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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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박범벅경과 국수경/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시비 가리기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을때가 있지요
현실을 수긍하고 되돌아보면 더 잘 보일겁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 수많은 스님들이 다툼을 벌였습니다. 그 후에는 서로가 그 죄에 대해 벌을 주느라 다시 옥신각신 말싸움이 일었습니다. 스님들은 한참 말싸움을 벌이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수행자의 법에 어긋나는 여러 죄를 벌하였지만 오히려 말싸움이 일었다. 우리끼리 죄를 벌하는데 옥신각신 다툼이 인다면 이로 인해 싸움이 더 깊고 무거워진 채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영원히 싸움을 없애지도 못하게 될 것이고, 대중들이 이로 인해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에 휩싸인 스님들에게 부처님은 명쾌하게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풀로 땅을 덮듯이 하라. 그로써 다툼을 없애면 된다.”(<사분율>3권)
며칠 전 한 세미나장에서의 일입니다.
아주 예민한 현안에 대한 논문 발표와 논평의 순서가 모두 끝났을 때 나는 좀 불만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논문을 발표하는 발제자의 견해가 나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나는 그 전문가의 발표를 들으면서 잠시 뒤에 다른 논평자와 첨예한 논쟁이 오가길 바랐고 내심 발제자가 무참하게 ‘깨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역할을 해줘야 할 논평자는 발제자와 같은 의견이라면서 별다른 견해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후 청중들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노인 한 분이 발언권을 얻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왜 꼭 반대되는 의견이 서로 대립해서 싸워야 합니까?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숱하게 보았던 그 싸움들이 나는 보기 싫습니다. 대립해서 싸우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긍정하고 보완할 사항이나 대안을 찾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순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시시비비를 명백하게 가리지 않고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려는 저 ‘구세대’가 미워졌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장을 나왔을 때 자꾸만 그 노인의 말이 귓가에 울렸습니다.
‘그래, 서로 다른 의견을 대립시켜서 무얼 얻으려 한 거지? 결국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패하는 꼴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발전적인 길을 찾기 보다는 패하여 무릎을 꿇는 상대방을 보며 승리감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옛날 어느 절에 관음기도를 하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관세음보살 기도를 할 때, ‘관세암보살…’이라고 하였습니다. 지나가던 객스님이 이 소리를 듣고 따져 물었습니다.
“아니, 관세음보살을 왜 관세암보살이라고 합니까?”
그런데 기도하던 스님은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천만예요, 관세암보살입니다”라고 우겨댔습니다. 두 스님은 ‘관세음이 옳다’ ‘관세암이 옳다’라고 싸우다 결론을 내지 못하여 결국 큰스님께 판결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큰스님은 다음날 판결을 내려주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관세암보살’이라 주장하던 스님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는 호박범벅죽을 남몰래 쑤어다 큰스님께 가져다 드리면서 다음날 꼭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잠시 후에는 ‘관세음보살’이라 우기던 스님이 국수를 가져와서는 자기편을 들어주셔야 한다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윽고 날이 밝아서 찾아온 두 스님을 앞에다 두고서 큰스님이 판결을 내렸습니다.
“호박범벅경에 보니 관세암보살이라고 나와 있고, 국수경을 보니 관세음보살이라고 적혀 있더구나.”
말씀을 마친 큰스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뜨셨습니다.(<욕심을 버리는 방법> 철우스님 지음, 민족사, 78-79쪽)
어떻습니까? 큰스님의 처사가 조금도 미워 보이지 않지요?
물론 옳은 건 옳은 거고 그른 건 그른 겁니다.
절대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바뀌어서는 안 되고 뒤섞여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가끔은, 아주 가끔은, 옳고 그른 것을 가리기 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시비를 가려야 할 모든 경우가 바로 그러한 때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벌어진 상황을 수긍하고 그 자리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며 미래지향적인 길을 찾아내어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간 후에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분쟁의 현장을 일단 넘어선 뒤에 차분히 돌아보면 시시비비도 좀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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