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과 전국선원수좌회가 공동으로 〈간화선〉이라는 수행지침서를 출간한 이후 폭발적인 호응 속에서도 ‘여전히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진짜 왕초보 및 청소년층까지 커버할 수 있는 2차 대중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연찬회의도 여전히 딱딱하고 심각한, 그리고 원론적인 말만 난무하는 참으로 지난(至難)함의 연속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농삼아 나눈 한마디가 오히려 회의보다도 훨씬 감동적이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재미있는 간화선, 행복한 간화선이라는 타이틀은 어때요?”
그 자리에서 바로 댓구가 튀어나온다.
“대중화된 간화선, 민주화된 간화선, 세계화된 간화선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럼 귀족화된 간화선, 독재화된 간화선, 국수주의 간화선도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 말에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하긴 언제부턴가 ‘코 만지기보다도 쉬운’ 간화선이 ‘최상승 대근기’를 위한 것이란 반(反)간화선적 분위기로 인해 화두수행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그 사이 웰빙 바람을 타고 ‘마음 다스리기’를 내건 제 3수행법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간화선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는 이 땅에서도 활개를 치게 됐다. 그 바람에 역작용으로 간화선 본래모습인 대중성을 회복하자는 흐름이 나타나게 됐으니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시장은 냉정하다. 수요자의 근기 탓만 하고 있는 것은 책임회피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재미있는 간화선~ 대중화된 간화선이라~. 그 말은 반산보적(盤山寶積 당나라때 스님) 선사에게 딱 어울린다. 어느 날 선사께서 장터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장날인지라 여기저기 구경거리가 많았다. 어찌하다 보니 푸줏간 앞을 지나게 되었다. 어떤 선비가 고기를 사러 가게 안으로 들어서더니 주인에게 한마디 하였다.
“깨끗한 곳으로 한 조각 주게나.”
사러오는 사람이야 신선하고 맛있고 정결한 부위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신선하지 않고 맛있지 않고 정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고기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칼을 내던지고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
“도대체 어느 곳이 깨끗하지 않습니까?”
그 선비는 차별심을 버리지 못했고 푸줏간 주인은 평등심으로 말한 셈이다. 이 광경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선사는 크게 깨친 바가 있었다. 이쯤 되면 장터가 법당이요 그 선비는 납자이며 푸줏간 주인이 선지식이 되는 ‘재미있는 간화선’ 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나주 불회사 인근에 ‘중장터’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곳에서 예전의 스님네들은 장날이면 몰려나와 살림살이로서 ‘행복한 간화선’의 거량을 했을 것이다.
반산 선사에게서는 ‘길거리표’의 면모도 볼 수 있다. 선사가 어느 날 상여가 나가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면서 구성지게 가락을 뽑았다.
“지는 해는 결정코 서쪽으로 지거니와, 오늘의 혼령은 어디로 가시는고?” 그러자 뒤따르던 상주들이 그 소리를 후렴으로 받았다.
“애(哀)~ 애에야아~ (슬프구나! 슬프구나)”
이순간 선사의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면서 눈이 훤하게 열린 후 스승 마조도일(709~788) 선사의 인가를 받게 된다.
상두꾼의 게송 한마디와 상주들의 후렴이야말로 반산 선사에게는 바로 깨침의 언어였다. 그런 법문이 ‘재미있는 간화선, 행복한 간화선’ 이라고나 할까.
행주좌와어묵동정 속에서 늘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어디서건, 누구의 한마디건 깨침의 인연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반산보적 선사의 예리한 기지는 그래서 더욱 빛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