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인간의 조건 짚어가다보니 부끄럽네요
당신은 이 조건 가운데 몇가지나 걸리십니까
네팔을 여행하던 중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침 한 가게 앞에 개 한 마리가 죽어 있더랍니다. 친구는 가게주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죽은 개는 여전히 가게 앞에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와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가 다시 가게 주인에게 어서 개를 치우라고 하자 그 주인은 그제야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시신이나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일은 천민들이나 하는 짓이오. 내 손으로 저런 더러운 것을 만질 수 없소. 그러니 천민이 와서 치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2005년 현재 지구상에 아직도 이렇게 신분의 귀천이 사람들 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거늘 부처님께서 세상에 살아계시던 때야 오죽 했겠습니까?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들은 브라만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의식을 담당하던 계층이었기에 그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탁발하러 거리로 들어서자 한 바라문이 부처님을 이렇게 놀려댔습니다.
“어이, 거기 까까중! 잠시 서보게. 천한 녀석아, 거기 서라니까!”
부처님의 승단에는 천민들도 출가하여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차별의식에 철저한 이들의 눈으로 볼 때 부처님조차도 천민들과 어울렸으므로 부정을 탄 더러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가급적 세상과 다투지 않겠다는 것이 부처님의 신조입니다만 부처님은 뭔가 중요한 것 하나를 그에게 일러주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발걸음을 돌려서 그 바라문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을 천한 사람이라 부르는지 알고나 있소? 무엇이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지 알고나 그렇게 말하는 것이오?”
부처님의 차분한 힐난조에 바라문은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사람들이 천민들은 상대하지도 말라고 하였기에 덩달아 그렇게 말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진정 우리를 천하게 만드는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화를 내고 원한을 품으며 악독하고 시기심이 많고 소견이 그릇되어 남 속이길 잘 하는 사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고 생명에 자비심이 없는 사람, 마을은 물론이요, 도시들을 파괴하거나 약탈하여 독재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을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어디에 있든지 남의 것을 내 것이라고 하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사람, 빚을 져놓고도 돌려달라고 독촉 받으면 ‘내가 갚을 빚은 없다’라고 발뺌하는 사람,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탐내어 길가는 사람을 살해하고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을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이나 남 때문에 또는 재물 때문에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 때로는 폭력을 써서 또는 서로 사랑에 빠져 친지나 친구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사람, 자기는 재물이 풍족하면서도 나이 들어 늙고 쇠약한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제 부모나 형제 자매, 혹은 배우자의 어머니를 때리거나 욕하는 사람, 유익한 충고를 구할 때 불리하게 가르쳐주거나, 불분명하게 일러주는 사람, 나쁜 일을 하고서도 자기가 한 일을 모르기를 바라며, 그 일을 숨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남의 집에 가서는 융숭한 환대를 받으면서 손님에게는 대접하지 않는 사람, 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경멸하며 스스로의 교만에 빠진 사람, 남을 화내게 하고 이기적이고 악의적이고 인색하고 거짓을 일삼고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을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어떤 짓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법입니다.”
(‘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24-133쪽)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니 제 자신이 바로 천한 인간의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조건 가운데 몇 가지에 걸리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