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은 그 사람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또 다른 이름이다. 절집도 사람 사는 곳이라 별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부처님의 별명은 무엇인가. ‘여래 응공 정변지 뭐 어쩌구’ 이렇게 나간다면 별로 재미없다. 당신의 별명은 ‘잔소리 쟁이’이다. 허구헌날 ‘~는 하지 말라’고 똑같은 소리를 지겹도록 반복해대니 발란타 비구가 호기있게(?) 붙여주었다.
선가(禪家)도 예외는 아니다. 속가의 성씨가 별명으로 불린 경우도 많다. 남전 선사는 성씨가 왕씨인 까닭에 ‘왕노사’라고 자칭하였고 도일 스님은 마씨인 까닭에 ‘마조’라고 불렸다. 목주도명(睦州道明) 선사는 만년에 짚신을 삼아 팔아서 노모를 봉양하고, 그 나머지는 대문 앞에 걸어두고서 길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까닭에 ‘진초혜(陳草鞋)’ 라고 불렀다. 성이 진씨이고 초혜는 짚신을 가리킨다.
덕산 선사는 <금강경>의 대가인지라 ‘주금강’이라 불렸다. 모두 핏줄을 중시하는 중국적 유교가족주의 영향이다. 하긴 현재 우리나라도 이름 좀 떨치는 유명 스님들에게는 종친회에 참석하라는 공문도 오고 본사 주지급이 되면 족보에도 올려준다고 들었는데 사실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신체적 특징이나 습관이 별명이 된 경우도 있다. 달마 대사는 맨날 벽만 쳐다보고 있으니 ‘벽관(壁觀) 바라문’이라고 불렀다. 육조혜능은 ‘갈료( :남방의 오랑캐)’
라고 했다. 디딜방아를 찧을 때 몸무게가 모자라 허리춤에 돌을 매달고 있었다니까 체격도 왜소하고, 남아있는 등신불을 보면 그렇게 잘 생기신 것 같지도 않다.
명주(明州)땅의 계하덕굉(啓霞德宏) 선사는 인품이 강직하여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웃지 않는 탓에 ‘철면(鐵面)’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철면피’라고 하면 다소 상스러웠을 텐데 ‘철면’이라고 하니 같은 말이라도 듣기에 조금 낫다. 아무리 별명이지만 이정도 배려는 필요하다.
선종사에서 가장 언어구사력이 뛰어난 사람은 조주 선사였다. 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려운 깨달음의 경지까지도 언어로 풀어낸 까닭에 그의 선풍을 ‘구피선(口皮禪)’이라고 불렀다. 구피는 입술을 말한다.
귀종지상 스님은 눈빛이 붉었다고 했다. 그래서 ‘적안(赤眼)귀종’으로도 불린다. 그 이유는 늘 약수로 눈을 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철분이 많은 약수터 물가 주변은 붉다. 귀종 스님이 즐겨 드신 약수도 철분이 많았나? 그렇더라도 석연찮다.
맹수에 빗댄 별명도 있다. 호랑이와 사자가 대표적일 것이다. 장사경잠 스님은 별명이 ‘대충(大蟲)’이다. 대충은 호랑이란 뜻이다. 앙산 선사와 법거량하면서 스승을 걷어차 쓰러뜨렸다. 이런 기개를 가진 탓에 앙산이 붙여준 이름이다.
호주(湖州) 서여사(西余寺) 정단(淨端) 선사는 사자춤을 보다가 깨쳤다. 그리고 항주(杭州) 용화사(龍華寺) 제악(齊岳) 선사를 찾아갔다. 만나자마자 몸을 뒤집으며 사자춤 흉내를 내보였다. 제악 선사가 이를 보고 인가하였다. 사자춤을 통해 깨쳤고 또 인가받은 인연으로 총림에서는 그를 ‘단사자(端獅子)’라 불렀다.
근대의 송광사 효봉 선사는 정진 때 꼼짝을 하지 않는 탓에 별명이 ‘절구통수좌’였다. 언젠가 깊은 삼매로 피부가 짓물러져 엉덩이에서 방석이 떨어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현재 해인사 방장 법전 선사도 좌복 위에서는 미동도 않는 것으로 제방에 호(號)가 나 있다.
마지막으로 요즘 입심 좋은 스님들을 좋게 표현하여 ‘지대방 방장’이라 부른다. 반대로 ‘개구(開口)뻥’이라고도 한다. 이는 ‘입만 열면 허물’이라는 선어록의 ‘개구즉착(開口卽錯)’을 패러디한 것이다.
어쨌거나 모든 별명에는 그 사람의 특징만큼이나 품격과 사상 그리고 문화가 알게 모르게 스며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