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識)이 좋아도 시운(時運)없으면 수태 어려워
태아, 흙 물 불 바람 공간 5원소에 의해 형성
중음을 떠도는 혼령이 마땅한 부모를 찾아 사람의 몸으로 환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緣:원인)은 닿았으나 시절(時節:여건)이 여의치 않아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숱하다. 마땅한 부모는 찾았으나 부부 한 쪽이라도 내키지 않거나 병중(病中)에 있어서 잠자리를 갖지 못하면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 마땅한 부모도 있고 그 부부의 관계나 성생활도 원만하다 해도 이미 낳은 자식이 많고 쌓은 업이 다하여 식(識:혼령)이 환생하기를 꺼려하면 수태가 될 리 없다. 부모와 식(識)이 아무리 찰떡궁합이라도 시운(時運)이 닿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멀쩡한 젊은 부부들이 몇 년씩이나 아이를 못 갖고 마음고생들을 하는 것이다. 그런 부부들은 지성으로 업을 씻고 부지런히 선업과 공덕을 쌓아 수태할 수 있는 연(緣)을 맞도록 간절히 발원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티베트의학에서는 이렇듯 남성의 정액과 여성의 피(난자)가 섞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미경의 ‘현’자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던 시대에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이 아닌가! 불임이 오직 여자 쪽의 탓만으로 일방 매도되던 시대에 티베트의학은 벌써 불임이 남자나 여자 어느 쪽의 책임일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티베트의학에서는 태아 형성에 중요한 두 번째 원인으로 흙(地) 물(水) 불(火) 바람(風) 그리고 공간(空)이라는 5원소를 지적하고 있다. 흙 원소는 태아를 단단히 굳히고 물 원소는 태아를 점착하여 응집시키고 불 원소는 태아를 숙성시키고 바람 원소는 태아의 성장과 발육을 도우며 마지막 공간 원소는 태아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다. 흙 원소는 있으나 물 원소가 없다면 마치 밀가루가 물이 없으면 반죽이 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반대로 물은 있으나 흙 원소가 없다면 물이 한 곳에 괴지 못하고 흘러버릴 것이다. 흙과 물 원소는 있는데 불 원소가 없다면 어떻겠는가?
한여름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그늘에 방치된 짐승의 시체 꼴이 될 것이다. 금방 썩어 문드러지고 말테니까! 흙 물 그리고 불 원소가 있고 바람 원소가 없다면 어찌될까. 마치 빵 만들 때 공기가 고루 섞여 잘 부풀도록 반죽을 천천히 갤 때의 이치와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다 있는데 空 원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맞지 않는 너무 작은 신발에 억지로 발을 쑤셔 넣으려는 형국과 흡사할 것이다.
흙의 원소는 우리 몸에서 뼈 근조직 코 그리고 후각(嗅覺)과 같은 고형 물성들을 만들어낸다. 물의 원소로부터는 혈액 액체성분 혀 그리고 미각과 같은 신체의 액성 물성들이 만들어진다. 불의 원소는 체열 안색 눈 그리고 시각의 물성을 만들어낸다.
바람 원소는 호흡 피부 그리고 촉각의 물성을 생성한다. 공간 원소로부터는 신체내강의 여러 개구(開口:입출구) 귀 그리고 청각의 물성이 생겨난다. 한편 정자와 난자는 이 모든 5원소로부터 만들어진다. 결국 태아는 건강한 정액과 난자 의식 그리고 5원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수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곧이어 태아의 발생이 시작된다. 티베트의학에서는 태아의 발생과정을 주 단위로 세세히 기술하고 있다. 태아의 발생을 그렇게 주 단위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의학체계는 동서 어느 전통의학에도 없다. 중의학이나 인도 아유르베다의학에서 달 또는 보름 단위로 태아의 발생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정도가 고작이다.
어떻든 티베트의학에서는 수태되어 태아가 제 모습을 갖추어 출산되기까지는 38주가 소요된다고 하였다.
수태에서 분만까지 38주의 임신기간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첫 단계는 물고기기(魚期)로 임신 첫 주에서 9주까지이다. 어기(魚期)의 태아는 물고기모양으로 사지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단계는 태아가 가장 상처받기 쉽고 민감한 시기로 임부는 식생활과 처신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무거운 것을 든다거나 난삽한 성생활 밤늦은 잠자리 그리고 낮잠과 같이 신체에 부담이 되는 처신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