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마 붓다 이전 설해진 대승의 이치
<금강경>의 본문으로 진입하기로 한다. 1장은 이 법회가 열리기까지의 사정(因由)을 적었다. 번역 세 개를 우선 선보인다.
첫 번째는 세조 때의 언해본을 읽기 쉽도록 약간 손본 것이고, 두 번째는 구마라습역의 경문이며, 세 번째는 내가 외람되이 해 본 것이다.
[언해] “이 같음을 내 듣자오니… 일시(一時)에 부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에 계셔… 큰 비구(比丘) 중(衆) 천 2백 5십인과 함께 계시더니… 그 때 세존(世尊)께서… 식시(食時)에 옷 입으시고… 바리 가지시고… 사위대성(舍衛大城)에 들르시어… 그 성중(城中)에 밥 빌으시어… 차제(次第)로, 빌으심을 마치시고… 본처에 도로 가시어… 반(飯) 자심을 마치시고… 옷과 바리를 갖추시고… 발 씻으시고… 좌(座)를 펴서 앉으시거늘.”
[원문]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번역] “한때 붓다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의 정사에 계실 때, 1250명의 많은 수행자와 함께 계실 때였다. 밥 때가 되어, 붓다께서는 옷을 걸치고, 발우를 들고, 도시 가운데로 들어가, 집집을 돌며 탁발을 하시고 나서, 본래 있던 거처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옷과 그릇을 거둔 다음, 발을 씻고, 자리를 펴서 앉으셨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모든 경전은 “여시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시작한다. 말씀을 듣고 적은 주인공은 아난(阿難, Ananda)으로 설정되어 있다. 후대에 성립된 경전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억력과 총명이 제일 뛰어났던 붓다의 사촌 동생 아난이 이 모든 말씀을 머리 속에 적어 암송하여 후세에 전했다”는 것이다.
초기 경전들이야 그럴 수 있었겠지만, 대승의 경전들은 명백히 후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이 사실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겨났다. 가령 반야부(般若部)의 경전들은 이미 붓다 당시에 설해졌던 것들인데, 이해력이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나가스, 즉 용궁에 보관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용수가 그것을 세상에 선보였듯이, <금강삼매경>도 원효가 부를 때까지는 용궁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상식은 이것을 영 엉터리 소리로 치부하려 한다. 그러나 좀 달리 볼 수 있지 않을까.
진리는 새로운 것이 없다. 그래서 길은 늘 옛길이다. 서양의 탁월한 아마추어 철학자 듀란트는 “오직 오류만이 새롭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우리는 예전의 현자들과 성자들이 밝혀놓은 길을 따라 걷는다.
불교는 기원전 6세기의 고타마 싯다르타 이전에 수많은 붓다들이 세상에 다녀갔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소승이나 대승, 초기불교나 후기 선과 밀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대승의 이치는 이미 붓다 ‘이전에’ 설해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가. 가령,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다가, “아, 이 양반이 불교의 근본 이치를 알고 있었네” 하는 느낌…. 거기 선다면 아우렐리우스가 불교를 말하고, 불교가 아우렐리우스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 내부에서도 그 소식을 깨닫기만 하면, “네가 곧 부처다”라거나, “네가 부처와 조사와 한 자리에서 그들을 대면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 요컨대 ‘그것’이 중요하지, ‘누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것은 다만 ‘이름’ 뿐이다. 이름은 가격을 표시해 놓은 레테르일 뿐이니…
물건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떼어낸다! 혹, 그것을 자랑으로 일부러 붙여 놓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사위국(舍衛國)
“일시(一時)에 부처께서 사위국(舍衛國) 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에 계셔…” 번역하자면, “언젠가, 붓다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가 되겠다. 어느 경전이나 그렇지만 설법을 하자면 무대부터 세워야 한다. 주인공은 당연히 붓다이다. 시간은 알 수 없다. 장소는 그분이 생애 후반기 오랜 세월을 머물던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여기서 무대는 역사적 붓다에서 따 왔지만, 대승이 더 발전하면, 가령 <화엄경>처럼, 지상의 밖, 저 먼 아득한 환상의 나라에다 설정하기도 한다.)
사위국(舍衛國), 혹은 사위성(舍衛城)은 붓다의 고향인 코살라의 수도이다. 지금 네팔에 가까운 북부 인도의 사헤트 마헤트가 그곳이라고 한다. 붓다는 한때 90만호로 번성했던 이 ‘놀라운 도시’에서, 깨달음을 얻고 난 후의 전법 40년 가운데 25년을 지냈다.
사위(舍衛)는 Srasvatti의 음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Pizza’를 ‘피자’라고 표기한 것과 같다. Srasvatti를 보다 실제 음에 가깝도록 표기했다면 네 음절 정도를 썼을 법한데, 발음의 편의와 경제성 때문에 안을 뭉개 두 글자로 줄인 듯하다. 일본은 외국어를 자국어 음가로 표기할 때 이보다 훨씬 더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로 유명하다. ‘television’을 ‘테레비’로 줄인 것은 애교라고는 해도, 워드프로세서를 ‘와뿌로’라고 잘라먹는 것을 보고는 좀 심했다 싶기도 했다. 자동차 수리점에서 ‘쇼바’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보았을 것인데, 그것이 ‘충격 흡수 장치’를 뜻하는 ‘shock absorber’의 일본식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교용어를 한문에서 산스크리트어로?
그러나 그 기이한 발음은 일본인이 발음하고 소통하는데 있어 가장 경제적이라는 판단의 결과일 것이니, 그야말로 자연적 선택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외국어 음을 본토음에 가장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효율적이지 않다. 그럴 필요도 없고… 관건은 소통이지 재현이 아닌 것이다. 지금도 Pizza를 ‘핏짜’라고 핏대(?) 올려 발음하는 사람이 있으나, 표기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대중화되고, 발음이 익숙해지면 그때 그것은 자연스레 표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작금에 추진되고 있는 ‘불교 용어 표준화’에 대해 한번 더 말해두어야겠다. 원어가 Srasvatti이니 이제 그만 사위성을 버리고, ‘스라스와띠’로 바꾸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금강경>도 ‘바즈라쩨디카 수뜨라’로 바꾸어야 하겠지…. 결국 불교를 익히고 배움에, 한문을 그만 산스크리트나 빨리어로 배우고 익히자는 것인데… 이는 2000년의 불교 전통을 그만 바닷물 속에 가라앉혀 버리자는 폭거 아닌가.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절간마다 산스크리트로 독송한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독송하는 것이야 시대가 달라졌고, 소통과 이해를 위하여 본격 시도하는 것이 한편 바람직하지만, 지금 와서 산스크리트 원 발음을 되살리고 그 원 문자에 표기를 의뢰하겠다는 것은 넌센스 중에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