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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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버리지 말고 근본에다 그냥 뭉쳐 놓아야
갖는 도리를 배우지 말고 주는 도리를 배워야


살생에 대해서

운전을 하고 가다 보면 닭이나 돼지가 트럭에 실려서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럴 때 마음을 낸다고는 하지만 꼭 우리가 이렇듯 낮은 차원의 동식물의 목숨을 죽여서 남의 살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 듯 즐겁게 내 몸을 위해서 그것들을 취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하는지요.


강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습니다. 만약에 ‘살생을 하지 마라’ 하는 말씀대로 한다면 그것은 아주 무지하게 살생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부들이 아니더라도 수없이 잡아서 먹고 삽니다. 우리가 뭐는 안 먹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살생을 하지 마라’ 하는 것은 그런 살생이 아니라 좀 차원 높은 ‘살생을 하지 마라’ 하는 얘기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내 몸과 같고 내 생명과 같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하고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내 생명과 같고 내 몸과 같이 그렇게 사랑하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만약에 억겁을 거쳐서 우리가 진화되고 창조되고 하는 이러한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전부 살생이지만, 만약에 고기들을 어부들이 그렇게 잡지 않는다면 그 고기 모습으로서 한 백 년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잡아 줘야 그 모습을 벗는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어야 할 사람은 먹어야 하지만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먹지 마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 쪽은 살생이 되고 다른 한 쪽은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말입니까.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돈을 한 주먹 준다 하더라도, 쌀을 사 준다 하더라도 그건 임시방편입니다. 한생각을 해 줄 수 있는 그 능력으로서 무주상 보시를 해야만이 억겁을 거쳐 오면서 진화돼서 굴러오면서 업을 짓고 유전을 짓고, 끄달리고 얽히고설킨 그 업보를 다 면제시켜 줄 수 있는 그런 한생각을 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썩은 뿌리를 없애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예 자기 마음 가운데 창살이 없으니 그냥 활발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생긴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살생하지 마라’ 하는 것은 두 가지 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지 마라’가 아니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는 것도 아닌 도리를 알아야 살생을 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살생을 아무리 안 한다고 하더라도 살생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항상 여러분한테 말씀드리죠? 소를 한 마리를 다 먹는다 하더라도 그거는 먹는 사이가 없이 먹어야 양면이 다 산다 이겁니다. 왜냐! 부모를 위하든지 자식을 위해서 어떤 걸 죽인다 하더라도 그 무명을 벗겨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그 도리를 알아서 그 무명을 벗겨 주고 인간으로서 화현을 하게끔 하고 무명을, 묶여 있던 거를 벗겨 줄 수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벗겨 주면 그 살은 약이 되니까 양면이 다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고기가 고기로 보이는 사람은 그것을 못 먹고, 고기가 고기로 보이지 않고 내 살과 같이 보인다면 바로 그것은 무명이 벗겨지는 겁니다.
그리고 이 체(體)는 약이 되지만 그 영혼은 체가 없는 거니까 바로 넣어도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 내 마음에다가 넣고 굴리면 모든 게 금방 ‘나’가 됩니다, 금방. 금방 한 찰나에 ‘나’가 됩니다. 닭이나 돼지나 개나 모든 생명이 말입니다. 어떤 생명을 취해서 다른 생명이 살아야 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나 그것을 취할 때의 내 마음은 그것을 항상 ‘나’와 둘 아니게 볼 수 있는 참된 마음이어야겠습니다.


부처님 서 말 서 되의 사리


석가모니 부처님도 6년 동안 고행하고 좌선을 통하여 열반을 성취하셔서 임종 시에 서 말 서 되의 사리가 나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 6년 동안을 몸뚱이가 좌선을 한 게 아니라 마음이 좌선을 한 거지요. 6년 동안 가만히 요렇게 앉아만 있었다면 부딪침이 없어서, 새가 쪼고 그러는 것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걸 알았으니깐 공부를 했죠. 거기에 끄달리질 않고. 만약에 그걸 몰랐으면 송장이게요? 알면서도 송장 노릇을 한 거예요, 얼른 쉽게 말해서. 그래서 살아 있을 때에 열반이지 죽은 게 열반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자기를 스스로 발견해 가지고 보니까 모두 그냥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거든요, 이 속에서. ‘아하! 요놈들이 그랬구나!’ 이럭하고선 거기에서 ‘어! 다 네놈들이 그런 거니까 내가 상관할 게 뭐 있나?’ 그러곤 속지 않은 거죠. ‘거기서 나왔구나. 내가 어떡하나 볼 양으로 그렇게 자꾸 나오는구나.’ 하고 온갖 유혹들도 물리쳤지 않습니까? 그게 둘이 아니게 놓으니까 물리친 거죠. 그러니까 하나도 버리질 않았어요. 마구니든 귀신이든 뭐 미녀든 그냥, 뭐든지 버리질 않고 거기다가 그냥 뭉쳐 놓아 버린 거예요. 그건 체가 없잖아요.
그러니깐 뭉쳐 놓으니까 그게 어떻게 됐느냐 하면 ‘아, 이래도 속지 않는구나. 할 수 없지 뭐. 속지 않으니, 다 알고 있는 거 자꾸 일어나게 해 봤자야 재미도 없고.’ 그러니깐 고만 물러선 거죠. 그러니까 물리쳤다 이러는 거죠. 그래서 하나도 갖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버릴 게 없더라 하는 게 나오죠. 그러니까 안에서도 항복을 받았거니와 바깥에서도 항복을 받아서 모든 걸 항복을 받고 난 것이 뭉쳐서 자기 아님이 없는 도리로서, 자비로서 화한 것입니다.
나는 사리에 대해 그렇게 생각합니다. 석존이 열반하셨을 때 서 말 서 되가 나왔다느니 그러지 않습니까? 그게 몸뚱이도 전부 응신이기 때문에, 하나 버릴 게 없는 응신이고 화신이고 모두 법신이고 부처고 이러니까 하나도 버릴 게 없이 그냥 그대로 사리다 이겁니다. 털끝 하나 사리 아닌 게 없어요. 그러니까 그 세포 하나하나마다 그 몸뚱이 털끝 하나도 버릴 게 없이 사리다 이겁니다. 그 뜻은 이 세상의 모두가 자기 아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죽은 것도 없고, 즉 말하자면 사리라는 언어도 붙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서 말 서 되라는 말도 그것도 아주 그냥 서 말 서 되라고 한 그 숫자 액면 그대로 있는 게 아니고 전체를 말한 겁니다.
그러면 부처님 몸뚱이뿐만 아니라 삼천대천세계의, ‘삼천’ 하면 삼이 들어가죠? 서 말이란 말입니다. 이거를 서 말을 한 말로 따진다면 ‘천’ 이렇게 하는 거나 ‘모은 한마음’ 하는 거나 똑같은 얘기죠. 천이거든요.‘천지’이렇게 해도 ‘천’은 이 우주 전체가 하나거든요. 하나로 돌아가거든요. 그게 하나로 돌아가는 게 ‘지’ 해놓으면 그냥 또 한데 합쳐져 버립니다. 아래 위로 합치는 것이 천지요, 또 돌아서 그냥 한데 합쳐서 둥글게 돌아가는 게 천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이 천지가 전부 사리 아닌 게 없으니 부처님 아닌 게 없고, 부처님 아닌 게 없으니 부처님 도량 아닌 게 없고, 부처님 도량 아닌 게 없으니 그 모두 부처 아닌 게 없느니라. 그 가운데에 마음을 한 찰나 이렇게, 백지장 하나 사이 이렇게 넘어서면, 저 언덕을 넘어서면 부처고 법신이고 화신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부와 하나가 되고, 부처가 되고, 또 이게 생각을 냈다 하면 그냥 법신으로 이렇게 하나로 화해 버립니다. 그와 같은 도리를 보여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병을 고칠 수 있는지


선(禪)을 하면 몸의 병도 고친다고 스님께서 설법하실 때마다 말씀하시는데요, 병도 세균에 의해서 생기는 병도 있고 또는 정신적으로 오는 병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 경우는 작년부터 당뇨병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선으로써 고칠 수 있는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병뿐만 아니라 전체 살림살이가 다 그렇습니다. 이 병 문제라는 것은 여러분이 잘 모르시는 게 많습니다. 그게 원인이 어디서 오느냐는 얘깁니다. 이 원인은 지금 여러분들 몸속에, 예를 들어서 간단히 방편으로 따져 본대도 11억이라는 숫자가 나와요. 11억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숫자 없는 11억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럼 11억이라는 게 어디서 왔나. 자기가 과거에 살던 인연들입니다. 악으로 했으면 악으로 지은 인연, 선으로 했으면 선으로 지은 인연들 형제의 인연들 뭐, 모든 인연들이 착을 가지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그대로 그것이 인연이 돼서 여기 여러분의 몸 하나가 된 겁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어머니나 아버지의 정자 난자가 있어서 뼈와 살을 빌려서 몸뚱이 하나를 부모한테 받았는데, 그 몸속에 있는 생명체 그 의식들은 전부 자기의 인연으로 인해서 만난 뭉침이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살다가 망하게 되는 것도 과거의 인연이 그렇게 하게 만들고, 악도 거기서 나오게 하고 선도 거기서 나오게 하고 모든 게 한 군데서 나고 들고 나고 들고 하는 것입니다, 체가 없으니까. 마음에 입자가 돼 가지곤 분자로 화해 가지고 자꾸 나와서 나한테 귀인이 되게 만들지 않고 그냥 악인이 돼서 나를 망하게 만들고 있고, 또 잘돼 나가는 거는 전자에 살다가 인연을 잘 지어서 선으로 된 그런 인연이 있다면 그런 인연은 또 귀인을 만들어서 끌어오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병이 나게 하는 것도 이 공장마다 병이 나게 하는 수도 있고 한 간장 공장만 병이 나게 하는 수도 있고, 방광 공장만 병이 나게 하는 수도 있고, 대장 소장이니 식도니 심장이니 콩팥이니 이런 것도 전부 공장과 같다 이겁니다, 이 오장 육부가.
그러면 우리가 지금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니까 마음을 잘 내면 꿈을 잘못 꾸고도 ‘아, 이거는 잘될 꿈이다.’라는 거, 생각을 한생각 주인공한테 맡겨서 ‘아, 이거 잘되게 할 수 있다. 주인공만이 할 수 있다.’ 하고 맡길 수 있는 그 믿음, 그런 것이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이 속의 모든 의식들, 공장의 직원들을 지배하거든요. 전부! 마음이 그러면 두뇌로 올라가서 두뇌로 인해서 사대에 다 통신이 되는 겁니다. 의학적으로도 그렇고 인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병을 낫게 하는 데는 그저 무조건 자기 지배인, 즉 말하자면 주인공 그 자체를 믿으셔야 합니다. 주인공이라는 것은 뭐냐. 영원한 생명의 근본과 마음을 낼 수 있는 분별과 마음을 내면 육신이 움죽거리는 그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독불장군이 없이 돌아가는 거. 공생·공용·공체·공식화 할 수 있는 이 세상, 이런 거를 더불어 같이 이익하게 할 수 있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한 찰나에 여러분의 그 주인이 마음 가운데서 항상 같이 해 준다 이겁니다.
내가 있음으로써 모든 게 부딪치는 거지 내가 없는데 뭐가 부딪칩니까? 그러니까 내 탓입니다. 잘못했든 잘했든 내 탓이다 이겁니다. 모든 게 나의 탓이니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병도 그렇습니다. 병이 나으려면 내 탓으로 돌리면서 주인공에다 ‘주인공밖에 내 병을 고칠 수 없다!’ 하고 맡겨 놓고 또 잘됐으면, 나았으면 ‘감사하다!’ 하고 하는 것도 거기에 감사해라 이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딴 사람이 생활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기네들 속에서 나오는 거 자기네들이 해결하라고 딱 맡기면 자기네들이 ‘아아, 이거 맡기는 놈이나 지금 하는 놈이나 이렇게 맡기는 놈이 바로 내 몸뚱이로구나. 나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가 자기 죽이는 법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운전수가 잘 끌고 다니고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생활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자식 문제만은 되지 않는데…


미국 L.A.에 사는 재미교포입니다. 한국에서 우연히 불성이 깊으신 분에게서 한마음 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주신 한마음요전을 소중히 미국올 때 가져왔습니다. 한마음요전을 처음 읽고 나서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평소에 제가 알고 싶었던 불법 그 모든 것이 한마음요전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열 번도 더 읽었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겨 스님께 질문을 드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현 생활에서 항상 주인공만 믿는 생활을 하고 있는 중 바라고 원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해결되는 신비로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식에 관한 일만은 아무리 간절히 주인공에게 맡겨 봐도 해결되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지 꼭 스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배우는 것이 마음의 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딴 거 배우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재산을 가져오라는 것도 아니요, 여러분이 이 마음공부를 해서 여러분의 이익을 보자는 거고 여러분의 깨달음을 가져오라는 거고, 여러분의 몸을 보존하라는 거고, 가정을 보전하라는 거고, 자식들을 이끌어 가고 위로는 부모 묵은 빚을 갚고 내가 능력을 길러야 자식들한테도 능력의 그 빛이 거기까지 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능력을 기르지 않고는 자식들도 뿌리가 깊게 박히고 건전하고 건실하게 뿌리가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 혈통이, 핏줄이라고 그러죠? 어머니 아버지의 그 혈통과 그 핏줄이 어디 가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닦으면 그 마음이 이 모든 혈통, 혈통과 피 전체가 전부 바꿔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생명의 의식들이 여러분의 인연에 따라서 뭉쳐진 업덩어리입니다.
그런데 악이고 선이고 나쁜 거고 화내고 이런 것도 전부 거기서 나오는 건데, 그것이 전자의 과거에 살 때 인연에 따라서 온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주먹을 불끈 쥐고 건전하게 살아나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건전치 못하고 이리 왕 저리 왕 돈 한 푼이라도 생기면 이리 쓰고 저리 쓰고 해서 방탕하고 이러는 사람이 있죠. 그것이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서 그게 그렇게 생기는 겁니다. 그것을 고치고 제재해 나가려면 내 마음이 나를 바로 이끌어 갈 수 있고 다스려 갈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만 됩니다.
둘째는, 그렇게 다스려 가면서 여기다가 모든 것을 한마음으로 맡겨 놔야 됩니다. 왜냐하면 악업 선업을 다 지닌 인과로서 이렇게 뭉쳐진, 개수로 따질 수가 없이 많은 그 의식들이 여기에 지금 수효가 헤아릴 수가 없는데, 그러면 헤아릴 수 없는 그 모습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습과 의식, 그 많은 생명들이 내가 마음먹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게. 그렇기 때문에 다리가 아파서 내가 걷지 못한다 이럴 때 ‘야! 너희들, 너 한마음 주인공 심부름을 하는데, 아니 이 다리가 이렇게 아파서 어떡하니?’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참 아주 진실하고 아주 근면하고 건실한 생각이죠. 그렇게 하면 벌써 이 속에서 알아듣습니다. 알아들어서 이 다리가 금방 괜찮아질 수가 있습니다. 다리뿐이 아닙니다. 어떠한 문제도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우리 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대 정법은 뭐냐. 실행입니다. 실천과 실행. 모두 실험을 해 보세요. 내 가정의 어떠한 거, 내 자식을 위한다든가 내 부모를 위한다든가 내 몸을 생각한다든가 뭐 어디 아프다든가 일이 안 된다든가 무슨 재판이 걸렸다든가, 어떠한 문제가 언제 어느 때 앞에 닥칠지도 모르거든요. 우리가 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위험하고 그러니까 모든 거는 거기에 맡겨 놓고 이렇게 한번 실험을 해 보고 실천을 해 보는 데에 목적이 큰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실천이 없이 자기가 체험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식구들한테도 나쁜 말 하지 말고 나쁜 생각 하지 말고, 잘못했다고 해서 “요놈의 새끼, 너 혼 좀 나 봐라.”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이겁니다.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주인공에 맡기고 그저 ‘한마음 주인공! 그 모두 몰라서, 물리가 터지질 않아서 그런 거니까 한마음 주인공만이 그저 물리가 터져서 영리하게 제가 자기 앞가림을 하고 나가게끔 이렇게 당신만이 할 수 있어.'’ 하고 맡겨 놓습니다. 이게 아들도 남편도 어머니도 자식도 친척도 다 한마음 아닙니까. 가설이 돼 있으니까요. 전부 한마음이다 이겁니다.
또 잘못한 거는 인의롭게 “얘! 너 나가서 뭐나 좀 먹었니?” 요렇게 부드럽게, 보금자리가 따뜻하게 이렇게 해 주란 말입니다. 맡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마음은 흐뭇해지고 따뜻해지고, 처음에는 냉랭하다가도 따뜻해지고 사랑이 깃드니 이탈되지 않고 그냥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니 화목이 오고 화목이 오니 복이 오고 복이 오니 공덕이 오게 되는 그런 이치를 한번 내 가정 속에서 실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


요즘이 무더운 여름이어서 그런지 인터넷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내용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고, 귀신에 관한 영화나 연극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 꿈에 보이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렇듯 보이지 않는 귀신의 존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우리가 더우면 피서 간다 그러는데 그건 피서구요, 우리가 어떠한 일이 생기면 벌써 ‘아이구, 속상해’ 그러고 피하려고 그럽니다. 피하려고 그러지 말고 그거를 단호히 없애려고 하셔야 됩니다. 귀신이 백 명, 스무 명, 만 명이 온다 하더라도 그 귀신은 바로 나이기 때문에 귀신이 두렵지 않다 이 소리입니다. 여러분은 그게 이해가 안 가실는지 모르지만 귀신이든 귀신이 아니든, 선이든지 악이든지, 부처든지 마구니든지 그 마음은 누구나가 불성은 똑같으면서 악하게 생각을 했다가도 다 준다면 아주 부처가 되는 겁니다. 다 주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다 주는 도리를 배우십시오. 모든 거를 갖는 도리를 배우지 마시고 주는 도리만 배운다면, 철저하게 100% 준다면 100% 나한테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다고도 생각하지 마시고 하십시오. 그냥 무조건 어떠한 용도에 따라서 다 버려야 내가 다 얻을 수 있고, 다 얻을 수 있어야 항복을 받을 수 있고, 항복을 받을 수 있어야 모두가 내 도량 아님이 없을 때 비로소 여러분이 다 한생각에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 건질 수 있고, 내 나라를 건질 수 있고, 모든 지금 앞으로 자라나는 애들 머리에 물리가 터지게끔 해 줄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죽은 사람을 보든지 귀신을 보든지 선신을 보든지 놀라지 말고 항상 둘이 아닌 걸로 알아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 닥쳐오는 그 날짜에 임박해 가지고선 꿈이 꾸어진다든가, 어떠한 귀신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둘로 보지 말라 이겁니다. 내 안에서 나를 테스트해 보려고 환상으로 내보내는 작용이다 하는 것만 알면 그 자리에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거니깐 그 자리에다 도로 놔 버린다면 바로 그냥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부들 하는데 어떤 문제가 닥치더라도 ‘이건 시험이다. 테스트하는 시험이다.’ 하고 그냥 거기다 놓으세요. 거기서 다 나오는 건데 어디 딴 데서 나옵니까?
그러니까 ‘네 의식 속에서 마음을 통해서 나오는 거 속지 마라. 나오걸랑 네 주인공에다 모두 일임을 해라.’ 이런 걸 알아들으면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아요. 이것이 딴 데서 온 줄 알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 의식 속에서 일어난 게 아니고 말입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건데 딴 데서 귀신이 온 줄 알고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귀신으로만 알고요. 그러니 그렇게 상대가 되는데 문제가 안 생기겠습니까? 이 마음, 이 육체 안에 그냥 영가가 셋도 들어가 있고 둘도 들어가 있고 그렇게 되기도 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도 딴 데서 들어온 게 없이 모든 걸 ‘내 이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거로구나.’ 하고선 속지 말고 그냥 주인공에다 일임하고 ‘너만이 이 모두를 다스릴 수 있는 거 아니야?’ 하곤 그냥 모두 거기다 맡겨 놓으면 다 편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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