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라 장자여, 물러서지 마라
<금강경>이 설해진 장소는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이다. 붓다가 오래 머물며 법을 펴던 기원정사(祇園精舍)는 그 정원에 세워졌다. 그것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이 예사롭지 않은데, 오늘은 그 인연설화를 소개하기로 한다.
숲을 금화로 덮으려던 수닷타 장자
경전에는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이라고 되어있다. “제타(Jeta 祗陀) 왕자의 숲(樹), 고독한 자들(孤獨)을 구원하는(給) 독지가의 정원(園)”이라는 뜻이다. 이를 줄여서 기원(祇園)이라고 했고, 여기 수도처를 세웠기에 기원정사(祇園精舍)라 불린다. <율장>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나타핀디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독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독지가’라는 뜻에서 한어로는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로 번역된다. 그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고 도움을 주는 유덕한 사람이었다.(*여기 孤獨은 청년의 아련한 감상이나 실존적 고민이 아니라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주변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즉 현대어로 사회적 약자들을 가리킨다.)
그 자선가, 사회사업자의 원래 이름은 수닷타(須達)였다. 어느날 사업차 은행가인 처남을 찾아 왕사성 라자가하를 방문했다. 그런데, 조용해야 할 집안이 그날따라 부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슨 결혼식이나, 보헌식, 혹은 왕의 군대가 방문하는 줄 알았는데, 처남의 말이 “내일 붓다께서 무리를 이끌고 오시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수닷타는 “지금 붓다라고 했습니까.”라고 물었고, 처남은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수닷타는 세 번을 꼭 같이 물어보았고, 은행가 처남은 그대로 대답했다. “붓다는 이 세상에 오시기 힘든 분인데… 그 분을 좀 뵐 수 있을까요?” “오늘은 아니고, 내일 일찍 오신답니다.”
수닷타는 붓다를 만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득 눈을 뜨고 보면 아직 한밤중이었다. 그러기를 세 번, “이제는 날이 샜겠지”하며 대문을 나섰다. 그러나, 그건 집안이 너무 환해서였다. 문밖은 아직도 캄캄했다. 두려워 발걸음을 머뭇거리자 야차 시바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코끼리와 말, 나귀 수레 백대도, 보석 귀고리로 장식한 수백명의 여인들도, 네가 내딛는 한 걸음의 16분의 1의 가치도 없다. 나아가라 장자여 나아가라 장자여. 내딛는 것이 좋다. 물러서지 마라.”
그러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생겼으며, 수닷타의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졌다.
나는 늘 편안하다, 수닷타여
다음날 아침, 수닷타가 다가오자 붓다는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어서 오너라 수닷타여.” 자기만이 아는 이름을 부르자 놀란 수닷타는 붓다에게 경배하고, 자신을 편안하게 대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언제나 편안하다네. 갈망에 얼룩지지 않고, 쿨하게, 그리고 업(業)의 바탕이 없기에…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수닷타를 위해 붓다는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주고 받음에 대해, 도덕적 습관에 대해, 그리고 감각적 쾌락이 얼마나 공허하며, 또 무서운가에 대해, 그리고 그로부터 물러서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가에 대해….” 붓다는 수닷타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가진 법(法)을 설해 주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고통의 현실과 그 기원, 그리고 그 소멸과 거기 이르는 방법에 대해….
“무릇 계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은 모두 멈추게 되어 있다!” 수닷타는 하얀 천에 물을 들이듯, 붓다의 말씀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감동의 여운에 젖은 그가 말했다. “뒤집어진 것을 바로잡고, 숨겨진 것을 밝히시며, 길 잃은 자들을 위해 인도해 주시는 분,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 주시는 분이시여. 저희 집에 꼭 한번 들러주십시오. 초대하고 싶습니다.” 붓다는 침묵으로써 응낙을 보였다.
수닷타는 라자가하((王舍城)에서 일을 마치고 스라스와티(舍衛城)으로 향했다. 도중에 그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붓다가 나셨으니 수도원을 짓고 사실 곳을 마련하며, 가구를 갖추어 드립시다.”
수닷타는 집에 도착해서 생각했다.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면서 소음이 없이 조용한 곳이 좋겠다.” 사방으로 부지를 물색하며 다니다가 발견한 자리가 제타 왕자의 소유인 ‘기쁨의 숲’이었다.
제타 왕자는 코살라의 지배자 파사익 왕 프라자파티의 태자였다. 그는 숲을 팔 일이 없었다. 수닷타가 와서 하도 조르자 그는, “금화 10만개를 준다 해도 아니 팔겠소!”라고 외쳤다. 안 팔겠다는 뜻에서 부른 가격이었는데, 수닷타는 당장 수레에 황금 동전을 싣고 와서 제타 왕자의 현관 앞부터 깔기 시작했다. 현관 한쪽을 덮기에도 까마득하자 수닷타는 사람들을 채근 독촉했다. “가서, 동전을 더 싣고 오게!”
그 광경을 제타 왕자가 보았다. “이건 예사일이 아닌데…. 어째서 저 많은 재산을 쏟아 붓고 있는 거지….” 사정을 듣고 난 제타 왕자는 깊이 감동했다. “황금을 내가 깔도록 해 주시오. 당신에게 이 땅을 주겠소.” 이렇게 해서 기수급고독원, ‘제타 왕자의 숲이었다가, 고독한 자들의 후원자 수닷타 장자에게 양도된 그 정원’에, 붓다의 오랜 거주지이자 수련처인 기원정사가 만들어졌다.
육조 혜능의 부연 해설
혜능도 이 인연설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제 1장의 구결(口訣)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言一時者, 師資會遇齊集之時. 佛者是說法之主, 在者欲明處所. 舍衛國者波斯匿王所居之國. 祇者太子名也. 樹是祇陀太子所施, 故言祇樹. 給孤獨者須達長者之異名. 園本屬須達, 故言給孤獨園.” 번역하면 이렇다. “(경문에) ‘일시(一時)’라고 한 것은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던 때를 가리킨다. ‘불(佛)’은 설법의 주인을, 그리고 ‘재(在)’는 그 처소를 가리킨다. ‘사위국(舍衛國)’은 파사익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고, ‘기(祇)’는 그곳 태자의 이름이다. ‘수(樹)’는 기타(祇陀) 태자가 기부한 숲이라는 뜻에서 ‘기수(祇樹)’라고 했다. 급고독(給孤獨)은 수닷타(須達) 장자의 별칭이다. 수닷타 장자가 소유한 정원이기에 급고독원(給孤獨園)이라고 했다.”
각설하고, 나는 <율장>의 이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하나는 수닷타 장자의 영웅적 용기이고, 둘은 붓다의 유머 감각이다. 수닷타 장자는 새벽이 오기 전에 어둠 속에서 몇 번을 망설인다.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속의 영광과 부를 버리고, 삶의 의미를 일깨워줄 스승을 찾아 대면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는 주저한다. 한 걸음을 내디디면 다시는 이전의 익숙했던 삶으로 돌아올 것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때 야차 시바카가 조용히 속삭인다. 그것은 자기 내면에서 울려오는 불성의 소리에 다름 아니다. “코끼리와 말, 나귀 수레 백대도, 보석 귀고리로 장식한 수백명의 여인들도, 네가 내딛는 한 걸음의 16분의 1의 가치도 없다. 나아가라 장자여. 나아가라, 물러서지 마라!” 이 속삭임을 우리 모두 듣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무시하고 살거나, 업장이 두터워 아예 듣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