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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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부 2강 강의를 어떻게 진행해 나갈까/한국학중앙연구원
혜능의 ‘금강경’과 함께 춤을

<금강경>은 <반야심경>과 더불어 대승 반야의 핵심적 경전이다. 둘 다 기원후 4세기 무렵 성립된 듯하고, 취지 또한 같지만, 둘의 스타일은 좀 다르다.

반야심경과 금강경의 차이
<반야심경>은 압축적이고 조직적이다. 한 자도 뺄 수 없이 촘촘해서, 씹기가 아주 딱딱하다. 이에 비해 <금강경>은 산문적이고 예언적이다. <금강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듯 반복과 변주로, 멈추고 나아간다. <반야심경>이 비유컨대 좌정(坐定)하고 있다면 <금강경>은 춤추고 있고, <반야심경>이 수렴적이라면 <금강경>은 흩어낸다. 이는 <반야심경>이 공(空)을 축으로 짜여있는데 비해, <금강경>은 그런 중심이 없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나는 여기서 <금강경>을 택했다. 너무 압축적이면 한 자리에서 곱다시 집중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들이를 나서자면 조금 헐거운 것이 좋겠다 싶어서 이 경전을 택했다. 또 하나는 이 경전이 대승의 중심이면서 선(禪)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은 불교를 통틀어 섭렵해본 사람의 파이날 터치로 그만이다. “아직 거기까지는” 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지나치게 논리적이지도 않고 지나치게 설화적이지도 않으면서, 불교와 선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는 <금강경>이 적격이다.
그럼 이 책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 체제부터가 고민거리였는데, 이렇게 하기로 했다.
1) 아무래도 ‘직역’이 필요하다. 불교도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늘 듣고, 또 독송하는 것이라 문장의 용어와 구조에 익숙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본문의 ‘분위기’를 전해줄 필요가 있었다. 직접 토를 달까 하다가, ‘언해(諺解)’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세조는 즉위 과정에서의 피비린내를 씻기 위해서인지 불교를 독실하게 믿고, 많은 경전을 언해했다.
그 중에 <금강경>은 본문 뿐 아니라, 거의 <오가해>까지 언해했다. 여기서는 본문 언해만 소개한다. <금강경 언해>는 아름답지만, 고어의 표현들이 너무 생소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약간 현대투로 고쳐 실었다. 이 언해를 통해 <금강경>의 장중한 분위기와 맛깔스런 어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강의의 정신과 방식
2) 다음은 ‘해석’이 따라야 한다. 편의를 위해 현대적 번역부터 제시하고, 다시 내부를 각 장별로 나누어 해석하기로 했다. 장(章)의 구분은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 501~531)가 해 놓은 것을 따랐다.
<금강경>의 본문은 원래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소명태자가 32장으로 문단나누기를 하고, 그 각각에 제목을 붙여놓았다. 전통적으로는 이 체제를 따르고 있지만, 물론 달리 나눌 수도 있다. 일례로 콘즈(E. Conze)의 영역은 아주 다르게 내용을 묶고, 장절을 나누어 놓았다. 이번 강의는 한역의 전통 분단(分段)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견이 있는 부분은 실제 해석해 나가는 과정에서 밝혀주기로 한다.
각 장의 해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가) 장의 ‘대의’를 짚어주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제시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나) 각 ‘구절’의 뜻을 부연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가)의 대의를 위해서는 1부에서 미리 해 놓은 이야기들이 적절히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라건대는 독자들이 그 ‘별기’를 옆에 두고 들추어보고 새겨주었으면 한다. 나)의 ‘주석’ 부분이 앞으로 강의할 2부의 대종을 이룰 것인데, 여기서 전통이 쌓아놓은 방대한 한문의 주석은 거의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알고 싶은 정보’는 그들 주석 속보다는 바깥에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단순한 지명이나 인명, 역사적 배경이나 서지적 지식 등 주변적 항목들은 무시하거나 간략하게 언급할 작정이다. 그런 사항들은 다른 금강경의 해설서들이 미리 잘 해 두었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하나의 용어나 구절이 뜻하고 있는 바를 각자의 ‘마음’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고, 또 혹 드러나지 않은 맥락에 가려져 있는 부분들은 그 맥락을 알려줌으로써 각자가 <금강경>을 직접 만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물론 잘못 짚은 곳,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 오히려 애매해진 곳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오류’가 독자들에게 보이도록은 해놓을 참이다. 오류는 고칠 수 있지만, 그러나, 애매한 것은 대책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자유롭게 주석과 해석을 해 나갔다.
이런 주석이 그러나 순전히 내 혼자 뚝 받아 얻은 독창일 수는 없다. 소스는 다양하다. 어떤 것들은 불교의 문헌에서 얻었고, 또 많이는 불교 밖에서 얻었다. 허나 불교가 마음을 다루고 있다면, 그리고 불교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진리로 안다면, 불교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자주 불교와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불교를 느낄 때가 많다.
3) 본문의 ‘현대어역’을 제시한다. 앞의 주석 과정을 반영하고, 본문의 취지를 살려 새 ‘번역’을 내놓아 볼텐데, 그러나 이 또한 가령 틱낱한 스님의 <금강경>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 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혜능의 구결을 읽는다
이 강의에서 내가 직접 조회한 소스는 예고 드린 대로 혜능의 이야기식 해설, 즉 구결(口訣)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 콘즈의 영역본을 참고했다. 사람들 가운데는 내가 끌고 가는 주석과 해석의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많겠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혜능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결하고 직접적이며 아름다운 육조의 구결에 비하면, 사실 내 글은 해 솟은 다음의 횃불이고, 큰 물 진 다음의 논에 물대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의역을 곁들여 서문부터 번역해 보여 주려 한다.
혜능의 글도 한문인지라, 그리고 많이 전통의 어법에 기대고 있는지라,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껄끄럽고 투박할 것이 틀림없다. 이런 사정은 영어 번역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혜능의 구결을 ‘해체’하여 소개해 주기로 했다. 혜능의 구결 안에는 1) 생소한 용어의 번역도 있고, 2) 맥락을 짚어준 것도 있으며, 3) 본문의 내용을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부연한 부분이 있다. 1)과 2)는 번역 자체를 통해 대부분 소화시킬 작정이지만, 3)은 친절한 해설의 손길이 필요한데, 특별히 심오하고 까다로운(?) 부분에 대해서는, 혜능의 원문을 함께 두고 살핌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금강경>의 뜻이 절로 밝아지고, 더불어 혜능의 목소리까지 듣게 될 것이다.

*아 참, 공지 사항 하나… 1부의 이야기와는 달리 2부는 주석이라서 경어체를 버리고 평서체를 택하기로 합니다. 이야기는 설득을 위한 것이고, 주석은 설명이 근본이라서 이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행여 필자가 시건방져졌다고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200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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