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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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대립과 갈등을 넘어/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부처님께서 하루 한 끼의 식사를 탁발로 해결하는 목적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가르침을 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도 부처님은 진리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시다 사위성에 사는 한 청년에게 깨달음의 인연이 무르익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공양은 이 청년에게 받아야겠구나.’
부처님은 발우를 들고서 천천히 청년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청년은 멀리서 부처님이 자기 집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청년의 신분은 전다라 즉 가장 낮은 계급이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똥치는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천한 계급의 사람들에게 절대로 다가가지도 않고 그림자조차도 서로 겹치지 않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인도 사회의 관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자기 집으로 걸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자기 모습이 너무 창피하여 부처님을 피해 다른 골목으로 서둘러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어느 사이 그 앞으로 가서 마주 서셨습니다.
‘내가 메고 있는 이 똥통에서는 추악한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부처님을 뵐 수 있으랴?’
그는 다시 부처님을 피해 숲으로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다가 그만 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통이 깨지자 순식간에 오물이 땅에 쏟아졌고 청년은 땅 주인의 매서운 질책을 들을까 겁이 나 다시 달아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일부러 너 때문에 왔는데 자꾸 어디로 가려 하느냐?”
“제 몸이 더러워 감히 부처님을 가까이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부처님은 제가 누군지 모르십니까? 저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친척도 처자도 없는 외톨이입니다. 게다가 저는 똥을 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천하기 그지없는 신분입니다. 그런데 대체 부처님께서는 이런 저에게 무슨 하실 말씀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오라. 너를 제도해 사문을 만들리라.”
청년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천민에게는 신앙생활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곧 신통의 힘으로 그를 갠지스 강으로 데려가 악취가 풍기던 몸을 깨끗하게 목욕시켰습니다. 이제 한 사람의 어엿한 수행자로 다시 태어난 청년은 어느 날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나는 빈천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다행히 조그만 복이 있어 진리의 맛을 보게 되었다. 만일 지금 스스로 도를 구하지 않으면 뒷날에는 보잘것없는 범부에 떨어져 지금보다 더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수행한 끝에 열흘이 못 되어 번뇌를 완전히 끊어버린 성자가 되었습니다.(출요경 제19권)
처음 이 경을 읽었을 때 부처님께서 똥치기 청년에게 “너 때문에 왔다”라고 말씀하신 뜻이 무슨 그리 큰 의미가 담겨 있으랴 하고 지나쳤습니다. 그저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셨구나’ 정도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현대 인도불교의 중흥자라 불리는 ‘암베드카르(1891~1956)’에 대한 책을 읽자니 “천민인 똥치기에게 다가간” 부처님의 행위가 얼마나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촉천민 즉 접촉해서 안 되는 천민에 대한 인도 사회의 차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지 2천년이 지나도록 불가촉천민은 마을의 우물물도 마실 수 없었고, 성전 읽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그 귀에 끓는 쇳물을 들이부어도 죄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암베드카르가 학생시절, 칠판의 문제를 풀러 나갔을 때 교실의 학생들이 모두 난리가 났었습니다. 칠판 뒤에 쌓아둔 자신들의 도시락이 부정 탄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고생 끝에 실력 있는 변호사가 되었을 때조차도 사환은 음료수를 주지 않았고 바닥의 카페트를 밟고 지나가면 부정 탔다며 걷어냈다고 합니다.
아예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불가촉천민. 그들은 다가올 수도, 내 쪽에서 다가가서도 안 되는 더러운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한 켠에서는 갈등과 대립의 행태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위보다 더 굳은 관습을 깨고 ‘그’를 위해서 다가간 부처님도 계신데 저들은 왜 ‘상대’를 위해 다가가려 하지 않는지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200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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