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들 교육에 지극정성
자신에겐 빈틈없이 엄격
나는 송광사로 출가하면서 현문 스님을 처음 뵈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면 내복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나는 합섬 내복 안에 런닝셔츠를 입지 않고 있었다. 현문 스님은 합섬내복 안에 런닝셔츠를 입지 않으면 어린 피부가 상한다며 손수 입혀주셨다. 누군가 우리의 삶을 늘 지켜봐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의 은사스님 현문 스님을 생각하면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지키는 대나무가 연상된다. 스님은 당신 수행에 대해서는 한 치의 여유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함을 지녔으면서도 상좌나 이웃에게는 자애롭게 구석구석 마음을 써 주신다.
현문 스님은 상좌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
‘상좌 교육을 책임지는 은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고 , 또한 은사와 상좌의 관계는 ‘은사로서만이 아니라 같이 법을 구하는 구법자적인 도반으로, 인간의 정리(情理)적인 입장에서도 친구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래서 상좌가 강원에 가면 같은 가람 선원에 안거하면서 상좌 공부를 지켜보셨다. 상좌들이 서울 공부를 하게 되자 지금의 상도동 장승백이 약수암 절을 가꾸어 공부를 지켜보고 계신다.
내가 1974년 해인사 강원 치문반 때 일이다. 은사스님도 선원에서 정진을 하셨다. 그 때 해인사는 선원, 강원을 망라해 대중이 많았다. 대중이 많다보니 공양을 할 때면 중좌에 겹중좌를 치고 공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양하는 시간이면 큰스님과 선배스님들에게 청수를 따르고 공양을 푸고 국을 떠드린 뒤, 공양 중간에도 숭늉을 따르고 찬상을 날라야 했다. 공양이 끝날 적이면 어간 큰스님 앞에 나아가 합장 반배를 하고 무릎을 꿇고 큰스님이 주시는 발우를 받아 선반에 올려놓고난 뒤에 내 발우를 제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초심자가 큰스님의 발우를 받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복을 짓는 일이라 신이 났다.
삼개월이 지나고 후원 소임자들이 방부를 들이자 대중 방은 더욱 좁았다. 새 대중이 들어온 만큼 그 일에 밀리게 되어 공양이 끝나면 스스로의 발우만 올려놓으면 됐다. 대신 선반이 부족했다. 여의치 않은 사람은 벽장 책장에 넣어야 했다. 은연중에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공양을 마치는 죽비도 치기 전에 발우를 올리다 소임자 선배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포기할 때도 있지만 오기가 생길 때도 있다. 그날은 작심한 날이었다.
올리려고 하다 옆 도반이 내 팔을 쳐 발우가 떨어졌다. 발우를 들어올리기 전에 어간에 서 있는 은사스님 눈치부터 봤다. 몹시도 표정이 굳어 나가셨다. 당시는 목 발우와 사기발우가 유행했지만 나는 플라스틱 발우였다. 바닥에 떨어진 플라스틱 발우는 깨졌고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잠시 후 현문 스님이 후원 객실로 나를 불렀다. 발우가 어찌 되었느냐고 묻기에 조각이 나 쓸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의 걱정은 컸다. 수행자가 발우를 지니는 것은 부처님의 큰 복을 얻은 것인데, 그 복을 엎은 것도 아니고 깨트렸으니 수행자 생활을 평탄하게 할 수 있느냐며 어디에다 복을 담아 연명할 것이냐고 걱정하셨다. 내가 깨진 발우로 공양하기를 여러날이 지나자 은사스님은 새 발우를 사 주셨다.
상좌들을 공부시키면서 애태우는 일도 많으셨다. 그래서 상좌들에게 가끔씩은 “내 죽거든 가슴을 열어 보아라. 아마도 새까맣게 타 버렸을 것이다”라고 웃으시며 말씀하시곤 한다.
현문 스님은 늘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다. 하루빨리 스님들을 위한 정립된 교육도량, 신도들을 위해서는 전문수련 도량이 종단차원에서 설립 운영돼야 한다고.
은사스님의 상좌들을 헤아려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공부하고 해군법사로 활동 중인 소령 ‘정해’, 일본 용곡대 대학원 석사와 중국 유학을 한 ‘정묘’, 동경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친 ‘정원’, 대만 중화불학연구소 석사 ‘정도’,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정인’, 원광대 불교학석사 ‘정행’, 동국대 석 박사 과정의 ‘정각’, 영국 런던대학 동양학연구소 석사 ‘정여’, 박사과정 ‘정덕’, 동대 대학원 ‘정화’ 스님 등이 있다. 공부하는 상좌들이 특히 많은 것은 다 스님이 지극 정성을 기울인 결과라고 본다.
은사스님은 현재 라오스 젊은 스님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즐거움으로 지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