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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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첩자와 자객/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독창적인 ‘돈오’사상으로 선종史 바꾼 혜능
첩자와 자객마저 감동시켜 제자로 만들어

결제 때는 보름마다 포살을 한다. 비구계(사미계)와 보살계 포살을 번갈아가며 한다. 보살계는 6부대중이 모두 함께 모여서 포살을 해도 무방하지만 비구계 포살은 사부대중을 엄격히 나누어서 실시한다. 또 계목이 대외비(?)인 까닭에 포살을 하는 법당(혹은 큰방) 앞에는 죽비를 비껴 매고서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소임자를 반드시 세워놓는다. 사실 비구(니)율장은 비구(니) 외에는 열람할 수 없게 되어있다. 요즈음은 율문까지 개방화된 시대인지라 이 조항이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그 보안의식은 상징적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부처님을 개금하거나 가사를 만들 때도 근처구역에는 반드시 줄을 치고 ‘금란방(禁亂榜)’이라고 써 붙여놓는 것도 부정한 사람과 나쁜 기운의 개입을 막으려는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따라서 훔쳐갈 대상이 물건뿐만 아니라 정신자산까지 넓혀졌다. 불법(佛法)도 마찬가지다.
당나라 육조혜능 선사의 법은 당시 선종의 근간을 뒤흔드는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따라서 그 법을 훔쳐가려는 시도가 더러 있었다. 훔쳐간다기보다 그 이론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기존 이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반대파에서 선사의 몸에 위해를 가해 교세를 꺾으려는 사건들이 〈단경은 물론 그외 여러 어록에 나온다. 그때도 지적소유권은 말할 것도 없고 세력팽창의 경쟁 와중에서 많은 충돌이 있었고 더불어 첩자와 자객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실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남종선 사상의 독자성과 창조성은 그만한 가치를 가진 지적자산임을 반영한 사건이라고 보아야겠다.
기득권자인 ‘점수(漸修)’ 교단의 오너인 신수대사는 어느 날 남방에서 기라성같이 등장한 ‘벤처선사’ 혜능의 ‘단박에 깨친다’는 돈오(頓悟)의 신이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제자 지성(至誠)을 잠입시킨다. 보내면서 이런 당부를 하고 있다.
“그대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도록 해라. 혜능의 처소에 가서 그의 설법을 잘 듣기만 하라. 내가 그대를 보내서 왔다고 말하지 말라. 다만 그의 설법을 듣고서 그 의미를 잘 기억해서 돌아와 내게 이야기해 주기 바란다. …… 속히 돌아오도록 하라. 그리해 나의 이러한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라.”
첩자는 우선 재발라야 한다. 그래서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게다가 신속성이 생명이다. 꼬리가 길면 그 흔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빨리 돌아오라는 말도 잊지않고 있다. 또 첩자로 인해 파견자에게 피해가 돌아오도록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첩자 지성은 ‘돈오’의 가르침을 듣다가 거기에 매료된 나머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귀화해 버린다. 그때 혜능 선사는 ‘첩자’라는 말로써 지성을 평가한다.
“그대가 신수 선사의 처소에서 왔다면 분명히 첩자(細作)임에 틀림 없으렸다.”
“말씀드리기 전에는 그렇습니다만, 이미 말씀을 드렸으니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원문에는 첩자가 ‘세작(細作)’으로 되어있다. 엄밀하고 비밀스럽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일을 처리하여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뜻이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셈이다.
지성이 세작(정보원)이라면 지통(至通)은 자객에 가깝다. 〈전등록〉 5권에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둘 다 나중에는 혜능의 십대제자 명단에 포함된다. 그는 북종선 선승인 보적선사의 부탁을 받고서 칼을 품고 혜능 선사의 방으로 침입한다. 선사를 해치려고 칼을 세 번이나 내리쳤지만 선사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이에 감동한 나머지 마음을 돌이켜 출가해 혜능의 제자가 된다.
선지식의 법력은 정보원과 테러리스트까지도 감동시켜야만 하는 냉엄한 현실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다.
200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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