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뿌리 내린 소나무·뼈와 피
무기물-유기물 결합한 인연의 그물
금년 여름은 무덥고, 더위도 길었다. 하지만 입추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어떤 사람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한해의 결실을 계획하면서 바쁜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한 여름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산사를 주위에 두고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특히 법주사와 같이 산과 잘 어우러진 사찰은 세계의 어떤 문화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산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재정의 희생을 요구했던 유럽의 문화재에 비해서, 자연과 규모의 균형을 갖춘 우리의 사찰은 인류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유산이다. 법주사는 서기 550년 경, 신라 진흥왕 때, 의신 화상이 인도에서 돌아와 지었다고 전해진다. 팔상전 등 국보급 유물이 불교를 이상향을 그렸던 선조들의 마음을 전해준다. 피부병이 많았던 세조께서도 들러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법주사를 품고 있는 속리산 또한 명산이다. 초입부터 소나무가 세속에 찌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속리산 소나무는 어느 나무보다도 잘 생겼다. 물이 그렇게 키운 것인지, 아니면 바위가 소나무를 그렇게 강하게 키웠는지 알 수는 없다. 아마, 청정한 물, 깨끗한 공기, 그리고 바위가 어울려서 한국의 소나무를 키워 냈을 것이다. 특히 바위 위에서 자란 소나무는 우리를 경외롭게 만든다. 물을 찾아서 용트림 모습을 한 뿌리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게 만든다.
재료공학자들은 지구의 물질을 유기물질과 무기물질로 나눈다. 유기물질은 탄소가 주가 되어 만들어낸 물질이다. 나머지 물질은 모두 무기물질이다.
생명은 유기물질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에 생명을 다루는 과학에서는 유기물질이 중요한 대상이 된다. 식물이 태양으로부터 빛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녹말을 만드는 광합성 작용은 유기물질 세계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에 비해 한국이 세계 제일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실리콘 물질은 바위와 같은 무기물질이다.
1밀리미터의 100만분의 1정도의 크기를 다루는 나노 과학자들은 유기 분자들을 조작해서 생명현상을 이해하기도 하고, 또 미량의 암 독소를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한다.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반도체와 같은 무기물질을 나노 크기의 입자로 쪼개고, 그 표면을 잘 처리해서 원하는 유기분자를 붙인다. 이 유기분자가 병원균과 결합하게 되면 나노 입자의 성질이 바뀌게 되는데,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병원균의 유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바위 위에서 뻗어나간 소나무의 뿌리를 보면서, 무기물질과 만나는 유기물질의 인연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는 나의 몸 역시 무기물질(뼈)과 유기물질(피, 호르몬등)의 만남으로 이뤄져 있음을, 그리고 이 인연이 흩어지면 또한 작은 원소로 다시 돌아가는 위대한 인연의 그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