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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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면서 느끼면서 체험하면서 가라!
생활하면서 모든 걸 한마음으로 조복 받아야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러니까 그 모두를 잘 아시고, 너라고 하는 것이 너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이것은 참 생각하면 극치적인 믿음을 가지라고 한 말입니다, 극치적이게. 형제간에도 진짜로 “너만은 할 수 있어.” 이러고 위로를 해줄 때가 있죠. ‘너만은 할 수 있잖아!’ 하고 그럴 때 진정으로 아주 진실하게 들어가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것은 못된 이름도 아니고 잘된 이름도 아니고, 그 가운데에 뜨거운 정열이 들어간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예, 그러고요, 그럼 말씀하세요.

▲질문자1: 스님,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마음에 불을 밝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선원에 처음 입문했을 때 스님께 질문드렸던 그 마음과 지금 제 마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참,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질문 드린다는 것 자체가 참 부끄럽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같이 더불어서 공부한다는 마음에 두 가지만 질문 드리겠습니다.
▲스님: 그래요. 예.
▲질문자1: 열 마디의 진실한 말을 하였을지라도 한 번의 침묵만 못하다 하셨습니다. 그 말의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 지금 날더러 뭐라고 그랬죠? 전자에 질문할 때와 지금 뭐라고 말로 할 수 없으리만큼 감사합니다, 이랬죠? 나도요. 부처님의 그 뜻과 이 세상 돌아가는 이 모든 뜻을 말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이것도 어떡하면 표현을 좀 해줄까 해서 그냥 하는 거지 진짜로는 가고 옴도 없이 가고 오고, 온통 그냥 일어나는 줄 모르게 일어나기도 하고, 보이지 않게 그냥 뭐 모두 빛보다 더 빨리 돌아가고 온통 이러는 데는 이것을 뭘로 말을 해요, 이거를. 여러분이 이 도리를 알아야만 아마 이해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번에, 한 번 침묵만 못하다 이러는 것은 열 마디 말로 아무리 해봤던들 소용이 없고 한 번 생각의 침묵이 그렇게 우주를 들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질문자1: 감사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선원에 와가지고 많은 스님들 말씀을 듣고는 저도 처음에는 도를 이루어보려고 상당히 집착심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 현재 제 마음은 이 마음공부 하면서 한마음 공부는 단, 도도 아니요 또 내가 잘살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편안하고자 함도 아니고, 말로 굳이 표현해서 말씀드리자면 맹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올바르게 먹고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스님: 올바르게 그냥 생각하시고 살면요, 본인의 몸뚱이 속에 있는 의식들이 다 본인의 생각을 따라줘서 한 침묵이 한생각이 돼서 한생각의 법이 돼요. 그래서 법이 됨으로써 그것을 이름해서 법신으로서 움죽거리는 것을 뜻하죠. 그걸 중용이라고 하죠. 그러니 모두 공부하시는 분들이 여기 와서 공부하는 질문을 할 때 자기가 알았더라도 남들을 위해서 보살행을 하는 것도 그게 질문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든지 질문하실 분이 있으면 질문하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러니까 지금 말씀한 것 그것을 잘 생각해서 자기가, 자기가 터득을 해야지 남이 말을 하는 걸 듣고 그런가보다 이렇게 그냥 이해만 해가지곤 안 돼요. 냇물이 흘러가는데 끝이 없다 이러니까 끝이 없는 걸로만 그냥 알지 말고 진짜로 그 끝이 없는 걸 집어먹어 봐야 안단 얘깁니다. 나는 똥누고 밑 안 씻는 사람은 끝이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똥을 누고선 반드시 밑을 닦고 깨끗하게 일어설 수 있는 그러한 분들이라면 앞으로 성취를 꼭 하실 겁니다.
▲질문자1: 스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저한테 말씀해주신 감로법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질문자2: 아버님이 운명하시는 걸 지켜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과 스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사를 초월하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막상 그 일에 처하니까 그렇게 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고통스러워하실 때마다 정말 맨 처음에는 고통으로 보니까 참 고통스러웠는데, ‘한마음 주인공, 한자리하시기 위해서 저렇게 산고를 겪고 있으시구나!’ 그렇게 한생각 돌리니까 참 편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언니들이 큰스님 친견하고요, 그날 바로 편히 몸 벗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8남매인데요, 그 당시에 큰 오빠가 교도소에 가 있었어요. 이렇게 국토의 버려진 땅을 유용하게 썼는데 현행법으로는 위법이 되었던가 봐요. 그래가지고 6개월 동안 교도소에 있는 사이에 아버님이 그렇게 굉장히 위독하셨거든요. 그런데 그때 저도 자식 키우는 사람으로서 ‘주인공, 당신이 있다면 80 평생을 사신 아버님이 장남 못 보고 가시게 하면 서로 한이 되니까 장남 얼굴 보고 가실 수 있도록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그러고 탁 맡겼거든요. 그랬는데 나중에 오빠가 나와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서류가 한데 뭉쳐지면 그게 죄가 과해가지고 입건이 되고요, 서류가 나누어지면 죄가 약해져가지고 풀려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서류가 자연스럽게 풀려졌다고요,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속의 뜻은 저만 알고 있었죠.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곤 나중에 아버지하고…. 그런데 참 자식하고 부모지간이란 그렇게 착이 많구나 하는 걸 느낀 게 아버지께서 그렇게 사경을 헤매시다가도 정말, 정말 곧 돌아가실 것 같은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큰오빠가 교도소에서 나오는 것 보고 그때 의식 잃으시고 한 3일 효도하실 수 있게끔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요, 저희 8남매 중 6남매는요, 한마음 공부를 다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큰오빠하고 막내오빠가 기독교인거든요. 그래서 오빠하고 3일 동안 계속 아버지 이쪽 손, 저쪽 손 잡고 오빠랑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대한 얘기 하고 불교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도 제 자신이 깜짝 놀란 게 성경책에 있는 말씀을 제가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오빠도 교도소에서 6개월 동안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했던가 봐요. 그래가지고 둘이 얘기를 하니까 한마음으로 그대로 통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가장 기독교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문제되었던 게 왜 우리가 갈고 닦으면 부처님이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하나가 될 수 없을까? 그러면서 오빠한테 그걸 질문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빠가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제 마음에서 ‘아! 우리 부처님도 내가 부처라고 하면서도 내가 부처라고 내세우면 이미 부처가 아니라고 그랬는데 이건 말이구나. 진리는 하나구나.’ 그러면서 어렴풋이나마 글자를 보지 말고 백지를 보라는 것을 좀 느꼈습니다. 그랬는데 아버지 장례식 절차가 문제가 됐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 세례를….
▲스님: 그래서 그렇게 관했더니 오빠가 아버질 만나고 돌아가셨소?
▲질문자2: 예. 그래서 세례를 받으시고 영결식장에서요, 저희가 이 공부를 안 했더라면 어쩌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하나가 돼가지고 찬송가 부를 때 불러드리고 모든 그런 절차를 그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초상집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잔칫집 같이 그렇게 화목하게 그 일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서 모든 걸 그렇게 해서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래도 마음 안에서 의정이 있는 게요, 목사님이 오셔서 전부 예배 절차도 다 하고 우리 광주지원 스님들께서 시다림도 해주시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마음에서 의정이 나는 게 물론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다 돌아가는데, 형식과 마음이 둘이 아닌데 어떻게 형식이 틀리는데 마음이 하나로 돌아갈까? 그게 의문이 생깁니다.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스님: 제각기 다, 일체 만물만생이 다 다르죠. 모습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차원도 다르고 모두가 달라요. 그러나 다른 그 자체는, 예를 들어서 비유하건대 불기둥이 땅을 딛고 하늘을 꿰고 있다고 합시다. 그 불기둥을 중간에 끼고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수레바퀴와 같은 거예요. 그러니 모두가 그 불기둥에 꿰여가지고 돌아가는 건데 그 돌아가는 것마다 똑같을 게 없어요. 전부 불기둥에, 한 불기둥에 꿰여서 돌아가는 것은 동일하지만 수레가 제각기 돌아가는 거는 차원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모든 게 전부 다르게 돌아가요. 그러니까 제각기 돌아가면서도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로 돌아가면서도 제각기 돌아가요.
그러니 이것을 사람들이 다 지혜롭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생각을 낼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을 가져야죠. 각자 내 몸뚱이를 생각해보세요. 다른 걸 보지 말고 내 몸뚱이 속에 있는 생명들을 한번 보세요, 하나로 돌아가지 않나. 그러면서도 모습 다르지, 의식 다르죠. 다 생명은 똑같은데 전부 달라요. 그리고 소임 맡은 것도 전부 다르고요. 안 그래요? 위장 공장ㆍ간장 공장ㆍ대장 공장ㆍ소장 공장ㆍ방광 공장ㆍ콩팥 공장, 식도 공장 그냥 모두 제각기 다 다르죠. 그래도 하나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 모든 의식 자체를 모아서 모두 다스리는 선장 말입니다. 자기 영원한 선장, 주인공 말입니다.
▲질문자2: 스님,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맛있게 밥상 차려주셨기 때문에 맛있게 먹고 맛있게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얘기하는 것이 하치않다 하지마는, 이게 생활 속에서 다 쓰이고 생활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좋은 체험들입니다.

▲질문자3: 저는 한마음선원 신자가 아니고 오늘 우연히 조카의 말을 듣고 큰스님을 뵙게 돼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법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교회에서나 스님들의 설법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지금 87세이신데 60년 전에 천신이라는 신을 믿고 계시는데 저는 부끄러움으로 따르지를 않았습니다. 혼자 하시면 되겠지 그랬는데, 이제는 가실 때가 가까워져 가지고 왔다 갔다 하시거든요.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하시면서 무섭다고 하시고 막 그러시는데, 지금 모시고 있는 신들을 천도를 해드리려고 했는데 한마음선원에 다니는 조카가 큰스님을 뵙자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머니는 공덕을 많이 닦고 혼자 신을 모시고 그렇게 했습니다만 저는 지금까지 따르지를 않고 좀 부끄러워하기만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가시는 마당에 어머니가 모시는 신들을 좋은 데로 천도할 수 있는 그 일을 맡아주셨으면 하고 왔습니다.
▲스님: 그래서 저더러 그것을 없애달라고요. 허허허. 글쎄요, 없애드리기는 하겠지만요, 지금 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은 한순간에 없앨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공부를 안 한 사람들은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게.
▲질문자3: 저도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저도 한마음 신도가 되어서 마음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스님: 예.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요, 그렇게 믿는다면 지금 댁에서 말씀하시는 순간에 그것은 해결이 났다고 봐야죠. 그런데 댁의 마음이 겁이 나서 모셔놓은 물질을 해결을 못할 겁니다, 겁이 나니까. 이 도리를 모르니까.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물 한 동이 떠다 마당에 놓으시고요, 뭐 마당도 없네요. 그냥 갖다 놓으시고요, 상에다가 그냥 물 한 그릇 떠 놓고요. 상 아니더라도 좋아요, 어떤 항아리라도. 그러시고 초 향 켜놓으시고요, 그 옆에서 모두 그것을 사르세요. 살라버리시고 왼쪽으로 세 번 돌면서 ‘주인공! 당신이 해결해.’ 하고 세 번 위쪽으로 도시고 서서 절 세 번 하시고 끝마치세요. 그러면 어머니께서도 좋은 데로 가실 거고, 그 노인네가 젊어서부터 뭘 아시겠습니까? 모르시니깐 그런 것이지 알고는 그렇게 하셨을 리가 없고 여북하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자손들을 위하고 식구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도 한번 침착하게 생각해볼 점이 있죠.

▲질문자4: 저는 오늘 처음 뵙습니다. 그렇지만은 스님께서 설법하신 책을 보고 수행한 지는 한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 그 책을 읽으면서 수행하면서 제 마음에 너무 와 닿아서 진짜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와서 이렇게 돌이켜보니까 그건 또 새로운 하나의 탐심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놓고 맡긴다는 게 하나의 뭐를 얻으려는 그런 마음이 더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잘못됐다는 걸 느끼는데 지금 이렇게 돌이켜볼 때 내가 찾아야 될 나, ‘참나’와 그 다음에, 맡기고 놓아야 될 이 ‘가아(假我)’ 이게 차이가 나서 제가 많이 혼동이 옵니다.
그렇게 하고 스님 말씀이 다 이해는 가는데, 순간순간 저희들이 경계에 부딪칠 때 즉, 진심(瞋心)이라든가 심한 그 탐심에 부딪칠 때는, 그런 의식 이런 것도 되지도 않고 순간적으로 거기에 말려듭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러니까 정상적이 아니고 아주 심하게 번뇌가 많은 사람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저는 마음은 안쪽으로 굴리면서 절도 많이 해보고 또 참선도 좀 많이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또 마음이 더 여여하고 좀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질문을 드리고자 하는 거는 찾아야 될 ‘참나’와 그 다음에 놔야 될 ‘가아(假我)’와의 차이, 고 다음에 마음은 안으로 굴리면서 절을 많이 하고 참선을 하는데, 그 수행 방법 두 가지를 잘 하고 있는 건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스님: 가아(假我)도 없고 참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기둥 하나가 이렇게 방편으로 있다면 굴레가, 거기에 끼고 돌아가는 굴레가 있습니다. 기둥은 움죽거리지 않지만 그 굴레는 그냥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돌아가고 있는 그 수레가 역시 댁에서 지금 살고 있는 그거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일이 ‘가짜 나’가 믿고 찾는 것, 또는 진짜 참나가 하는 것 이렇게 따로따로 찾지 마세요. ‘주인공’ 했으면요, 그 기둥 째 수레 째, 내가 찾는 나와 더불어 같이 지금 댁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수레에서 굴러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수레에서 자꾸자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수레에서 나오는 대로 그 수레에다 다시 집어넣는 겁니다, 지금. 아시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참선을 하고 또는 참나를 찾으면서 절을 하고 이러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 우리가 평상시에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뭐 똥누고 싶으면 똥누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이럴 때 용도에 따라서 내 앞에 닥치는 대로 가는 그 자체가 바로 참선이자 그냥 도예요. 그러니까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그대로 하시란 말입니다, 그대로. 우리가 앉아서 참선할 사이가 없는데도, 시간이 없는데도 참선한답시고 시간을 내서 앉아있다면 그건 참선이 아니에요. 진짜 참선이라는 것은, 똥누면서도 진짜 진실히 돌아간다면 그게 바로 참선이 돼서 공덕이 되는 거고요, 공심(共心)으로 돌아가는 게 공덕이에요. 공심으로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한마음으로 움죽거리고, 한마음으로 먹고, 한마음으로 살고, 한마음으로 용을 하고, 모두 이러는 것이 그대로 공덕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저것 따지고 이렇게 살고 이런다면 자기를 보기까지, 참자기가 자유스럽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 힘듭니다. 그러니까 직선적으로 들어가세요. ‘그냥 생활 자체가, 당신이 보고 듣고 하고 만나고, 식구들하고 같이 어울리고 사랑하고 돈 벌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당신 주인공 뿌리에서 나오는 거니깐.’ 하고 거기다가 다 맡기고 믿고 일임하고 그러고 꺼내 쓸 때는 거기서 또 꺼내 쓰고 이렇게 하세요. 아까 얘기 들으셨죠. ‘어, 아드님을 꼭 만나고 돌아가시게 하는 것도 주인공 너밖에 없다.’고 할 때 아드님이 나와서 사흘을 지내고 난 뒤에야, 같이 계시다 돌아가셨다고요. 어때요? 이것이 우연 같죠? 우연은 없습니다. 이 도리에서 ‘우연히’라는 건 더더욱 없어요. 내가 그냥 생각하고 사는 게 그대로 법이죠.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을 못하시는 것 같아요.
옛날에도 얘기했죠. 아, 이성계가 꿈을 다섯 가지를 꿨죠. 꿈을 너무나 기막힌 꿈을 꿨죠. 색경이 그냥 와르르르 깨지는 것과, 꽃이 그냥 활짝 폈다 지는 것과, 대문에다가 허수아비를 매달아놓은 꿈과, 까마귀가 까옥까옥하고 짖고 가는 꿈, 이렇게 꿈을 꿨을 때에 기가 막힌 거 아닙니까, 그게. 그럴 때에 무학 대사한테 가서 물어봤어요.
그런 얘긴 다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하자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학 대사가 어떻게 꿈 해몽을 해줬는지 아십니까? ‘당신 생각에 달려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꿈이요, 꿈 꾼 것도 꿈이라. 그런데 그 가운데서 당신 생각하기에 달려 있으니까 당신 마음대로 생각해.’ 하고 나서 잠자코 있으니까 야, 까옥까옥 짖는 그 까마귀는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오. 가옥이니까. 하하하. 색경이 와르르르 깨지는 거는 주변의 백성들이 모두 일어나는 꿈이요, 또 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는 것은 열매가 맺는 꿈이요, 또 허수아비를 쳐다보는 거는 백성들이 다 쳐다보고 우러러보는 것이요, 아 요렇게 딱 말씀을 해주니까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임금 노릇을 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한생각에 생활이 왔다 갔다 해요. 정말입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한생각을 해서 거기다가 맡겨 놓으면 원자에서 입자가 나가서 모두 사람들 그 마음속에 들어가서 조절을 하게 돼 있죠. 아, 이런 비밀도 내가 얘기를 하니 이거 야단났죠. 하하하.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자생중생을 항복을 받는다면, 조복을 받는다면 보살로 화해서 천백억화신으로서 응신(應身)이 돼서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응해주시느니라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모든 걸 한마음으로서 조복을 받아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그 이치를 우리가 실천하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4: 스님! 설법 감사합니다.
▲스님: 실천하면서 그걸 느끼면서 체험하면서 이렇게 가야지 언제 이놈의 것을, 이렇다고 하는 걸 배워가지고 언제 실천하고 터득하겠습니까? 죽고 나서 또 죽고 또 죽고 그러는데. 그러니까 미리 아주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합해서 그냥 해버려야죠.

▲질문자5: 이렇게 뵙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선배 부부의 권유로 해서 금왕지원에서부터 KBS홀, 오늘까지 세 번째 스님의 법문을 이렇게 접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말씀마다에 제가 많은 걸 느끼고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이렇게 생각은 했습니다. 오늘도 부산에서 오는 차 안에서 많은 도반들이 한마음 공부에 대해서 토론도 했는데, 거기서 제가 느꼈을 때는 이 마음공부를 해가지고 주인공을 주장자 삼아서, 예를 들어 주인공한테 모든 걸 맡기고 관(觀)하고 의지해가지고 이렇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저 같은 초심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대단한 경지에, 좀 외람된 말씀이지만 성불의 경지에까지도 갈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상당히 부럽기도 하고, 저도 마음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그런 일념에서 지난 금왕지원 법회부터 참여를 했습니다만 제가 두 가지 의문을 느껴서 외람되게도 질문을 올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주인공을 주장자 삼아가지고, 예를 들어 모든 걸 ‘주인공, 네가 이렇게 했으니까 주인공 네가 해결해.’ 하는 이런 말씀은 스님 법문을 들으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 제가 정작 주인공을 보고 느낄 수가 없습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마는 그래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 주인공을 제가 느끼고 볼 수가 있다든지 마음으로 느끼고 있어야 저도 주인공을 찾아서 주장자 삼아가지고 거기에 관하고 믿고 모든 걸 이렇게 하겠는데, 현재 제가 믿음이 부족한 건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런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또한 여쭙고 싶은 것은 그러면 제가 알기로는 저 마음속에 불성이 있다고 이렇게 생각했을 때, 저 자신 속에 불성을 주인공이라고 이렇게 해석을 해서 그대로 대입을 해도 되겠는지 하는 걸 가장 여쭈고 싶고요. 정리가 안되니까, 그 다음 마음공부가 아무런 진전이 안 되는 걸 한 달 사이에 느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이제 이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보면 두 번째 것은 예를 들어 스스로 짓고 지은 그 어떤 업이나 습으로 인해서 지은 병고라든지, 환난이라든지 액난 같은 이런 것을 주인공한테만 맡겨 놓고, 아까 앞에 도반이 질문하신 것과 비슷한 얘기가 되기도 하겠습니다마는 전생에 제가 지었던 업이나 습으로 인하여 받은 그 환난과 고와 어떤 병을 ‘주인공, 네가 했으니까 너만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주인공, 다 해.’ 하면, 그럼 저는 비켜서가지고 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면 이것은 제가 생각할 때 상당히 어떤 면에서 좀 뭐하지 않는가 하는 이런 점. 그럼 적어도 주인공은 제 자신의 나 하나에 대한 어떤 병고라든지 제 가족, 친족, 처자라든지 이런 걸 떠나가지고 주인공을 운영한다 했을 때 좀더 넓은 의미에서, 기복적이지 않게 제가 마음공부를 해가지고 주인공하고 자유자재로 느끼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예를 들어서 도와주고 싶은 이웃이 있다든가 할 때, 그랬을 때 제 주인공이 그 사람들한테 지금 많이 말씀하신 그런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없는지 이 점을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스님: 두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그거를 아시려면 말이에요. 가정에서도 하나가 없으면 그 가정은 없는 거죠. 그와 같이 댁의 몸뚱이가 배 한 척이라고 합시다, 배 한 척. 아주 허허바다에 지금 띄어진 배 한 척이에요. 그런데 그 배 안에 말입니다, 지금 댁의 몸 안에 모든 중생들이 다 살아 있듯이, 그 배 안에 지금 다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망망대해를 지금 젓고 갑니다. 그 배 안에서 지금 마음이라는 선장이 노를 젓고 가요. 그런데 그 자생중생들이 배 안에서 가만히 침착하게 앉아서 선장한테 ‘아휴, 노를 잘 젓고 가야 다 같이 살 수 있으니까 선장 당신만이 모두 살릴 수 있어. 당신만이 살게 할 수 있어.’ 하고 모든 걸 선장한테 일임해야지 제각기 들고 일어나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뭐 용신 모두 찾고 야단을 하면 그 배는 뒤집혀서 못 살게 되죠. 그죠? 예.
그러니까 댁을 지금 끌고 다니는 놈이 있어요. 댁의 몸뚱이가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댁의 마음 이전 근본 뿌리가 당신을 끌고 다녀요, 지금. 영혼이 불성인 줄 알지 마세요. 영혼 자체가 그대로 당신을 끌고 다니는데 근본 자체가 당신을 이렇게 생산시켰고, 그런데 끌고 다니는 건 영혼 자체가 끌고 다녀요. 잘못 끌고 다니고 잘 끌고 다니고, 마음대로요. 그런데 거기에 속지 말고 모든 것을 거기서 나오는 거 거기다가 다 집어넣어야 이게 한마음으로 하나로 돌아가게 돼요. 아시겠어요?
그런 것과 같고 또 한 가지는 방편이 있어요. 저 일체 나무들이 말입니다,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나무들이 뿌리가 있어서 모두 살고 있죠. 그 뿌리로 인해서, 우리는 나무의 뿌리를 보고 있지만 그 나무는 자기 뿌리를 못 보고 있어요, 흙이 가려서. 그런데 그것을 불가(佛家)에서는 무명이라고 하죠. 무명에 덮여서 볼 수가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렇듯이 그 나무는 바로 제 뿌리를 믿어야, 제 뿌리에서 에너지를 흡수해서 올려보내고 그 싹은 또 에너지를 흡수해서 내려보냅니다, 정맥 동맥이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싹은, 그 나무들은 누굴 믿어야 되겠습니까? 네? 저 상대방의 나무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큰 형상의 다른 나무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다른 높은 이름을 믿어야 되겠습니까? 바로 못났든 잘났든 자기 뿌리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질문자5: 자기 뿌리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스님: 그런데 뭘 이유가 그렇게 많습니까?
▲질문자5: 대단히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 더 하겠습니다.
▲스님: 예. 하하하.

※위 법문은 1994년 11월 20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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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