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이다. 이럴 때는 떡이야기가 제격이다.
백결선생은 명절인데도 떡을 만들 쌀이 없는 부인을 위하여 거문고로 떡방아소리를 내주었다고 한다. 예술 한답시고 쌀독도 채워주지 못하는 능력 없는 지아비가 그 절박한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켜 놓은 것이 ‘방아타령’이다.
용담숭신 선사는 출가 전에 떡장수였다. 그래서 떡파는 노파가 덕산 스님을 용담 선사에게 안내해준 것일까?
동종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던지라 이미 서로 알고 있었거나, 업계에 떠도는 소문을 통해서 이름을 들었거나, 아니면 뒷날 그 회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거나 셋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첫 번째 두 번째 설은 심증일 뿐이고, 세 번째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운문 선사는 호떡뿐만 아니라 그냥 떡을 가지고도 많은 납자를 제접했다.
어느 날 공양을 하면서 떡을 먹다말고는 한 납자에게 물었다.
“발우 속에는 떡이 몇 개나 있으며, 떡 속에는 발우가 몇 개나 들었느냐?”
“??? 음~”
그리고는 납자가 알았다는 듯 떡을 번쩍 들어올리니 운문 선사가 말했다.
“차라리 노파에게 물어 보거라.”
묻는 질문에 나름대로 떡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답변을 했는데, 그 답변이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떡장수 노파에도 안목이 미치지 못한 것을 질책한 것이다.〈금강경〉의 대가인 주금강(뒷날 덕산 스님)이 떡장수 노파에게 허기를 면하고자 떡을 달라고 하니 도리어 질문을 던진다.
물론 제대로 답변하면 떡을 그냥 주고 답변을 하지 못하면 돈을 줘도 떡을 팔지 않겠다는 으름장과 함께. 이쯤 되면 노파가 아니라 납자를 제접하는 선사나 진배없다.
“금강경에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데(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스님께서는 어떤 마음을 밝히시겠다(點心)는 것입니까?”
점심(點心)은 간단한 요깃거리라는 의미도 있지만 ‘점등(點燈)’에서 보듯 ‘점’은 ‘밝힌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출출함에다가 점심시간이라는 의미를 중첩시키면서 마음을 밝힌다는 의미가 동시에 포함된 이중적인 질문이다.
어쨌거나 운문 선사의 ‘발우 속의 떡’ 물음에 대한 답으로 납자가 떡을 들어올린 것이 그 노파의 경지만도 못하다는 말이렸다.
운문 선사의 이런 점검방법은 다른 납자에게 또 떡을 들더니 그것을 가지고 말했다.
“나는 너에게 이 떡의 반을 나누어 줄까 한다.”
그리고 난후 정작 주지는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당연히 그 납자가 의아하게 생각하고서 물었다.
“왜 나눠주지 않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운문 선사가 말했다.
“네가 썩은 나무등걸이나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打野 ).”
옳은 나무라야 소리가 날 텐데 썩은 나무를 두드리고 있다는 말이다. 답변을 제대로 못한 까닭에 떡을 얻어 먹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공부를 완전히 마친 후 인가를 하면서 스승이 만들어 주는 떡을 파참재(罷參齋)라고 한다.
성철 선사가 파계사 성전암에서 법전 선사에게 파참재 떡을 해주겠다고 하니 “싫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단지 떡을 싫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