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자기는 열심히 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돈만 노리고 있다가 훔쳤습니다. 자, 악업을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자일까요, 후자일까요?”
경전강의 시간에 이렇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대답은 당연히 후자입니다. 나는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던진 것이 좀 미안하였습니다. 그런데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강생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는데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머쓱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악업을 지은 사람일까요?”
나는 다시 한번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의외로 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돈을 번 사람이 죄인입니다. 남에게 훔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으니까요.”
난 내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진짜요? 진짜로 돈을 열심히 번 사람이 죄인입니까?”
“네.”
사람들의 얼굴표정은 그제야 밝아졌습니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나니 그 죄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불자들은 ‘돈을 번다는 것’, ‘내가 행복하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타인에게 미안해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어도 그런 사실을 대놓고 말하기를 꺼려하고, 집안이 화목한 것도 남들에게 몹시 미안해합니다. 아마 ‘집착을 버려라’, ‘욕심을 버려라’라는 마음 다스리기의 법문들을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요, 너무 행복해하면 꼭 그것을 시기 질투하는 어떤 잡귀가 있기에 삼가려는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사실 경전을 보아도 부처님은 온통 재물에 대해서 부정적인 법문만 늘어놓습니다. 한순간에 사라진다느니, 그건 화를 불러오는 재앙이라느니, 영원하지 않다느니….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말씀들은 대체로 출가수행자에게 하신 법문이고, 또 정당하지 않은 수단으로 재물을 긁어모은 이들에게 하신 법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잡아함경>을 보면 부처님은 재물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정당하게 돈이나 재물을 구하고 그것을 보시해서 복을 구하라. 남에게도 베풀고 자기도 누리며 또 그것으로 복덕을 지어라.”
경전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부처님이 돈벌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곳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좋은 일 많이 하라고 일러주십니다.
앞서 언급한 수강생들의 대답대로라면 부처님은 우리에게 죄를 지으라고 권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재물이란 것을 맑고 서늘한 연못의 물과도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꾸 퍼올리고 써야지 물이 마르지 않듯이 재물이란 것도 부지런히 벌어서 자기도 열심히 쓰고 남을 가엾이 여겨서 자꾸만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넓은 들판에 맑고 서늘한 연못이 있어도 그것을 즐겨 퍼 올리는 이 없으면 이내 고스란히 말라버리고 만다. 이처럼 훌륭하고 값진 재물도 나쁜 사람이 지니게 되면 자기도 쓰지 못하거니와 남을 가엾이 여겨 베풀지도 못하여 부질없이 스스로 괴롭게 모으기만 하고 그렇게 모았다가는 저절로 잃고 만다.”
게다가 열심히 번 돈으로 그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행복을 누리라는 당부의 말씀도 하고 계신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습니까?
“많은 재물을 얻으면 자신도 쓰면서 즐기고,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와 친척들을 돌보고 자기가 부리는 사람들도 도와주고 벗에게 보시하며 수행자들에게 공양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몇 배나 큰 이익을 거두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재물 얻으면 자신도 즐기며 잘 쓸 줄을 알고, 널리 보시해서 공덕도 지으며 친척과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베푼다.”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만, 그리고 그 행복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아야지만 다른 이의 행복도 빌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넘쳐흐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한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남에게 베푼다구요? 그래서 남이 행복해지면 그것 역시 죄가 아닙니까?
남의 것을 빼앗아서 얻은 즐거움, 여색에 빠지거나 그릇된 대상에 탐닉하는 즐거움은 부처님이 권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하면 될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내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사는 일- 이것은 결코 죄도 욕심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아함경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