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 뜻대로 안될때 ‘도나 닦자’라고 말합니다만
생활에 최선 다한 사람에게 출가 자격을 주셨군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는 그를 너무나도 귀히 여겨 온 정성을 다하여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려고 좋은 스승에게 교육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어려서부터 그 마음이 몹시 교만하였습니다. 부모의 힘든 고생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는 당연히 그런 사랑을 받는 거라 생각했든지 마음이 허황하여 조금도 성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아침에 배운 것은 저녁에 잊어버리고, 저녁에 배운 것은 아침이 되기도 전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여러 해를 교육시켰지만 조금도 똑똑해지지 않자 부모는 아들을 집으로 불러다 가업을 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여전히 교만하고 허황하여 부지런히 노력할 생각이 없었기에 살림은 점점 궁색해져갔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또 방탕하기까지 하여 아무 거리낌 없이 집안 살림살이를 내다 팔아 자기 유흥비로 써버렸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자면, 머리는 마구 흐트러졌고, 맨 발로 다니며 옷은 더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욕심이 많아 남에게 인색하고 게다가 당돌하기까지 하여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고 다른 이의 경멸을 받아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스스로 어리석은 짓을 행하여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고 천대하였습니다.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 피해갔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그제서야 그는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남을 원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를 원망하였고 다음에는 자기를 몇 년 간 가르치던 스승을 비난하였고 급기야 친구들을 탓하였습니다. 그의 남 탓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상들이 나를 돕지 않아 내가 부랑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처럼 고생하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들었는지 부처님이란 분이 사람들을 괴로움에서 건져준다는 소문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래, 차라리 부처님을 섬겨 그 복이라도 얻어 보자.’ 이렇게 생각한 그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이렇게 청하였다.
“부처님의 도는 너그럽고 넓어 모든 것을 다 포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부처님의 제자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런 사람은 부처님이 어서 거두어서 사람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부처님은 의외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도를 구하고자 하면 먼저 그 행실이 깨끗해야 한다. 그런데 너는 저 세속의 때[垢]를 가진 채 그대로 우리 도에 들어오려 하는구나. 부질없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니 무슨 큰 이익이 있겠느냐?”
청년은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소곳이 다음 가르침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돌아가거라. 집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외우고 익혀 목숨을 마칠 때까지 잊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는 더 낫다. 부지런히 생업에 힘써 부자가 되어 집안에 근심이 없게 하라. 예의로 몸을 지켜 잘못을 저지르지 말며, 목욕한 뒤에 깨끗한 옷을 입어라.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마음을 다잡고 오롯하게 지켜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잘 분별하여라. 굼뜨게 움직이지 말고 민첩하게 행동하며 세밀하게 자신의 행동거지를 잘 살펴서 남에게 칭찬받고 흠모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하라. 이렇게 실천해야 도를 닦을 수 있는 법이다.” (법구비유경 제3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도나 닦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도 닦는 일은 세상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 선택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출가를 만류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보면 수행이란 것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출가, 수행하기, 도 닦기.
이런 일들은 재가생활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먼저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했을 때 나의 형식이 갖추어지기 때문입니다. 형식이 갖추어지면 나에게는 격(格)이 생길 것이요, 그 격 속에 차츰 내용을 채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제대로 된 격을 갖추게 하는 것, 이것이 계율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재가자들이 수지하는 오계라는 것은 사실 뭐 그리 대단한 내용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오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건 제 앞가림을 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반듯한 하나의 인격체로 남에게 비쳐질 때 비로소 선정에 쉽게 들 수 있고 지혜를 밝힐 구체적인 수행의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겠습니다. 불자들이 공부해야 할 세 가지, 즉 삼학(三學)에서 가장 먼저 계율이 자리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