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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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부 9강 위대한 거지들의 공동체/한국학중앙연구원
새가 울고, 설법은 이미 끝났다

바로 그 기원정사에 모인 사람들이 1,250명, 굉장한 식구이다. 이들이 이제 탁발을 나간다. 당시는 지금의 절처럼 공양간이 있어 식사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탁발에 의존했다. 초기에 붓다는 “한 곳에서 사흘을 머물지 말고, 밥을 빌어먹으며, 아무 것도 소유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순서대로 일곱 집인가를 두드려 깡통을 내밀었고, 거기 담긴 것만 나누어 먹었다. 거지들의 위대한 공동체, 그것이 초기 승가였다.

소유
지금 여기서는 일정한 거주지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음식은 여전히 탁발에 의존했고, 소유는 아직까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지금도 발우라고 부르는 밥그릇, 가사 한 벌, 그리고 머리를 미는 삭도와 바늘 정도가 허락된 소유물이었다.
그러나 점점 이 엄격한 규율은 완화되고 유연해졌다. 붓다 사후 일정한 시기 이후 소집되었던 이른바 ‘결집(結集)’은, 붓다의 교설을 수집하고 확정하겠다는 교리적 필요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슈는 바로 ‘계율’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일정한 거주지를 찾게 되었고, 또 재가에서는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복을 비는 마음에서 스님들을 초대하는 일이 빈번해지다 보니, 초기의 엄격한 계율을 그대로 지키기 어려웠다.
소유도 그랬다. 이 점은 기독교의 사정과 비슷하다. <장미의 이름>에는 중세의 주요 논제 가운데 하나가 예수의 소유에 관한 것이었다. 불교도 대승으로 발전하면서 세속과의 유대를 강화하다 보니 소유의 제한 또한 느슨해졌다.

탁발
붓다는 식사 때가 되자, 그 많은 무리를 이끌고 번화한 도시로 밥을 빌러 나갔다. 집집마다 순서대로 돈 다음, 그 음식물을 들고, 기원정사로 돌아와 밥그릇을 폈다. 각자의 보따리를 펼쳐 놓고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자니, 좀 외람되지만, 중고등학교 때 학생들이 도시락 먹는 풍경이나, 좀 더 죄송스럽지만, 다리 밑의 거지들이 수확물들을 펼쳐 놓고 먹는 광경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둘의 차이는 어디 있는가. 그 삶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니, 붓다의 무리들은 당당했을 것이고, 거지들은 아무래도 비굴하기 쉽다. 전자는 스스로 선택했고, 후자는 운명이 그리한 측면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관건은 역시 ‘마음’에 있다. 같은 일인 듯해도, 어떤 태도와 동기로 그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와 영향은 천지현격이다.
식사가 끝나면, 다들 옷과 그릇을 수습하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는다. 옷은 로마 시대의 토가나 간디의 감싸개처럼 펼친 담요 같았으니, 입고 벗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설거지는 어떻게 했을까. 지금의 절은 별 다른 설거지가 필요없다. 음식도 남기지 않고, 기름기도 없으니 물을 부어 헹구어 마시고, 마른 수건으로 한번 닦으면 깔끔하게 설거지가 끝난다.
붓다 당시의 인도는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불교가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아니 하기를 권했지만, 그러나 탁발의 경우, 가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육식보다 더 금기가 ‘음식을 가리는 것’이었다. 분별(分別)이야말로 정신적 자유와 평화의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별별 음식이 다 탁발 그릇에 담겨 있었다. 장난꾸러기 애들이 집어넣은 나뭇조각이나 마른 풀들도 들어 있었고, 때로는 떨어져 나간 문둥이 손가락까지 뒤적거려야 했다. 그것을 ‘가리지 않고’ 다 먹어야 했으니, 위장 장애는 흔한 질병이었다.
그런데도 여기서는 그런 어려움의 흔적을 읽을 수 없다. 흡사,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우아하게 마치고 나온 듯한 깔끔하고 정갈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그게 불교 훈련의 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일상
<금강경>의 이 첫 장은 아무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붓다가 거처를 떠나 탁발을 했고, 돌아와 식사를 했으며, 그런 다음 의발을 정리하고 자리를 펴고 다시 앉은 정경을 그려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정경에 이미 법이 다 설해졌다! 불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과 기거를 분열이나 갈등 없이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 붓다는 그렇게 살고 있다. 여기서 붓다는 불법을 남김없이 다 보여주었다. 선사들의 대화도 이 지점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조주는 “차 한 잔 들라”고 했고, 밥을 먹었다는 제자에게는 “그럼, 가서 그릇을 씻어야지”라고 했다. 여기 아무 것도 숨긴 것이 없다. 어떤 숨겨진 뜻이나 신비적인 통찰을 담고 있지 않다. 일상(日常)이 곧 성사(聖事)이다.
우리가 붓다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붓다처럼 우리도 집에서 직장으로 출근하고, 학교로 나서며,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 가족과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때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신통
무엇이 다른가. 겉으로는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다르다면, 안의 풍경이 좀 다르다.
붓다의 마음은 이를테면 ‘비어있다(空).’
비어있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붓다에게 ‘무엇인가 특별하고 남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를테면, 신통력 같은 것, 즉 수련이 깊어지면, 공중 부양을 하거나, 남의 속내를 알아맞히거나, 또는 미래를 예견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리라는 것인데….
그러나 붓다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없다. 혹, 있다 해도 하찮거나 위험하다.
하찮다는 것은 붓다가 어느 날, 평생을 걸려 이제 예수처럼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되었다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공에게 건네는 동전 한 닢이면 건널 수 있는 것을, 그토록 죽자고 고생을 했단 말이오.” 위험하다는 것은 수련, 특히 정신적 수련이 길을 잘못 들면, 자신도 망치고 남을 망치기 십상이라는 뜻에서이다. 그런 사람이 간혹 있다. 마음을 비우라 했는데, 우주를 말아먹을 기대와 욕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
<금강경>이 가르치는 중심은 “법(法)도 또한 공(空)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육조 혜능은 사상(四相)을 경계하면서, 진리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접고, 평상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대를 접으라. 육조 혜능의 용어를 빌리자면 희망심(希望心)을 접어야, 즉 일체의 지배와 공격성을 괄호 칠 줄 알아야, 마음이 본래 공(空)함을 볼 수 있다. 거기가 전부이다. 그 마음의 빈 자리만큼, 사람들을 수용하고 그들에게 요익(饒益)될 방도를 찾는 마음이 열려간다.
그 곡절을 지금의 정경이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직 이 격외의 ‘소식’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더 말이 있어야겠다. 그래서 2장이 계속된다. 그냥 보여주어도 모르니, 이젠 번거로운 ‘문답’을 거칠 수밖에 없다.
200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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