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종회 계파를 초월하여 화합 속에서 선거를 치르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벌어지던 과열, 혼탁의 분위기가 종단의 위상을 얼마나 떨어뜨렸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정한 시각에서 보면 승가에서 화합을 말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승가란 말 자체가 화합중(和合衆)·화합승(和合僧)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화합은 승가 본연의 모습이다. 조계종은 지금 그 잃어버린 과거를 미래상으로 그려가고 있다.
이번 선거 국면에서 ‘합의 추대’ 움직임이 활발한 것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추대와 경선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방식일까를 선택하는 것이 핵심으로 보일 정도다. 과연 무엇이 현명한 선택일까. 하지만 양자택일이 핵심 과제일 수는 없다. 미리 결론 삼아 말하자면, 어떤 방식이든 부처님 법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으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완벽한 제도는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합의는 야합과 근친관계이기 쉽고, 경선도 합법적 배타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갈등의 소지는 안고 있다.
중요한건 선거 과정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화합과 청정이라는 승가 본연의 모습을 견지해 나가는 것이다. 세속적 의미의 공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제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실 종단의 중진급 스님이면 누구나 총무원장으로서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를 목표 지향으로 설정해 볼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목표는 전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원적(圓寂)이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 장기 기증과 보험의 수혜자가 조계종 복지재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의 국민적 감동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상의 아픔에 가장 민감하고 또한 의연한 그런 어른을 갈망하고 있다.
앞으로 조계종의 총무원장은 시대의 사표여야 한다.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여야 하고 희망의 메신저여야 한다. 누가 되든지 이런 일을 할 어른을 모신다는 자세로 선거에 임한다면, 종단화합은 물론이요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