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역사는 삼라만상의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에서 존재론이 가장 중요한 테마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학은 존재의 모습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파동을 활용한다. 즉 물체에 파동을 보내고, 물체가 파동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파동은 파도와 같이 물이 높고 낮은 모양을 가지면서 에너지를 전파하는 모양을 말한다. 최근 동남아에서 일어난 지진해일 역시 지진으로 생긴 막대한 에너지가 파동의 모습으로 바닷물을 통해서 전달된 모습이다.
소리나 빛 역시 파동이다. 파동의 높고 낮은 모습이 일초에 몇 번 변화하는가를 주파수라 하고, 높낮이 사이의 거리를 파장이라고 한다.
주파수가 높으면 1초에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이 많아진다. 1초에 많은 수의 높낮이가 존재하므로 이를 많은 정보량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동으로 얼마나 큰 물체를 알아낼 수 있는가는 파동의 파장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가시광선의 파장은 마이크론(1mm를 1000정도로 쪼갠 것)정도 밖에는 구분해 낼 수 없다.
현미경으로 아무리 확대하더라도, 바이러스를 보기 힘든 이유는 바이러스가 우리가 볼 수 있는 빛(가시광선)의 파장보다도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파장이 짧은 파동을 쪼아주어야 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서 방출되는 원자선 파장은 매우 짧다. 가시광선 파장의 1000분의 1에 불과한 X선을 다시 1000등분한 정도의 크기다. 파장이 짧을수록 큰 에너지를 갖게 되는데, 원자선의 파동은 세포의 핵까지 침투해서 유전자손상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방사선에 쪼인 사람은 대부분 유전자 손상으로 기형아를 출산할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은 또한 주파수가 짧을수록 많은 정보를 실어 보낼 수 있다는데 착안해 파동의 주파수를 높여서 통신에 사용하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PC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주파수가 기가 단위(1초에 약 10억 번 진동)이다. 일초에 약 10억 개 이상의 디지털 정보를 이용하게 된다. 이와 같이 물질의 본질을 알기 위한 역사, 그리고 많은 정보를 빨리 전파하는 역사는 파장이 짧은 빛을 다루는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박자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향수가 일어나고 있다. 바로 주파수 경쟁, 그리고 작은 세계를 보려는 경쟁이 사람들을 바쁘게 지치게 만드는데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심장의 박동은 기껏해야 일초에 100번 이상을 진동하지 않고, 신경 신호의 전달 신호 역시 수천 헤르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빠르고, 많은 정보를 추구하는 대열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끊임없는 경쟁의 대열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 때,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도록 하자.
외부에서 주어지는 파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심연에서 나오는 본질에 대한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전기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