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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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찾기, 아름다운 본능/이우상(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또 한 차례 장엄한 행렬이 펼쳐진다. 전국 도로가 주차장이 될 줄 뻔히 알면서 고향으로 향한다. 서러운 기억을 잠시 도시에 묻어두고 설렘의 풍선을 잔뜩 부풀게 하여 고향으로 간다.
짐짝 취급을 받아도 좋다. 고향 행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다면 풋풋한 엄살을 떨며 감수한다. 고성능 컴퓨터도 해석해 내지 못할 불가사의다. 고향이 뭐길래.
그곳에는 빳빳한 지식이 해독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 굵은 주름 얼굴에 가득한 부모가 있다. 자식들의 트렁크에 더 넣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늙은 부모의 사랑이 있다.
뿔뿔이 흩어져 삶의 막장에서 붉은 눈빛으로 살던 벗들이 선한 유년 시절의 얼굴이 되어 모여든다. 산천은 변했어도 그리움과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이다. 윤색과 가면을 모르던 시절의 초상이다.
그곳에는 협잡과 비난이 없다. 물고 물리는 사슬이 없다. 내 몫을 빼앗길까 눈에 불을 켤 일이 없다. 한없이 너그럽고 풍요롭다. 아들딸이 다투어 노모에게 용돈을 찔러 넣어 드리고 오랜만에 만난 유년 시절 동무들은 서로 술값을 내겠다고 다툰다.
그 많은 이기심은 어디로 가고 넘치는 자비가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다. 고향에 오면 모두가 너그러워진다. 고향에 오면 옹색한 일상을 잊는다. 그래서 고향에서는 하나같이 천진불이다.
황토방 같은 고향이란 장치에 몸을 담그면 힘이 솟는다. 삼엄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삭막한 기계가 되어 서걱거리며 돌아가던 자신을 버리고 조상과 가정과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인간의 피가 돌게 한다. 고향은 우리가 잃고 싶지 않은 추상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고 싶은 체험 학교다.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럽고 좀 더 베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정신이다. 단번에 몇 십 년 세월을 건너뛸 수 있는 굴림판이다.
부끄럽게 살아온 날들을 참회하며 넉넉하고 온유한 본래의 자신을 찾아주는 재생공장이다.
미국 뉴올리언스 사태는 뿌리 깊은 나무와 뿌리 없는 나무의 차이를 선연하게 보여준 교훈이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재앙이다. 강제된 규제로 형성된 질서와 오래 묵은 관습으로 이루어진 질서의 차이도 느낀다. 그러나 그들 또한 멀리 있는 이웃이다. 도움의 손길을 뻗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래, 보름달, 한가위는 원융무애(圓融無碍)다. 만다라다. 걸림과 막힘과 뾰족함이 없다. 남에게 겨눌 창을 버리고 더불어 굴러가라는 은유다.
내 조상, 내 부모, 내 자식이 소중하나 둥근 이웃이 없으면 함께 굴러갈 수 없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담아오는 한가위 귀향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도 많다. 열두 시간 걸려서 고향에 도착했다는 무용담을 부러워하는 이웃도 있다. 그들에게 나눠줄 고향 냄새, 그들에게 나눠줄 푸성귀 한 바구니를 함께 가져오는 것도 잊지 말자. 천진불의 모습을 다시 장롱 깊숙이 구겨 넣지 말자.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잃었다가 다시 찾은 그 얼굴로 살아가자. 이번에도 보름달은 어김없이 천 개의 강을 비출 것이다. 강에 비친 달의 모습이 바로 내 얼굴이다. 그 얼굴들로 삶의 막장을 가득 채우자.
민족 대이동은 헌법에도 없는 행사다. 마지못해 치루는 시험도 아니다. 차 속에 갇혀 꼼짝 못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묵언 수행자처럼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부처가 되어 있다.
기름 가득 채우고 먹을 것 넉넉히 준비해서 고향으로 출발! 아이들과 함께라면 휴대용 변기도 잊지 말도록.
200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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