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거량 청한 비구니에게 말한마디 못하고 망신
분심 일으켜 이 악물고 용맹정진 해 안목 열려
운현궁 근처에서 복지관계 일을 하는 비구니스님이 종무소 오는 길에 들렀기에 차를 한잔 나누었다. 이런저런 복지관계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다가 무심코 니(尼)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게 되었다. 출가자이면서 여성 그리고 모성(母性)을 함께 소유한 까닭이다. 결론은 비구니는 너무 여자 같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남자인양 해도 안 된다는 거였다.
이 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임제종 관계지한(灌溪志閑 ?~895) 선사와 말산요연(末山了然) 비구니와의 문답에서 정리된 바 있다.
말산에서 법을 펴고 있는 요연 스님이 비구니인줄 알고 관계 선사가 한번 보자고 하니 ‘남녀의 상은 아니다(非男女相)’란 대답이 돌아온다.
어쭈! 이봐라. 그래서 호기있게 ‘할!’을 한번 하고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변하지 않는 거요(云何不變去)?” 물으니 “귀신도 아닌데 무엇으로 변하리오(不是鬼神 變什)?”라고 대꾸한다. 비구랍시고 비구니 회상에 가서 한마디 했다가 남녀라는 분별상에 빠져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순간 한 생각 돌이켰고 그 수업료로 삼년동안 그곳에서 농장을 돌봐주는 원주 소임을 자원하게 됐다.
구지 선사는 비구니 덕분에 깨치게 된 경우라 하겠다. 그는 천태산의 토굴에서 혼자 정진했다.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찾아와 삿갓을 쓰고 석장을 든 채 선사 주위를 세 바퀴 돌고서는 말했다.
“바로 대답하면 이 삿갓을 벗겠습니다.”
복색도 복색이거니와 그 내뱉는 질문도 듣는 비구로서는 고약하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기분이 별로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비구 비구니를 떠나 ‘법다이’ 한마디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 비구니는 그냥 가려고 했다. 안목 없는 비구 옆에 더 있어봐야 시간낭비라는 실망한 표정이 삿갓 속에 감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것은 모두 접어두고 날도 저물었는데 밤길을 가겠다고 하니 비구 이전에 ‘싸나이’ 입장에서 한마디 안할 수가 없다.
“날이 어두워졌으니 내일 해가 밝으면 떠나시지요.”
그래도 실제니(實際尼)는 똑같은 말만 거듭 반복할 뿐이었다. “바로 일러 주시면 하룻밤 묵고 가겠습니다.”
망신살 뻗치네. 꿀 먹은 벙어리마냥 가만있으니 그 니(尼)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렸다. 구지 선사는 그날 이후 얼마나 분심이 났던지 이를 악물고 용맹정진 하였다. 얼마 후 대 선지식 천룡 선사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그 한마디’를 청하였다. 이에 천룡 선사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울 뿐이었다. 그 순간 구지 선사는 깨쳤다.
아마 그 때 다녀간 사람이 비구였다면 똑같은 경우가 벌어졌다 하더라도 그 정도 분심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삿갓 쓰고 석장 짚고 느닷없이 나타나 스트레스를 주고 사라진 그 니 덕분에 다시 발심해 안목이 열렸으니 이는 제대로 된 만남인 셈이다.
뭐니뭐니 ‘비구니 어록’의 압권은 동산양개 화상의 회상에서 있었던 일일 것이다.
선방앞에 웬 비구니가 와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마초성향의 비구들은 그 소리에 혈압 좀 올라갔을 것이다.
만약 신라 땅에서 유학 온 성질 급한 ‘경상도 비구’가 그 곳에 있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좌복을 박차고 죽비 들고 쫓아나갔을 것만 같은 어투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내 자식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회상의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하여 즉답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묵묵부답. 결국 동산 선사가 대신 한마디를 해야만 했다.
“나도 그대에게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