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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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담 스님의 스님이야기-도업 스님/남양주 무량사 주지
소유·집착 하지 않으려는 정신적 여유 지닌 참수행자

가끔 운수납자(雲水衲子) 생활이 그리워진다. 해제철이 되면 걸망을 짊어지고 주처없는 만행을 하다 수행하기 좋은 선원을 찾게되면 방부를 들이기도 하고, 더러는 조용한 암자를 찾아 홀로 정진을 하기도 한다. 동안거(冬安居)는 더욱 매력적이다. 적막한 산사에 불어닥치는 매서운 추위와 따끈한 구둘장의 상대적인 환경은 모든 망상을 씻어주는 듯 화두가 더욱 성성해지고 선미(禪味)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도업(道業)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강원도 어느 토굴에 있을 때 잠시 함께 생활을 했었다. 도업 스님은 이목이 수려하고 별로 말이 없는 조용한 성품이었지만 나름대로 기상이 있었다.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전생부터 많은 수행을 해온 듯 수행자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풍겨났다.
당시 도업 스님은 도를 이루려면 건강한 몸을 가진, 그러니까 30대때 승부를 해야 한다며 자주 용맹정진을 했다. 그러다가 무리하여 건강이 좋지 않다 싶으면 병원을 찾기보다는 정진력으로 극복하고자 하던 눈푸른 납자였다.
스님은 수행환경이 좋든 나쁘든 그러한 것에 구애 받지 않고 살았다. 그렇다고 어느 절에서든 오래 안거하는 체질은 아니었다. 그저 인연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거처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린다,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그러한 모습에서 자연과 하나되어 버린 무애자재한 수행자를 느낄 수 있었다.
1990년대 초, 조계종 총무원에서 종무행정의 전산화 작업이 필요함을 느꼈다. 나도 컴퓨터를 배우려고 286을 구입해놓고 학원에 다니려고 했다. 당시 종단이 꽤 시끄러워 세상의 이목을 받던 시절이라 학원 다니는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해제를 하고 우리 절에 온 도업 스님이 사무실의 컴퓨터를 보더니 흥미를 느꼈던지 배우고 싶다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게임을 가르쳐 주면서 배워보라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종단이 안정되면 배워야겠다 싶었기에 몇날 며칠 망설였는데, 도업 스님이 쉽게 컴퓨터 익힌 것에 자극을 받아 나도 일찍 배우게 되었다.
도업 스님은 수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집중력이 좋다. 또 다재다능하다. 컴퓨터만이 아니라 운동도 탁월하게 잘 한다. 그리고 엉뚱한 면도 있다. 언젠가 스님이 운전을 배운지 얼마 안된 초보운전시절, 꽤 먼거리에서 찾아왔는데, 하는 말이 ‘걸작’이다. 오다보니 빨간불은 빨리 가고, 파란불은 안전하게 가라는 것 같다는 것이다. 초보운전에 누구나 달리고 싶은 심경을 그대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수좌다운 말이라고 느꼈다. “그럼 노란불은 뭐꼬?” 물으니, 위험한 운전을 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거 아닐까 대답해 서로 웃었던 적이 있다.
한때는 문중 절에 주지 소임을 맡게 되었다며 열심히 불사도 하고 포교를 하더니 어느날 주지 한만기(4년)도 마치기 전에 그만 두겠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너무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고 안일해져 수행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이후, 걸망을 메고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인연이 다했구만 하였지만, 소유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려는 수좌가 아니면 어디 그런 마음이나 낼 수 있을까 싶었다. 무릇 수행자의 길이란 것이 무상(無常)의 본질을 성찰하고 그러한 깨달음을 물질적인 소유만으로 느끼지 못하는 가치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든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내가 아니면 문중이 무너질 것 같고 절이 망할 것 같이 호도하는 이기적인 기득권자들의 추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승단의 질서를 위해 종헌종법을 만들어 놓고도 인사권자가 소임자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재임이라도 안 해주면 쫓겨난 듯 원망하는 풍토를 많이 본다. 이러한 일을 행정적인 시스템의 문제로만 돌릴 일일까.
진정 버려야 할 때 버릴 줄 모르는 수행자의 망각이 문제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도업 스님같은 사람은 참으로 멋지다. 수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도반이지만 존경심이 느껴진다.
이제, 도업 스님은 구참이 되었다. 보통 구참이 되면 번거로운 대중생활을 벗어나 자유롭게 정진하고자 하는데, 스님은 게으름을 막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아직도 대중선원에서 몇 철씩 난다. 나이가 들어도 불안하지 않고, 스스로 가난하려 하고, 때로는 전국을 만행하는 여유까지 가진 도업 스님. 많은 후학들에게 수행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200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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