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반도체 회사에서 16G(기가) 낸드플래시(NAND Flash)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1G가 10의 약 9승, 즉 10억 제곱을 나타내므로 손톱크기의 반도체 칩에 160억 개의 비트(1혹은 0) 정보를 기억시킬 수 있는 셈이다. 한 개의 글자를 표현하기 위해서 8개의 비트를 사용하므로 대략 20억 개의 글자를 저장할 수 있다. 신문 한 장이 약 만자를 담을 수 있다면, 신문 약 20만장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참으로 놀라운 저장 능력이 아닐 수 없다.
DRAM과 같은 기억 칩과는 다르게, 플래시 메모리는 전원을 꺼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배터리가 다 닳아도 정보를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최근 디지털카메라나 MP3플레이어와 같은 음악저장 매체가 유행하면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낸드는 기억시키는 회로를 배열하는 방법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플래시는 정보를 지울 때, 마치 플래시 카메라를 터뜨리듯이 한 번에 다 지워버린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금강경>에는 ‘항하사와 같은 수만큼 많은 삼천 대천세계’라는 표현이 나온다. 삼천 대천세계가 우주를 표현한 것이므로,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 수만큼 많은 우주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존재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담겨있다.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먼지들을 현미경으로 확대하면, 그 먼지는 우주의 별 보다도 많은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분자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분자는 더 작은 원자, 원자는 전자와 핵, 그리고 핵 또한 수 많은 미립자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이 미립자가 보여주는 자취일 뿐이다. 수 조 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의 몸 또한 마찬가지다. 생물학자들은 생명을 유지하고 신호를 전달하고, 외부의 병원균에 대응하는 세포가 우주라고 할 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세포들 간의 영향을 미치는 분자수준의 생화학적 현상이 우주보다도 더 복잡하고 오묘하다는 데 놀라고 있다. 마치 먼지와 같은 항하사에 우주가 있는 것처럼.
낸드플래시 기억장치 또한 하나의 비트를 저장하기 위해서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를 사용한다. 전자를 트랜지스터에 저장하면, 트랜지스터의 전기적 특성이 변하므로 이 변화 정도를 외부로 읽어내는 것이다. 간단하게 보이는 전자 또한 정확하게 어떤 놈인지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은 그저 음전하를 가지는 단위 입자라는 것을 알 뿐이다. 100년 전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전자가 어떨 때는 파동과 같이 행동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알갱이와 같이 행동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존재를 이용해서 반도체 칩은 기억을 시키는 것이다.
가끔 자신의 존재가 초라하고 연민에 빠지게 될 때, 번뇌라는 느낌 또한 우주보다도 복잡한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오묘한 이치를 이해하도록 하자. 번뇌가 곧 불성이라는 옛 마스터들의 깨달음에 한발자국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전기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