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란의 “본원은 타력이다”서 비롯
최근 현대불교신문에서 불교의 ‘자력과 타력’적 측면을 기사화 한 것을 읽었다.(542호, 9월 7일자 18면) 불교 수행에 있어서 자력신앙과 타력 신앙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분별 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불교 수행에서 타력으로 오해하기 쉬운 분야가 정토신앙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유래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정토교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담란대사(476-542)가 “부처님의 근본소원인 본원은 타력이다”라고 하는 것을 그 후에 도작선사(562-642)와 선도대사(613-687)가 계승했다. 이를 일본에서 정토종을 개산한 호넹상인(法然上人 1133-1212)이 모방하여 “본원은 타력이다”라고 표현하고 그 제자인 신란성인(親鸞聖人1173-1262)도 사용했기에 일본정토교에서는 “본원은 타력이다”라는 것이 통례가 되어 있다.
본원이란 법신불께서 중생제도를 위하여 법장보살이 되고 세자재왕불 앞에서 발원하여 210억이라는 정토에서 48가지의 본원을 선택한데서 비롯됐다. 법장보살이 ‘48선택보원’을 이루어 5겁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두고 중생을 제도하실 준비를 완료하여 아미타불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본원이란 보신불인 아미타불께서 성취하신 부처님의 원력이지 자기가 수행이나 선행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담란대사가 “본원은 타력이다”라고 표현한 것이지 자력이 별도로 따로 있어서 말한 것이 아니다.
7세기라고 하면 중국이나 한반도의 정토교가 대성황을 이룬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양국의 정토교의 발전양상은 다르다. 중국의 정토교는 담란대사로부터 <관무량수경>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도작선사를 거쳐 선도대사에 와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정토교는 자장율사의 <아미타경소>와 <아미타경의기>를 위시하여 원칙대사의 <무량수경소3>과 <아미타소> 그리고 원효대사의 저서로 <무량수경종요><무량수경소><아미타경소> 등외에 많은 정토교서가 있는데 대부분이 무량수경을 중심으로 한 신앙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반도의 정토교는 무량수경 중심으로 발전되어 원효 대사에 의하여 확립된 것이다.
원효대사는 중국정토교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없고 또한 본원에 대한 표현도 “본원은 자력이 아니다”라고만 표현했던 것이다. 일본의 정토교는 중국정토교를 모방하고 한반도 정토교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정토종의 개산자 호넹상인은 중국정토교의 <관무량수경>을 위주로 삼았으며 그 제자 신란성인은 한반도 정토교의 <무량수경>을 중심으로 한 정토진종이다.
중국정토교에서 발생한 “본원은 타력이다”라는 표현이 일본 정토진종계에서는 메이지 시대에는 “절대타력”이라는 표현으로 쓰였고 소화시대에 와서는 ‘타력경’과 ‘자력경’으로 부처님경전을 분별하는 기괴한 현상이 나오기도 했다.
자력과 타력을 논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그 ‘근본발생’인 부처님 본원에 국한시키고 더 이상 비약시켜서는 안 된다. 모든 경전에는 반드시 부처님의 원력인 본원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정진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