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43> 누더기 옷과 이불/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분소의는 무소유 상징…종이옷 입은 경우도
단벌 승복 세탁할 땐 바깥 출입 못하고 좌선

삼의일발(三衣一鉢). 승가의 무소유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삼의는 세 벌이 아니라 속옷과 겉옷 그리고 가사를 포함해 한 세트를 말한다. 따라서 말만 삼의(三衣)이지 실질적으로는 한 벌인 셈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발우 하나 옷 한 벌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수행자의 검소청빈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 옷이란 것도 시체를 쌌던 것이나 버려진 천을 주워서 기워 입었다는 분소의(糞掃衣)였다. 선종시대에 오면 납의(衲衣)로 표현이 바뀐다. ‘납(衲)’도 기웠다는 뜻이다. 납의도 세상사람들이 쓸모가 없어 내다버린 여러 가지 낡은 천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옷을 말한다. 그래서 누더기라고도 한다.
그런데 그런 구담(瞿曇:고타마) 선사의 ‘훈령’보다도 한 술 더 뜬 경우가 있었다. 형악곡천(衡嶽谷天)선사의 별명은 ‘지의도자(紙衣道者)’이다. ‘종이옷을 입은 도인’이란 뜻이다. 종이옷은 헝겊 옷보다도 더 형편없는 옷으로, 그 종이옷으로 몸을 가렸다는 의미이다.
그는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 선사의 법을 이은 후 형산에 은거하면서 세수도 하지 않고 때묻은 얼굴로 지내면서 반쯤은 실성한 차림으로 종이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이런 게송을 흥얼거리고 다녔다.
“미친 승려가 꿰맨 곳 없는 종이적삼을 입고서 한 철을 넘기자는 것일 뿐.
누에치는 고생에 애쓰는 단월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구나.”
그런 너절한 형색으로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시줏물 받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옷 잘 입었다고 도력까지 높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동산(洞山)에서 오는 날 허름한 그의 모습을 보고서 탐장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종이옷 속의 일인가?”
“옷 하나 겨우 몸에 걸치면 만사가 모두 여여 합니다.”
곡천 선사 못지않은 서산 량(西山 亮)선사는 종이이불을 덮고 살았다. 노숙자의 신문지를 연상하면 될 것 같다. 천성이 고고하고 검소하여 종이이불 한 장으로 지냈는데 멀쩡한 곳은 찾을 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추우나 더우나 다른 이불로 바꾼 적도 없었다. 보다 못한 시자가 선사 몰래 명주이불로 바꾸어 놓았다. 선사는 깜짝 놀라면서 그를 불러 꾸짖었다.
“나는 복이 없는 사람이다. 평생 동안 단 한번도 비단옷을 입은 적이 없다. 더구나 나와 30년을 함께 지내온 이 종이이불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일본의 다꾸앙(澤庵 1573~1645)선사 역시 옷이라곤 몸에 걸치고 있는 승복 한 벌이 전부였다. 하루는 도반과 신도집을 방문하여 축원을 해주기로 약속하였다. 시간이 되어 도반이 도착했으나 방문을 닫은 채로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 도반은 투덜거리면서 혼자 떠났다.
사실은 신도집 방문을 위해 전날 저녁 한 벌밖에 없는 옷을 세탁하였다. 그런데 마침 날씨가 나빠 옷이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속옷차림으로 방에서 좌선을 하며 옷 마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같이 가고 싶어도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고 방문마저 열 수 없었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끔 젊은 직장인 청신녀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스님들은 참 좋겠어요.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하는 고민은 없을 것 아니예요.”
그건 그렇다. 요즈음은 분소의나 납의 수준은 아니지만 모두 회색옷이니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입으면 된다.
하긴 뉴스나 일기예보 하는 여성방송인들을 보면 매일 옷을 바꿔 입고 화면에 등장한다. 저 정도쯤 되면 “오늘은 어떤 옷으로 나가지?”하는 것도 화두일 것 같다. 나중에 들으니 그것도 후원자와 골라주는 전문가가 따로 있다고 했다. 괜한 기우(杞憂)였군.
갑자기 싸늘해진 어느날 아침, 벽장문을 열어보니 승복이 켜켜로 쌓여있다.
“가만, 가을 옷을 작년에 어디에 두었더라~”
2005-11-16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