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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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담 스님의 스님이야기(가평 아가타 보원사 주지)-현음 스님
현대적 수행법 고민하다가
스리랑카·미얀마서 유학

사물은 존재하고 존재하면서 존재하는 자리를 차지한다.
그 자리가 비면 또 다른 것으로 차지하지만 공간일 뿐 시간은 지속적인 자리 차지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다르다.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다. 변한 것 같으면서도 늘 그대로다. 이러한 마음은 늙어가면서 더욱 애틋하게 느끼는 것이다. 몸은 늙었으면서도 마음은 늘 이십대에 머물러 있다. 느려진 몸을 보면서 나이를 먹었나 하지만 넓어지는 경험적 지식이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듯 마음 안에서야 생로병사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마음 밖에서는 생로병사가 있다.
부처님과 역대 선지식, 천하 종사들도 그렇게 오셨다 가셨고, 현음 스님 또한 이렇게 왔다 가는 것을 보았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갈 것이다.
현음 스님은 1973년 3월 송광사 보조종재일에 구산수연 스님을 은사로 수계를 했다. 행자 때에는 상행자로 우리에게 염불과 목탁 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수계해서는 사숙이 되었다. 스님은 늘 고민이 있었다. 스님의 고민은 개인의 것이기보다는 우리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현음 스님은 늘 상설수련원 운영을 말해왔다. 부처님 곁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선 수행법을 찾아 헤매곤 했다.
우리는 한국의 대승선이 일반 불자들이 실천 수행하는 데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안다. 말하자면 돈오돈수, 불립문자, 언어도단, 심행처멸, 이심전심, 일초직입여래지 등을 강조함으로써 사상적 이해보다 언어적 어려움을 안고 있다.
현음 스님은 다시 생각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일반 불자들이 선 수행을 하기 쉽도록 단계와 차제를 찾기로 했다.
당시 송광사에서는 학교 교육을 받는 것은 속퇴하는 지름길이라며 금했었다. 그러나 현음 스님은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스리랑카로 유학하여 팔리어를 배우고,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습득했다. 스리랑카로 유학을 가서 그곳의 수행법에 자리를 잡고 잠시 들릴 때였다. 어느 때와 같이 무소들의 뿔 장난처럼 서로 밀고 당기는 장난을 치다 말고 문득 같이 스리랑카로 가지 않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차를 마시는 방으로 왔다. 요지는 스리랑카로 유학하는 길을 알았으니 혼자 하는 것 보다 같이 하는 것이 공감대 형성과 저변확대를 위해 빠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나이 삼십 넘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초 학문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교육을 체계적으로 배운 어린 스님들을 선발하여 유학을 시키고 그 학문을 활용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웃으면서 훗날 여건이 되면 시간을 뛰어넘는 도보 성지순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현음 스님은 이해하는 듯 눈으로 그렇다는 대답을 했다. 곁에 계시던 나의 은사스님이, 이놈이 호강에 겨워 그렇다고 현음 스님의 힘든 유학 생활을 달래주셨다.
나중에 현음 스님이 귀국해 송광사 수련회를 맡아 대승선에 위빠사나 수행법을 통한 점차적인 차제적 선수행을 가르치는데 혼신을 다하였다. 수련생들도 호응이 크고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선방의 납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의 수행법인 간화선은 선 수행의 최극치로서 수행득력과 수행법이 완결된 것이라며, 간화선과 위빠사나를 합친 단계적 차제 수행으로 수행력을 얻는 방법에 일퇴를 가하였다.
그래서 현음 스님은 자신의 수행이 부족하다며 좀더 많은 경험과 수행력을 쌓기 위해 미얀마 유학을 강행하였고, 미얀마 유학중 간염에 걸려 결국 귀국하여 간경화로 이 세상살이가 마음 밖에서 오고가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스님은 고인이 되었다, 십년 전에.
가끔 생각이 난다. 늘 생각하다 가끔 잊는 것은 마음의 기쁨이자 아름다움이지만, 늘 잊었다 가끔 생각날 때는 생각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멍하니 생각하다가 그 생각하는 마음이 아프다.
한 여름 날 불일폭포에서 함께 하던 수영,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나 호탕하게 웃는 얼굴, 잘못 했을 때는 시끄러운 말보다 눈빛으로 일깨워 주고, 늘 ‘수행자’이기를 고집했던 그 꼿꼿한 자존심. 육신이 무너진 그날도 놓지 않고 있던 단단한 정신력, 마음의 흔적만 남기고 존재하지 않는 현실은 작은 부도라도 있었으면 했다. 내일의 할 일로 마음을 되잡는다.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막막하지만은 않다. 한편으로는 스님의 원력이 컸기에 인도환생 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200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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