들이 40대에 접어든 기념으로 드라마 ‘겨울연가’ 주인공인 배용준씨 복장이라는 이른바 ‘욘사마 복장’을 하고 한국을 찾아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유행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도견(度見) 스님이 떠오른다. 1970~80년대 스님들 사이에선 누더기 옷이 유행했다. 도견 스님은 다양한 색상의 천조각을 모아 디자인을 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누비 옷을 멋지게 입고 다녔다.
몇해전 프랑스 패션쇼에서 천 조각들을 조화롭게 디자인한 의상들이 선보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상들은 이미 도견 스님이 개발했던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도견 스님의 예술적인 감각은 주위의 인정을 받았다.
누더기 옷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승복을 큰스님께 받으면 마치 법을 전수받은 듯 좋아했고, 큰스님의 훈기를 느끼며 닮아가려고 발심하며 열심히 입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 사이에서는 새 옷보다 누더기 옷이 수행자의 상징처럼 되었고, 그럴수록 큰스님의 누더기는 더욱 진가를 발휘하여 산골짝 스님들의 유행(遊行, 돌아다님)은 계절을 초월하여 유행(流行)이 되었는가 하면, 무더운 여름철에도 입고 다니는 기현상도 벌어져 도심지 스님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었다.
80년초, 나는 도견 스님과 처사 한분과 동행하여 설악산 오세암 산행을 한 적이 있다. 비선대를 올라가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자 공원관리소에서 입산을 통제하고, 수십명의 산악인명구조대원들은 낙상한 사람을 구해 내려오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공원관리소 직원들은 우리를 보더니 산 넘어 절에 가는 스님인줄 알았는지 통제를 하지 않았다.
도견 스님은 늦은 시간이고 눈발이 염려되는 듯 망설였지만 나는 모처럼의 등산이기도 했고, 인사까지 받았는데 그냥 돌아가서야 되겠느냐며 고집을 피웠다. 여러번 다닌, 모두에게 익숙한 등산로였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빠르게 걸었다. 걷다보니 어둑하고 약간의 눈발조차 분위기를 더욱 즐겁게 해주는 것 같았는데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기 시작하더니 눈발이 굵어졌다. 도견 스님은 처사를 먼저 오세암에 보내고 우리는 그 발자국을 따라 계속 산행했는데 눈이 쌓이다보니 발자국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두운 데다가 산봉우리들이 눈으로 덮여 방향감각마저 흔들렸다.
그렇지만 설악산의 ‘산악도사’라 할 수 있는 도견 스님의 감각적이고 조심스러운 산행은 계속되었다. 당시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던 나는 땀에 젖고 눈에 젖어 몹시 힘이 들었고, 피곤해 졸음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걷는데 진전이 없었다. 결국 걷는 것을 포기하고 안 되겠다 싶어 소리를 지르면서 위치를 알렸다. 만약을 위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코자 눈을 치우고 나뭇가지를 모았다. 불을 피우고자 하였으나 찾아보니 성냥 3개가 전부였다.
길은 못 찾아도 성냥만 있으면 추위를 피할 수 있고 내가 있는 위치를 상대에게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성냥개비를 하나 둘씩 불을 붙였으나 눈과 땀에 젖어 부지직 하면서 꺼져버렸다. 성냥개비를 다 소비하고 나니 초초하고 불안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도견 스님은 초조해 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만 펑펑 쏟아지고,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만 울릴 뿐이었다.
그런데 마침 희미한 빛이 우리쪽을 비췄다. 거듭 소리를 지르자, 도견 스님은 메아리가 울리면 방향을 찾기 어려우니 랜턴빛이 우리쪽을 비칠 때 소리를 질러 방향을 알리자고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마침내 우리를 찾으러 내려온 스님과 처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오세암과의 거리가 불과 500여m정도였다. 언젠가, 어느 등산객이 오세암 500m를 앞두고 조난을 당해 죽었다는 신문기사를 봤는데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그 꼴이 될 뻔했다.
예정대로라면 다음날 백담사로 가야 하는데, 피곤하기도 했지만 두꺼운 누더기옷이 마르질 않았다. 덕분에 3~4일을 오세암에서 보내게 됐다. 오래간만에 사방이 조용한 곳에서 보내니 누더기를 주었던 도반의 따뜻한 마음이 생각났다. ‘큰스님 옷’이라며 나에게 주었는데… 공부 잘 하라는 뜻이 들어있을 터였다. 내가 이 옷을 입을 자격이 되나 되돌아보았다. 더러 망상이 생길때 누더기옷을 입고 있으면, ‘나는 누구인가’ 화두를 챙기게 된다. 나의 현 위치를 점검하게 하고 초발심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200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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