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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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용과 뱀이 함께 사는 곳/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어리석은 대중 산중에서 쫓아낼 요량으로
제사 지내고 술·고기 먹으니 무더기 줄행랑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다. 그러니 항상 서로 척지고 살지 말라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고통이지만 그 못지않게 미워하는 사람을 매일 봐야하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는 한번 맞닥뜨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대중조직의 테두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매일 봐야 하는 미운 사람들은 언제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니 항상 외나무다리 위에 서 있는 격이라 하겠다.
선가 역시 ‘부모 말도 안 듣고 집을 나온’ 개성이 강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흔히 ‘용사혼잡(龍蛇混雜)’이라고 한다. 이 말은 무착문희(820~899) 선사가 오대산 금강굴에서 만난 문수보살에게 “그곳 대중은 어떻게 사십니까?” 하고 물으니 “범부와 성인이 같이 살고, 용과 뱀이 함께 섞여 있소.”라고 한 것에서 기인한다. 다시 무착 선사가 묻기를 “수행자는 얼마나 사느냐?”고 하니 문수보살은 그 유명한 공안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고 답변한다. 그 뒤부터 ‘전삼삼 후삼삼’은 〈벽암록〉35칙으로 정리되어 오늘까지 수선자(修禪者)들에게 커다란 의심덩어리를 던져주고 있다.
행동거지가 머트러운 괴각들과 함께 사는 것을, ‘역경계 선지식’을 모시고 산다고 생각하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결국 그 마음을 일으킨 사람이 못살고 걸망을 싸기 마련이다. ‘무거운 절 떠나라고 하느니 가벼운 중 떠난다’는 말이 딱 맞다. 정작 가야할 놈은 계속 살고, 살아야 할 사람은 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사바세계이다.
따라서 이런 일이 없도록 칼같은 선사들은 전체 대중을 위하여 말썽꾸러기는 몽둥이를 휘둘러 가차없이 쫓아내 버리든지, 개과천선(改過遷善)케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반대로 한 두 명을 빼고 나머지 대중 전체가 보기 싫을 때는 그 회상을 파(破)해버리는 수밖에 없다.
분양선소(汾陽善昭:947~1024) 선사는 데리고 살 수 없는 대중을 목소리 돋우지 않고도 자기 발로 걸어 나가게 만든 고수다.
하루는 대중을 모아놓고 “간밤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타나서 술과 고기 그리고 지전(紙錢)을 찾았다. 그러니 속가법식대로 제사를 모셔야겠다”고 했다. 곳간을 열고서 제물을 마련해 위패를 모시고 술잔과 고기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종이돈을 불살랐다. 절집에서 유교식으로 제사를 모셨으니 대중이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어른이 제사를 주관하니 참석이야 했겠지만 이맛살을 있는대로 찌푸렸을 것이다. 그런데 한 술 더 떠 제사를 마친 후 사판의 대표격인 도감과 이판의 대표격인 입승을 제사상 앞으로 오게 했다. 그리고는 소반에 남아있는 술, 고기와 함께 음식을 주었다. 하나같이 수행자가 이런 것을 먹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혼자 가운데 자리에 앉아 태연히 고기를 먹고 술을 마셨다. 대중은 술과 고기를 큰방에서 먹는 ‘땡초’를 어떻게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느냐면서 모두 걸망을 지고 떠나버렸다.
그래도 스님을 믿고 따르는 석상자명(石霜慈明986~1040)과 대우(大愚), 곡천(谷川) 스님 등 몇 명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이날 선사는 법상에 올라 이렇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수많은 잡귀신 떼를 한 상의 술, 고기와 두 뭉치의 종이돈으로 모조리 쫓아버렸다. 남은 대중 속에는, 가지와 잎은 없고 오로지 진짜 열매만 남아 있구나.”
분양선소 선사의 진정한 뜻은 죽은 귀신을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산 귀신을 쫓아버리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한 스승의 본래 의도를 모르고 작전에 제대로 걸려든 어리석은 산송장 같은 대중을 보내버리기 위하여 제사상의 술과 고기가 또다른 할과 방이 되었던 것이다.
200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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