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함으로 상대 무장해제주변엔 늘 사람들로 북적
사람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을 달리한다. 수행하는 스님 또한 수행하는 방법과 도달하는 길이 다르고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보고 느끼는 현상에 매몰되어 옳고 그름과 깊고 얕음을 논하게 된다.
옳고 그름은 만 가지 조건으로 나누어 이야기해도 부족하다. 그 장 단점은 스스로의 변명을 도와준다. 만 가지 조건과 스스로의 변명은 깊이를 모르는 외면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는 시끄럽다.
그래서 수행자에겐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스스로 하는 일 보다 다른 이의 일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렇게 하면 모두를 따뜻함으로 이끈다. 따뜻함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포근함은 아늑함으로 긴장과 경계를 녹인다.
무상 스님에게는 다른 이로 하여금 경계와 저항을 느끼지 않게 하는 진솔함이 있다. 그 진솔함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는 점도 포함된다. 설혹 상대가 미운 짓을 했더라도 스스로가 알고 이렇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하면 스님이 먼저 미안한 얼굴로 상대방을 안심시킨다.
무상 스님은 내년이면 세수로 환갑이 된다. 불가에서 환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 세연의 깊이가 그만큼 깊다는 것이다. 나는 스님과 인연이 깊다. 1974년 해인사에서 처음 뵙고부터 해인강원과 중앙승가대학,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함께 수료했다. 절집 인연으로는 사숙(師叔)님이 된다. 인연도 어찌 이런 인연이 있는가 싶다.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오면 스님께서 먼저 안부를 묻는다. 거꾸로 된 것 같아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무상 스님의 은사는 성호 대덕이시다. 성호 스님은 무상 스님이 해인강원에서 소임을 볼 때 매월 무상 스님에게 용돈을 주셨다. 용돈을 준 까닭은 소임을 보면서 공금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경책에서다. 무상 스님은 이 일을 수행과 소임을 보는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스님은 일이 안될 때나 긴장이 풀릴 때에도 남을 탓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돌린다.
스님은 어디를 가도 쉬지를 않는다. 강원도 법흥사에서는 산신각을 짓고 개운사에서는 단청불사를 하고, 봉은사 포교실에 있을 때는 포교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아프리카 풍물전을 열었다.
산이 좋아 히말라야 트래킹을 했고, 아프리카에 있는 킬리만자로를 등정했다. 중앙승가대 법인사무처장 소임을 볼때는 중앙승가대학교 학사를 김포로 옮기는 일을 마무리 했다.
무상 스님이 봉은사 주지로 있을 때다. 봉은사 신도들의 숙원불사였던 미륵부처님 점안식도 원만히 끝났고 아셈 협상이 남았을 때다. 내가 “쉬었다 갑시다”했더니 아니라고 하셨다. 부처님 제자가 놀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면 불사로 불은(佛恩)과 시은(施恩)에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불사는,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신도들의 기도 성취를 위한 안정과 평안을 주는 불사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다래헌과 법왕루 불사를 했고, 스님들의 수행과 신도들의 요양을 위해 한적한 교외에 봉은사 기도원과 부도전을 만들고자 했다.
그 후 무상 스님이 송광사 총무소임을 볼 때는 교구 산하 말사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어 법원 증인으로 나갔다가, 법정에서 사기꾼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에게 “모든 사람이 법 판결 이전에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려운 공부를 이뤄 저런 사기꾼이나 변호하려고 변호사가 되었느냐?” 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비가 온 뒤를 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흙은 돌을 받치고 있고 돌은 흙을 누르고 있다. 흙이 돌을 감싸고 있거나 돌이 흙을 받치고 있지 못한 돌과 흙은 저 아래로 떠밀려 굴러가 버렸다. 떠내려가고 굴러간 뒷자리에는 생채기가 나 있다. 내가 이웃과 함께 하면, 또 다른 이웃이 나와 함께해 준다는 일상적인 가르침이다.
세상사 그러할 것이다. 사물을 대할 때에도 들고 보면 내 것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놓고 보면 그들 것 아닌 것이 없다. 그들 것을 가지고 내 것 이라고 우기면 싸움이 난다. 싸움은 사실이든 아니든 헤집게 되고 상처를 남긴다. 싸움 뒤에는 되돌릴 수 없는 절교와 원망만 남는다.
무상 스님은 사물을 들고 보는 법이 없다. 모든 사물을 놓고 본다. 놓고 보는 편안함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럴 것이라고 다독여 준다. 함께하면 기쁨이 넘치고 혼자하면 외롭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그러기에 스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안온한 질서가 있다. 사람이 그리운 날에는 무상 스님을 보러 가면 된다. 스님은 지금 하남시 광덕사 주지소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