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종교실 작은 법당서
환자들의 마음 보듬어
며칠전, 법경 스님으로부터 건국대 부속병원 종교실에 법당이 마련되어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갔다. 비록 좁은 공간의 4평짜리 법당이지만 병원측에서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종교생활을 배려한 듯 하다.
이곳에서 법경 스님은 대단한 친화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사탕을 곳곳에 갖다놓고 누구든지 꺼내 먹을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각 병실을 순회하며 환자들을 위로한다. 그렇다고 종교를 가려가며 다니지는 않는다고 한다. 몸뚱아리 아픈 사람에게 무슨 종교적인 차별심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병실을 순회하다 보면 온갖 일들을 다 겪게 되는데 더러는 ‘부처님’이 되기도 하고 ‘아이고 보살님’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법경 스님이 어느 병실을 방문했을때 일이다. 연로하신 뇌졸중 환자가 있었는데 불편한 몸으로 식사를 하다보니, 입가에 음식물을 묻히는 등 주위가 좀 어지럽혀 있어 닦아드리고 챙기면서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있는가 여쭸더니 없다고 했다. 이후 법경 스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몇 차례 보살펴 드리며 기도를 해드렸다. 어느날 병실을 찾았으나 자리에 안 계셔서 퇴원을 했구나 했는데, 다른 병동을 순회하던중 우연히 그 환자를 만나게 됐다. 자신을 보자마자 대뜸, “부처님이 오셨다”며 반가워하더란다. 환자가 불편할 때 몇 차례 위로하며 기도를 해준 것이 전부인데 환자분 가슴속에는 잊혀지지 않았던지, 불편한 몸으로 더듬거리면서 ‘부처님’이라는 말을 몇차례 반복하며 자기가 스님을 통해 불교를 알고 부처님을 알았다고 했단다.
법경 스님은 “수행이 부족한 소승에게 부처님을 비유를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으니 편하게 스님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하루속히 건강이나 되찾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기도를 정성껏 해주고 일어서는데, 그 환자는 다시 몸을 어렵게 일으키더니 주위 환자들을 보면서, 이러한 스님이 ‘부처님’이라는 뜻을 전하고 싶어서인지, 거듭 ‘부처님’이며 염주알을 굴렸다고 한다.
언젠가는 일용직 직원이 남편의 49재를 지내고 싶은데 돈이 없다며 상담을 해 오더란다. 스님은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집안에서 정성스럽게 고인의 왕생극락을 기원할 수 있는 음식물을 차려놓고 기도를 하면 됩니다” 했더니, 굳이 스님에게 재를 부탁해왔다. 당일 그분의 자택을 방문해 정성스럽게 재를 지내드렸다. 끝내고나니 그 집 할머니가 “아이고 보살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상담했던 보살님은 봉투를 주더란다. 그런데 월세 30만원을 내면서 지하방에서 지내는 어려운 살림을 보니 그 봉투를 받을 수 없어, “이미 아드님(고인)에게 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학비에 보태라”며 돌려주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는 “아이고 보살님, 감사합니다”란 말씀을 또 하셨다.
더러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표시하는 환자들이라도 만나게 되면 스님은, 함께 봉사하는 훌륭한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계시니 방문할 수 있도록 연락해 주겠다며 병실을 체크해 원목실에 알려준다. 또 함께 봉사하고 있는 목사님이나 신부님도 각 병실을 방문하면서 불교신자라도 만나면 함께 일하는 훌륭한 스님이 있으니 말씀드리겠다며 자신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한 수행자의 인간적인 배려가 따뜻하다고 느끼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에게 불교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한 기회가 되었고, 환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까지 불교적 정서를 확산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 전문분야 포교라는 것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늘 재정적인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지만 법경 스님은, 환자들이 건강을 찾아 부처님 인연에 감사하고 사찰의 문을 두드릴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포교라는 것이 어느 한 사찰의 원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는 포교사들 원력에 의한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불사를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러한 것이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사찰이라는 수행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성을 순화하고 공동체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이타적인 정신을 배양할 때, 우리 사회는 사찰의 존재와 역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한 공덕을 찬양하기 때문에 복이 된다고 할 것이다.
나는, 건국대 부속병원 종교실의 작은 법당에서, 병고(病苦)로 불안하고 초조한 환자들을 위하는 ‘약사부처님’의 자비스러운 미소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