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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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당나라 시대의 러시안룰렛 도박꾼들/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목숨을 담보로 게임을 하는 러시안룰렛은 당사자도 당사자이러니와 옆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 더 땀을 쥐게 한다. 탄알이 한 발 든 6연발 권총의 실린더를 돌린 뒤 순서대로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목숨을 걸고 승부를 가리는 도박의 일종이다. 19세기말 러시아귀족들이 즐겨 했다고 한다. 미친 짓 같은데도, 그래도 뭔지는 몰라도, 뭔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선종사에는 8세기 무렵 이미 러시아룰렛에 버금가는 사건이 있었다. ‘모 아니면 도’는 ‘부처 아니면 중생’이라는 선종의 깨달음관(觀)과 연결되면서 극단적인 승부사적 기질의 소유자들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 됐다.
구봉도건(?~921) 선사는 석상경저(807~888) 선사에게 인가를 받게 되었다. 스승에 대한 신뢰는 시봉으로 이어졌다. 열심히 시자소임을 보는데 얼마 되지 않아 스승이 갑자기 열반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구봉에게는 개인적으로 의지해야 할 한 스승이 없어진 것에 불과하지만, 총림은 공석의 방장스님을 다시 모셔야 하는 큰 일임을 의미한다. 젊은 구봉의 법력은 대중들이 알 길이 없다. 관례대로 당중의 제일좌인 수좌를 천거하여 방장으로 모시고자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구봉은 이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좌차대로 법랍대로 서열대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젊은 공부인의 기개로 볼 때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태어나는 거야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에 무슨 순서가 있으며, 출가야 순서가 있지만 깨달음이 순서대로 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중처소는 대놓고 대들 수도 없는 분위기다. 그래서 그 수좌를 뒷방으로 불렀다. 단둘이 있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른 바 요즘 애들 말대로 ‘맞짱’을 뜬 것이다.
“나의 물음에 열반하신 스승의 뜻에 맞게 분명히 대답하신다면 제가 스승에게 하던대로 꼭 같이 시봉을 하겠습니다.”
깨친 안목으로 제대로 된 답변을 해준다면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말이다. 수좌는 자신있게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대로 물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구봉은 “스승께서 ‘쉬고 쉬어라(休去歇去). 한 생각이 만년이다. 식은 재와 마른 나무같이 하라’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일을 밝힌 말씀입니까?”하고 물었다. 즉각 대답했다. “그건 일색변사(一色邊事)를 밝힌 것이지.”
그러나 그 답변은 구봉의 안목으로 볼 때에는 깨친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자 그 수좌가 구봉이 쥐고 있던 향을 달라고 하였다.
“그대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지. 좋아! 그럼 뭔가를 보여주지. 내가 열반하신 방장스님과 마음이 계합되지 않았다면 이 향이 다 탄 이후에도 내가 살아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향불을 피운지 얼마 되지 않아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입적해 버렸다. 그런데 이 놀라운 과정을 지켜보던 구봉의 태도가 더 입을 벌어지게 한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열반해버린 수좌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앉아서나 서서나 죽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사 앉아서 죽었다고 할지라도 스승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둘 다 대단한 경지이다. 방장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좌탈(坐脫)로 자기 공부경지를 보여주려는 제일수좌나 또 그것을 보고도 인정에 끄달리지 않고 좌탈 자체가 깨달음의 증표가 될 수 없다는 자기안목을 다시금 확인시킨 구봉 선사 모두 난형난제라 하겠다. 이 정도는 돼야 진짜 도박꾼이다. 깨달음은 무가보(無價寶)이니 어찌 몇 푼 판돈에 비하겠는가. 이런 기상이 선풍을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게 한 저력일 것이다. 법은 인정으로 나이로 친소(親疎)로 주거니 받거니 할 수는 없다. 그건 모두가 망하는 길이요 모두가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200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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