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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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어떤 시아버지 이야기/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뜻 거역한 며느리 타박않고 먼저 마음 연 만재장자
부처님 집으로 모셔 설법듣고 제자되어 혜안 열려

급고독장자에게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은 수마제. 매우 아름답고 품행도 단정하여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습니다.
어느 날 급고독장자에게 친구인 만재장자가 찾아왔습니다. 수마제가 나와서 인사를 드리자 며느리감을 찾고 있던 만재장자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보게, 자네 딸을 내 며느리로 주게나.”
하지만 급고독장자는 승낙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가족들은 독실한 불자집안인데, 친구의 집안은 자이나교의 나체행자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승낙을 미루던 급고독장자는 친구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부처님께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부처님은 아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답하셨습니다. 부처님의 흔쾌한 허락으로 장자는 용기를 내어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그런데 만재장자의 고향인 만부성에서는 성 밖의 사람들과 혼인 맺으려면 자기들이 믿는 나체행자 6천 명을 초대하여 정성껏 음식을 공양하면서 허락을 얻어야 했습니다. 만재장자도 6천 명이나 되는 나체행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한 음식을 대접한 뒤에 며느리를 불러내었습니다.
수마제는 시아버지의 명을 받고 단정하게 치장하고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나체행자들을 보는 순간 기겁을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벌거벗은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부처님과 제자들은 모두가 법다운 모습으로 공양을 받는데 저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가 봅니다.”
한바탕 소동이 일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아무리 타이르고 권해도 수마제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처님 이야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체행자들은 크게 화를 내고 돌아갔습니다.
갓 시집온 며느리의 행실치곤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무례였습니다. 시아버지는 그날 이후 한숨 속에서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애초에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며느리가 너무나 완강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잠시 제정신을 잃었던 게야. 며느리를 잘못 들여 집안이 망하게 생겼구나.’
그런데 마침 이때 장자의 오랜 친구가 찾아와 그의 걱정을 덜어주었습니다.
“오히려 잘 되었네. 어서 부처님을 집으로 모시고 법을 들어보게나.”
친구의 권유로 결국 만재장자는 며느리에게 말하였습니다.
“아가, 네가 믿는다는 그 부처님을 나도 한번 뵙자꾸나. 그 분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하렴.”
자기 때문에 시집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 가슴 아팠지만 옳은 신앙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던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제안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부처님과 제자들을 시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만부성으로 들어오시던 날, 한번도 부처님을 뵌 적이 없는 성의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만재장자의 집안에 평지풍파를 불러일으킨 며느리의 ‘그 스승’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자의 여법한 공양을 받고 난 부처님은 만재장자에게 오계를 지킬 것과 보시할 것, 그리고 선업을 닦아서 천상에 태어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나아가 탐욕과 번뇌는 더러우니 속히 벗어나라고 이르셨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장자의 생각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법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갖추어졌음을 보시고 부처님은 이어서 사성제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보는 깨끗한 눈을 얻게 된 만재장자는 동쪽 동산에 절을 지어 승단에 바쳤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그 성의 사람들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거역한 며느리를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먼저 연 시아버지 만재장자. 그는 며느리로 인하여 진리의 세계에 발을 딛을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어떤 칭찬의 말을 하였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는 말하였습니다.
“아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였구나. 너는 내 어머니이다.”

훗날 사람들은 그 절을 ‘만재장자 어머니의 강당(녹자모강당)’이라 불렀습니다.(보요경, 증일아함경 수타품)
200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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