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가 부르는 노래듣고 홀연히 깨친 여인
시장서 납자만 지나가면 불러세워 선문답
떡장수 노파와 더불어 인절미 파는 여인네까지도 당당하게 납자와 겨루는 것은 근대 중국의 오경웅 박사 표현대로 ‘선학의 황금시대’에서는 일상화된 일이다.
화두선은 머리카락의 길이에 상관없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차별이 없었던 대중성을 갖춘 까닭에 기존 중원(中原)의 종교사상계를 일거에 평정하고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떡과 인절미는 비슷하면서도 또 서로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한 떡과 인절미의 차이만큼 두 노파의 고단한 삶의 궤적은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노인네 모두 선종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떡과 인절미만큼 비슷한 공통점을 가진다.
금릉 땅에 한 인절미 장수가 있었다. 살림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시골장터에서 그것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 여인네의 이름은 유도파(兪道婆·有道婆)였다. 이름이라기보다는 별호가 더 유명해지면 뒷날 그대로 이름이 되어버린 경우라고 하겠다. 글자 그대로 ‘도에 응답한 노파’ 내지는 ‘도가 있는 여인네’였다.
유도파는 임제종 양기파의 낭야계(琅耶 啓)선사를 친견한 적이 있다고 선림에 전해져 오며, 위산선사의 상당법문 속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인물이다.
인절미를 팔면서도 발심하여 일구월심으로 부지런히 화두공부를 지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거리에서 거지가 부르는 연화악(蓮華樂)을 듣게 되었다.
유의가 편지를 전하지 않았는데(不因柳毅傳書信)
무슨 일로 동정호에 왔는가(何緣得到洞庭湖)
이 노래를 듣고 홀연히 느낀 바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껄껄 웃으며 팔고있던 인절미를 던져버리니 시장바닥의 아이들이 앞을 다투어서 주워갔다. 이를 보던 그의 남편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당신 미쳤어?”
그러자 그 여인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이건 당신이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오.”
같이 살아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런 부분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화평유지를 위한 불문율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향점이 다른 부부싸움의 또다른 일면이기도 하다.
그 때부터 안목이 열려 스님네들이 시장 앞을 지나가기만 하면 불러 세워서 한마디씩 던지곤 했다. 하루는 어떤 납자가 지나가는데 노파가 갑자기 “아가야!”하고는 불러 세웠다. 그런데 이 납자도 보통은 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에 있소?”
이렇게 대꾸를 하자 그 노파는 몸을 돌리더니 노주(露柱:노천에 있는 돌기둥)에다가 절을 하였다. 그러자 그 납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파를 걷어차서 넘어뜨리고는 말했다.
“난 또 뭐 대단한 것이 있는줄 알았더니…”
누가 더 안목이 있는지 내면살림살이까지는 알 수 없지만 걷어차인 뒤 별다른 답변을 하지못한 걸로 봐서 납자의 판정승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 아래 사건에서는, 그 사이에 내공(?)을 쌓았는지 노파가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
뒷날 어떤 납자가 그 앞을 지나가게 됐다.
“스님은 어디서 왔소?”
“오조사(五祖寺)에서 왔습니다.”
“오조사 노장님도 내 아들이다.”
그러자 그 납자가 바로 되물었다.
“할머니는 누구의 아이요?”
그러자 그 유도파는 대답했다.
“이 노파가 스님네의 묻는 말에 선 채로 오줌을 싸겠소.”
쏴아아~ 솨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