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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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노파가 암자를 태우다/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20년동안 토굴에서 납자 시봉한 노파
공부경지 시험하곤 실망감에 불 질러

고려의 진각혜심(1178~1234) 국사가 편집한 〈선문염송〉은 1400개가 넘는 공안을 수록해놓은 선종사 최고최대의 공안집이다. 중국선사들에 의해 편집된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 〈송고백칙〉 등 많은 종류의 공안집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100칙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그 양에 있어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흔히 1700공안이라고 하는데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진각 선사 열반이후 등장한 공안을 빼고는 모든 것을 망라해놓은 ‘종합백과사전 공안집’이라고 하겠다.
〈선문염송〉은 한국 선가의 저력인 동시에 자부심이다. 그리고 모든 살림살이의 결집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신라의 도의 국사에게 백장 선사가 말했다는 ‘마조의 불법이 모두 해동으로 가 버렸다’는 표현처럼 조사선의 정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해동 조계종의 긍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 염송집의 마지막은 ‘고목(枯木)’이라는 화두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맨 끝이라는 위치상의 의미 부여와 이야기 자체가 지니는 흥미진진함으로 인해 예로부터 많은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보통 ‘파자소암(婆子燒庵 노파가 암자를 태우다)’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옛날에 한 노파가 토굴에서 공부하는 납자를 20년동안 시봉하였다. 열심히 밥도 짓고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납자가 공부를 잘하여 자신의 눈을 열어주고 제도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봉공덕으로 인한 탓인지 노파에게 먼저 잔잔한 공부의 경계가 나타났다. 그 납자를 시험해보고 싶은 장애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날은 밥을 딸 편으로 보내면서 일렀다. “스님을 꼭 껴안으면서 ‘이 때는 어떠합니까?’ 하고 물어보고는 그 대답을 나에게 전해다오.”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공양을 마치자 슬며시 그 납자에게 안겼다. 그리고는 교태를 떨면서 어머니가 시킨 대로 물었다.
“스니임~~! 지금 느낌이 어떠신지요?”
뜻하지 않는 돌출행동을 만났지만 납자는 평소의 담담한 어조로 일렀다.
“마른나무(枯木)가 찬 바위에 기대니, 한겨울에도 따스한 기운이 없도다.” 물론 마른나무는 그 딸을 가리키고 찬 바위는 자신을 가리킨다. 이러던 경지를 일러서 선가에서는 전통적으로 고목선(枯木禪)이란 부정적 표현을 쓴다. 정(情: 마음)이 끊어지면 공부 역시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딸은 액면 그대로 어머니에게 전했다. 노파는 공부경지를 고목선으로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이에 그만 화가 나서 “내가 이십년동안 속인을 시봉했구나” 통탄하면서 일어나 암자로 달려가서 그 납자를 쫓아내고 토굴 역시 불질러 버렸다.
어설픈 공부경계 조금 나타났다고 해서 20년 묵은 납자를 들었다 놓았다 해봐야 그것 역시 하찮은 중생경계에 불과하다. 물론 고지식하게 원론만을 죽어라 고수한 그 납자에게 큰 허물은 있다. 젊은 딸에게는 그 답변이 맞다. 하지만 딸에게 한 법문을 그 어머니는 자기에게 한 법문으로 이해했던 것이 잘못이다. 만약 그 어머니가 와서 안겼더라면 천동함걸(1118~1186) 선사처럼 당연히 그 납자도 이렇게 답변했을 것이다.
“한 줌의 버들가지를 거둘 수 없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달아두노라.”
염송 제1칙은 부처님 탄생에 관한 것이니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또 배열자체가 조사의 법맥 순으로 돼있으니 시대별로 정리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인공을 알 수 없고 시대도 애매한 공안들은 어찌할 것인가? 당연히 맨 뒤로 돌려지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 이르면 편집자의 안목을 백퍼센트 반영시킬 수 있는 융통성을 지니게 된다. 처음 못지않게 마지막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파자소암’이라는 마지막 공안을 통하여 우리는 또 다른 공안을 발견하게 된다. 진각 선사께서 ‘파자소암’을 〈선문염송집〉 맨 끝에 두신 까닭은?
200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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