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마음을 잘못 써서 오는 병도 많다.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든가, 돈이나 재산 문제로 속을 태운다든가, 일자리나 일거리를 잃지 않을까 안절부절 못한다든가, 사랑이나 실연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든가, 다른 동료나 이웃에 대한 배려없이 승진이나 자기 잇속에만 목을 맨다든가, 심지어는 나이 듦을 아쉬워하여 늙지 않으려고 너무 안달복달하게 되면 도리어 건강을 해치게 된다. 고혈압 심장병 그리고 불면증 같은 병들의 근원을 파헤쳐보면 바로 그러한 마음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을 너무 쓰지 않고 살아도 문제다. 정신을 제대로 쓰지 않고 지내면 알던 것도 까맣게 잊을 수 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유창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만큼 독일어를 제법 구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혹시 독일인을 어디서 만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입이 꽉 막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의약학 생명과학 그리고 심리학 등 자연과학은 물론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까지 교재며 논문이며 국제회의에 영어 일색이다. 독일어를 써먹을 기회가 없다. 귀국 직후 웃지 못할 일화도 많았다. 부지불식간에 '카피(copy)'가 독일식‘코피’로‘팩스(fax)'가 ’팍스‘로 발음되어 무식한 사람으로 오해 받을 뻔한 일들이 있었다. 영어만능 시대에 독일어는 오히려 짐이 되는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근자에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와의 씁쓸한 대화가 생각난다. “요즈음 티베트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내 말 끝에 “영어와 중국어만 알면 세계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전혀 불편이 없는 세상인데 웬 티베트어냐?“는 핀잔이었다. 그 친구 이야기로는 요즈음 중국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티베트문헌들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어서 중국어만 알면 티베트의서(醫書)든 불서(佛書)든 아무 불편없이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티베트 땅에는 중국인이 더 많이 살고 있고 머지 않아 티베트어는 곧 사어(死語)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본토에서는 사어가 되고 세계 지성계에 들불처럼 부활하는 티베트어의 아이러니컬한 운명이여!
부적절한 활동이 말하기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큰소리를 계속 질러댄다든가 깔깔거리며 웃거나 노래를 불러대는 경우이다. 교직이나 강단에 종사하는 교육자나 정치인과 연예인같이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지껄여 목이 쉰 경우가 다반사다. 매일같이 환자의 호소를 들어주고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의사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이던 지나치면 탈인 것이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다섯 가지 감각을 잘 활용하고 몸도 적당히 부려먹고 말과 마음을 잘 다스리면 건강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다.
병의 단기적인 근인(近因)으로 이제 기후적인 계절적 요인들을 살펴보자. 티베트 달력은 음력(陰曆)으로 한 해를 늦겨울 봄 건기(乾期)여름 습기(濕期)여름 가을 그리고 초겨울 여섯 절기로 나눈다. 그래서 절기에 맞게 복장을 잘 갖추어 입고 바른 생활 수칙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 기후 조건으로 몸의 열기나 습기가 지나쳐 우리 몸의 세 기본에너지인 룽 때빠 및 왜껜의 내적 균형이 흐트러지게 되어 병이 된다는 것이다.
체질에 따른 각 절기별 취약성과 병의 양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건기여름은 우리의 오뉴월에 해당하는데 이때의 환경적 성정은 가볍고(輕) 건조하여 룽의 성질과 같다. 그래서 체질이 룽형인 사람이 이 시기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영양가 낮은 가볍고 거친 음식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몸안에 룽이 쌓이게 된다. 습기여름은 우리의 칠팔월로 비바람이 잦은 관계로 환경적 성정이 냉(冷)하다. 그래서 룽을 더욱 악화시키고 병증을 드러내서 병을 초래하게 된다. 이 시기에 천식과 기관지염 같은 호흡기질환과 관절염이 악화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가을은 우리의 구시월로 성정이 따뜻하고(溫) 지성(脂性)이다. 그래서 룽을 중화시켜 누그러뜨리게 된다.
■아주대교수·한국티베트의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