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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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최초의 사판승, 아난의 조건/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급박하게 돌아가는 총무원장 선거 지켜보자니
일심으로 시자 노릇했던 아난이 그리워집니다

부처님은 딱 누구라고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아난존자를 점찍어두고 계셨습니다. 이제 서서히 노년에 접어든 부처님.
누군가 곁에서 함께 있어드리며 사소한 일상의 일들을 챙겨드리고 거대해진 승단의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할 사람이 필요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몇 사람이 시자 노릇을 했지만 들쭉날쭉하여 부처님이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챈 목련존자가 아난존자에게 갔습니다.
“아난존자,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당신을 시자로 삼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헤아려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주십시오.”
부처님의 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과 천신의 스승인 어른의 비서실장이 된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큰 광영이겠습니까? 나 같으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난존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목련존자시여, 저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불세존은 모시기 어려울 때에 시자를 두시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게 힘이 남아돈다면 시자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시자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이제 일을 쉬이 처리하기에 힘이 부친다는 뜻이 될 터이고, 그렇다면 그 시자는 상당한 능력이 있어야 부처님의 의중을 간파하고 원만하게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출세간의 스승과 세속의 잡다한 업무와 사람들을 매끄럽게 이어줄 사람! 아난존자가 시자가 된다면 그런 막중한 직책을 감당해내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알아차린 아난존자가 정중하게 거절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련존자는 아난존자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아난존자는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세존의 시자가 되겠습니다.
첫째는, 저는 부처님의 헌 옷이건 새 옷이건 입지 않겠습니다.
둘째는, 따로 청한 부처님의 공양을 먹지 않겠습니다.
셋째는, 뵈올 때가 아니면 부처님을 뵙지 않겠습니다.”
이 소원을 부처님께 여쭙자 부처님은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실 때까지 아무런 잡음 하나 들리지 않게 원만히 시자노릇을 감당해 냈습니다. 아난존자는 깨달음을 향한 자신의 수행마저도 잠시 늦추고 부처님께 봉사하고 대중에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런 아난존자가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에 슬픔에 잠겨 차마 곁에 있지 못해 모습을 감춘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아난존자를 불러오라 하셔서 그를 격려하신 일이 있는데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언제나 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아라, 슬퍼 말아라. 너는 나를 모시면서 몸과 입과 뜻의 행이 착하였다. 처음부터 두 마음이 없어 나는 한없이 안락하였다. 과거와 미래의 그 어떤 부처님도 너만한 시자를 두진 못하였으리라.”(중아함 시자경)
‘이판사판’이란 말이 불교에서 나온 말임은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출세간의 진리를 추구하며 오롯하게 수행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이판승이라고 한다면, 그런 수행자의 본분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세속에서 수도자와 범부들이 원만하게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을 사판승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난존자가 최초의 사판승이 아닐까 감히 단정을 지어봅니다.
지난 9월11일 이른 새벽 불교계에 날아든 비보 -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법장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소식은 모든 이들을 충격과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온통 새로운 총무원장 소임을 어느 분이 맡을 것인가에 쏠려 있습니다. 종단의 행정에 무지한 저도 호기심이 동할 정도이니 그만큼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의 불교, 특히 조계종의 위상은 무시할 수 없는 큰 힘을 지닌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마음이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삭막한 현실세계 속에서 이제 겨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정신이 한국 땅에 제대로 뿌리를 내릴 참인 요즈음, 그 모든 불사(佛事)의 ‘총대’를 멜 ‘사판승의 어른’을 모시기가 별로 순탄치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아난존자를 시자로 삼은 것과 총무원장 소임 맡을 스님을 선출하는 것은 분명 성격이 다릅니다. 하지만 최초의 사판승인 아난존자의 인품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 지금 총무원의 급박하고 어수선한 움직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200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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