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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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부5강 육조해 서문 번역 (3) /한국학중앙연구원
人我山崩處(인아산붕처) 無爲道自高(무위도자고)

자기 안의 불성만 믿고 안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 불성을 삶에서 개화시키는 노력이 시시각각 있어야 그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

왜 금강에 비유했는가
12. “여래가 굳이 금강(金剛)에 빗댄 것은 다만, 세인(世人)들의 성(性)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으로 경전을 왼다고 광명(光明)이 생길 리 없고, 밖으로 외면서 안으로 행해야 광명이 같이 밝아질 것이다. 안으로 견고하지 않으면 정혜(定慧)가 망(亡)하고, 입으로 외고 마음으로 행해야 정혜가 함께 밝아진다. 이것을 궁극(究竟)이라 한다.” (如來所說金剛喩者, 爲世人性無堅固, 口雖誦經, 光明不生, 外誦內行, 光明齊等. 內無堅固, 定慧卽亡. 口誦心行, 定慧均等. 是名究竟.)
-불성이 원래 견고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견고해 지라고 금강을 말했다고? 금강불성은 그럼, “금강처럼 불성을 단련시키라”는 소리가 되는데…
13. “금이 산중에 있어도 산은 이것이 보물인 줄 모른다. 보물도 이게 산인 줄 모른다. 왜냐. 지각(性)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각(性)이 있어, 그 보물을 쓸 줄 안다. 금의 전문가를 구해, 산을 뚫고 깨서 원광을 제련하는데, 그렇게 얻은 순금을 처분하여 빈고(貧苦)를 면한다. 사대신(四大身) 중에 있는 불성 또한 그러하다. 사람의 몸(身)은 세계(世界)에 해당하고, 인아(人我)는 산(山)에 해당하며, 번뇌는 광석에, 불성은 금에, 지혜는 제련사에, 정진용맹은 (그 광석을) 뚫고 깨는 일에 비유된다... 몸의 세계(身世界) 가운데 인아의 산(人我山)이 있고, 인아의 산 가운데 번뇌의 광석이 있다. 번뇌의 광석 가운데 불성의 보물이 있고, 불성의 보물 가운데 지혜의 제련사가 있다. 지혜라는 제련사를 써서 인아의 산을 깨고 뚫어, 거기서 번뇌 광석을 보는데, 그것을 깨달음의 불로 불때고 녹이면, 거기 금강 불성이 분명히 명징(明淨)하게 있는 것을 본다. 금강의 비유를 든 취지가 여기 있고, 그래서 경의 이름도 그렇게 짓게 되었다.” (金在山中, 山不知是寶. 寶亦不知是山. 何以故, 爲無性故. 人則有性, 取其寶用. 得遇金師, 斬鑿山破, 取 烹鍊, 遂成精金, 隨意使用, 得免貧苦. 四大身中佛性亦爾. 身喩世界, 人我喩山. 煩惱喩 , 佛性喩金, 智慧喩工匠, 精進勇猛喩斬鑿. 身世界中有人我山, 人我山中有煩惱 . 煩惱 中有佛性寶. 佛性寶中有智慧工匠. 用智慧工匠, 鑿破人我山, 見煩惱 , 以覺悟火烹煉, 見自金剛佛性了然明淨. 是故以金剛爲喩, 因爲之名也.)
- 제 1부의 6, 7, 8강에 걸쳐 이 비유를 짚어본 바 있다. 다시 거들떠 보면 좋겠다. 연구원 근처에 들른 어느 웰빙 보리밥집의 액자에 이런 싯귀가 적혀 있었다. “인아산붕처(人我山崩處), 무위도자고(無爲道自高),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 수복자귀의(壽福自歸依).” 무슨 뜻일까. “인아의 산이 무너지는 곳에, 무위의 도가 절로 높아간다. 어디든 하심(下心)하는 바로 그곳에, 건강과 행복이 절로 몰려든다.” 자기 속의 분열도 그렇고 사람 사이의 갈등도 자연과 실제(實際)를 수긍하고 존중하지 않는 저항에서 생긴다. 그 싸움으로 이곳저곳에 온통 피가 낭자하다. 도덕이나 계율도, 칭찬이나 비난처럼 그런 인아산(人我山)의 긁어 부스럼 가운데 하나이기 쉬우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합장.
14. “(그렇지만) 헛 이해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이름만 있고 실질이 없다. 취지를 이해하고 행동을 닦아야 명(名)과 체(體)가 구비된다. 닦지 않으면 범부요, 닦으면 성지(聖智)와 같다. 그래서 금강(金剛)이라 이름지었다.” (空解不行, 有名無體. 解義修行, 名體俱備. 不修卽凡夫, 修卽同聖智, 故名金剛也.)
-이 설명은 덧붙일 필요 없는 것같은데….

왜 般若라 했는가
15. “반야는 범어이다. 지금 우리말로는 지혜라 한다.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지(智)이고, 방편을 발휘하는 것을 혜(慧)라고 한다. 혜는 지의 체(體)이고, 혜는 지의 용(用)이다. 체(體)에 혜가 있다면 지를 운용하여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체에 만일 혜가 없다면, 어리석음에 빠져 지를 운용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로 이 어리석음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何名般若, 是梵語, 唐言智慧. 智者不起愚心, 慧者有其方便. 慧是智體, 智是慧用. 體若有慧用, 智不愚. 體若無慧用, 愚無智. 緣愚癡未悟, 遂假智慧除之也.)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바라밀이라 하는가
16. “바라밀은 지금 우리말(唐言)로는 도피안(到彼岸)이라 한다. 도피안이란 ‘생멸을 떠난다’는 뜻이다. 다만 세인들의 성(性)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일체법(一切法) 상(上)에 생멸상(生滅相)이 있어, 제취(諸趣)에 유랑(流浪)하여 진여(眞如)의 땅에 이르지 못한다. 이 상태가 차안(此岸)이니, 일체법에 대 지혜를 갖추어 생멸을 완전히 떠나면 이것이 도피안이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마음이 헤매면 차안이고, 마음이 깨달으면 피안. 마음이 삿되면 차안이고, 마음이 바르면 피안’이라고… 구설심행(口說心行), 입으로 말하고 동시에 마음으로 행하면 즉 자법신(自法身), 즉 자신이 곧 법신이라 바라밀이 있고, 그렇지 않고, 입으로는 외되, 마음이 행치 않으면 거기 바라밀은 없다.” (何名波羅密, 唐言到彼岸. 到彼岸者, 離生滅義. 緣世人性無堅固, 於一切法上, 有生滅相, 流浪諸趣, 未到眞如之地, 是此岸. 要具大智慧於一切法, 圓離生滅卽是到彼岸, 亦云心迷則此岸, 心悟則彼岸. 心邪則此岸, 心正則彼岸. 口說心行卽自法身, 有波羅密. 口說心不行卽無波羅密也.)
-육조는 이 언덕과 저 언덕을 어디 저편으로 읽지 않고, 쉽게 말하자면 마음의 ‘태도’로 읽었다! 피안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 있다. 혜능은 고위관리를 비롯한 청중들에게 “서방정토가 지금 여기 있으니, 어디 한번 보여주랴”하고 은근 유머를 섞어 깨우쳤다.

무엇을 일러 經이라 하는가
17. “경(經)이란 길(徑)을 뜻한다. 성불(成佛)로 가는 통로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이 길을 걷자면, 마땅히 안으로 반야행(般若行)을 닦아 구경(究竟)에 이르러야 한다. 만일, 외고 설하기만 하고, 마음이 이에 의거하여 행하지 않으면 자심(自心)에 경(經)이 없어진다. 실견(實見)하고 실행(實行)해야만 자심에 경(經)이 있다! 여래(如來)가 이 경을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密)이라고 부른 뜻이 바로 여기 있다.” (何名爲經. 經者徑也. 是成佛之道路. 凡人欲臻斯路, 應內脩般若行, 以至究竟. 如或但能誦說, 心不依行, 自心卽無經. 實見實行, 自心卽有經. 故此經, 如來號爲金剛般若波羅密也.)
- 누구나 한 권의 <금강경>을 갖고 있다. 글자로 씌어지지 않은 그 경전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해 나가는 법을 배우자. (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
200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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